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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뇽안뇽안늉 Apr 02. 2024

태도가 중요해

출근까지 좋아하기는 어렵지만…

 드라마 <미생>이 나온 지 벌써 10년이 됐단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나도 그간 참 많이 바뀌었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에서 나름의 밥벌이는 하게 되었고, 자기소개서에 치이던 시기를 지나 그 시기가 차라리 평화로웠음을 깨달은 30대에 이르렀다. 이직한 지 약 9개월, 조직에 조금은 적응하고 있구나 싶었던 2월 말 즈음에 문득 드라마 <미생>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마침 <미생>이 나온 지 10년이 됐다고 하길래 처음 봤던 그때의 마음을 떠올리며 1화부터 정주행 했다.

 

 극 중 오 차장이 업계에 진상이라고 소문난 클라이언트 접대를 극구 꺼려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신념에 반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미생>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드라마 속 클라이언트는 이른바 ‘2차 접대’를 필히 요구하는 사람이었고,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본인의 신념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것이 오 차장의 입장이었다.

 이 회차를 보며 나 또한 일과 그 안에서의 신념을 생각했다. 사실 ‘신념’이라고 할 만큼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믿음이 있다면 일에서는 무엇보다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몇 번의 이직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경험은, 일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 태도가 중요함을 알게 해 주었다. 부딪혀가며 배운 것들도 많다. 신입사원 때는 몰랐던 것들이다.


 처음 직장 생활을 했던 곳은 일도 적당히 있고, 워라밸도 철저하게 지킬 수 있는, 아무튼 간에 처음 일을 시작하기는 좋은 곳이었다. 좋은 친구들과 동료들을 얻었고, 회사 가는 게 나름 재미있어서(?) 월요병이 없었다. 꽤 즐겁게 직장 생활을 했다. 다만, 주니어라는 포지션에 국한되어 있던 터라 당장의 포트폴리오를 쌓기는 쉽지 않았고 (물론 지금까지 있었다면 다른 방향으로의 성장을 했겠지만) 조금 더 빠르게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곳으로 옮겨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퇴사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스스로의 퇴로를 막았고, 목표를 이루고자 규모 있는 회사에 중고 신입의 이력서를 들이밀었다.

 4개월간의 재취준 시기를 거쳐 입사하게 된 곳은 광고 대행사였다. 나를 가장 많이 성장시킨 곳이지만, 당시의 내가 최우선적으로 바라던 업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몇 년간 열심히 일하면 나 스스로를 키울 수 있겠다는 확신은 있었다.

 

 음… 그건 맞긴 맞는데, 그러려면 정말 열심히 일해야 하는 거였다. 출근 첫날만 일찍 집에 갔고, 그다음 날부터는 줄곧 밤 10시를 넘어서 퇴근했다. 첫 회사에서는 6시 땡 하면 컴퓨터 끄고 가방부터 들었는데, 여기는 밤 10시는커녕 11시, 12시가 넘어도 집에 안 가는 (이라 쓰고 못 가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뭐 이런 회사가 다 있나, 싶어 나는 할 수 있는 정도의 반 만 했다. 예컨대, 시간을 조금 더 투입하면, 가령 자정을 넘기면 일의 완성도가 더욱 높아짐에도 (야근이 옳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이 정도면 됐다 싶어 밤 9시, 또는 10시에 집에 갔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첫 회사에서는 잘했다고 해줬다. 왜냐하면 그때의 나는 사수가 둘이나 있는 주니어였으니까. 책임감의 중요성도, 그 무게감도 몰랐던,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중고신입이었다. 야근을 한다는 것이 괜히 겸연쩍기도 했다.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팀장님을 처음 대면했던 날, 업무 지식과 관련해서 이것저것 질문하자 ‘그건 네가 알아서 공부해와야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일’과 ‘나’를 분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 또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임을.

 

 첫 회사의 안락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몇 개월을 보내고 나니 돌아온 것은 맞사수와의 틀어진 관계와, 그 후에 몰려드는 엄청난 자책감이었다. 특히, '클라이언트'라는 대상의 존재가 다른 일과의 가장 큰 차이였으나 부끄럽게도 그때의 나는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팀장이나 사수 뒤에만 숨기에 급급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첫 회사에서는 그래도 됐으니까. 이곳은 신입이든 경력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일당백 해야 하는 곳인데 나는 사수 뒤에 숨어 그냥 열심히 하는 ‘척’만 했던 것이다. 일은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서, 내가 하지 않거나 혹은 잘 못하면 결국은 누군가가 대신한다. 그때는 그 사실을 잘 몰랐다. 아니, 신입이니까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생각만 해도 얼굴이 빨개지는 시기다.

 맞사수의 퇴사 이후 PM이 되어 부딪히고, 깨져보니 알게 되었다. 일은 무엇보다 실력이 중요하다. 다만, 그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태도다. 내가 맡은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책임지겠다는 마음,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하겠다는 마음, 못하겠다 보다는 일단 해보자는 마음, 싫어도 해야 하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내가 일을 대하는 태도를 만든다.


 다다르기에는 아직도 한참 모자라다. 일은 여전히 하기 싫고, 월요병은 나아질 기미가 없으며, PPT를 띄워놓으면 한숨부터 나온다. 실수도 많고, 왜 그렇게 했지 싶은 것들도 생긴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금 태도의 중요성을 떠올린다. 어쨌든 나는 회사라는 소속을 가진 직장인이니까. 오늘도 회사에 있을 테고, 내일도 회사에 있을 테니 우리 회사 주주들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나 또한 개미라…) 내 1인분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 동료들과의 회사 생활을 더욱 즐겁게 꾸리기 위해, 나아가 나 자신을 위해 나는 매일 아침 태도를 다지기로 한다.


 그렇지만 참… 출근까지 좋아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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