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하고 나면 뿌듯하더라고요
물리학에서는 운동을 '시간에 따라 물질의 위치 벡터가 변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포털사이트에 '운동'을 검색해 보니 알게 된 정보다. 찐 문과생이라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그냥 직관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른 모든 움직임' 정도로 해석했다. 동시에 ‘운동’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이 몸을 단련하거나 건강을 위하여 몸을 움직이는 일'이다. 내게는 물리학에서의 정의와 국어사전의 정의가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이해되는데, 이는 순전히 운동을 받아들이는 나의 관점에 그 이유가 있다.
내게 운동이란, 몸을 단련하기 위한 것이라면 너무 거창하고, 특정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도 아니다 (애초에 목적을 달성할 만큼 운동할 의지가 없다). 산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것이라고 누가 그러던데, 그 말에 공감하는 나로서는 운동이란 취미의 형태도 될 수 없다. 굳이 말하자면 나에게 운동이란 ‘움직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라는 점에서는 물리학적 정의에 좀 더 가까울 것이며, 조금 더 나아가면 ‘움직여야 한다는 의무감 아닌 의무감에서 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운동 신경의 타고난 정도를 5점 척도로 매긴다면, 나는 1~2점 사이가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 때 체육 시간을 참 좋아하긴 했는데,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명백하게 달랐으므로 나는 피구 게임은 정말 좋아했지만 공격수는 될 수 없었다. 발야구도 정말 좋아했지만 아웃되지 않으려는 그 아슬아슬함을 좋아했지, 공을 뻥뻥 잘 차지는 못했다.
그에 반해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단짝인 내 친구는 예나 지금이나 운동 신경이 탁월했다. 피구에서는 매섭게 공을 날릴 줄 알았고, 발야구에서는 남자애들만큼이나 공을 멀리, 세게 차서 출루율이 높았다. 춤도 잘 춰서 가요 프로그램을 보면 쉽게 안무를 따라 하곤 했던 그 친구는 지금도 운동을 어렵지 않게 잘한다. 가끔 같이 무언가를 하면 그 친구의 움직임이 참 날렵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역시 타고난 운동 신경은 무시할 수 없구나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아무튼 운동 신경이 '몸치' 수준인 나로서는 친구와 달리 운동으로 재미를 느끼기가 어렵다.
물론 좋아하는 운동도 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운동 종류, 예컨대 배드민턴이나 볼링 같이 게임 형식을 띤 스포츠는 정말 좋아한다. 반면, 혼자 해야 하는 운동은 영 취미를 붙이기 어렵더라. 그래서 이제까지 꾸준히 한 운동이 없다. 10년 전에 딱 몇 달간 꾸준히 했던 러닝머신 빼놓고는. 그때도 딱 30분 달렸다. 30분 이상은 달리는 것은 힘들기도 했거니와 ‘재미’가 없었다. 여행지에서 2만 보 이상 걷는 건 기본일 정도로 걷기도 좋아하지만, ‘건강을 단련하기 위한’ 운동만큼의 걷는 것은 또 잘 안 한다. 따지고 보면 나는 산책을 좋아하는 것이지, 운동 수준의 걷기는 영 취미가 없는 것 같다. 여러모로 재미를 못 느끼니 꾸준히 운동할 필요성도 못 느끼면서 살아왔다.
이전 글에서도 썼었지만, 그래서 나는 지금 1년간 꾸준히 하고 있는 필라테스를 내 인생 최초로 '운동 다운 운동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매우 단순하다. 나도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매일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는 데다, 정적인 취미를 가진 탓에 집에서도 큰 움직임이 없으니까. 그래서 움직여야만 할 것 같았다. ‘움직임’ 그 자체의 의무감에서 뻗어 나온 생각은 결국 ‘어떤’ 운동을 하느냐로 귀결되어야 했고, 몇 가지 선택지를 고민하다가 움직임 그다음의 순서로 의무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들 (바른 체형, 유연성 등등)을 고려해 ‘필라테스’로 정기 운동의 시작점을 찍어보기로 했다. 무려 6년 전, 3개월간 동네 구민회관에서 매트 필라테스를 해 본 것도 결정에 영향을 주긴 했다. 필라테스를 하던 당시, 자주 쥐가 나는 바람에 창피했던 기억이 떠올라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집 가까이 무수히 많은 필라테스 학원이 있다는 것.
이처럼 처음에는 그냥 운동을 해야겠으니 한다, 정도의 마음으로 시작했다. 지금도 사실 뭐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이전보다는 필라테스의 좋은 점을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다. 처음에는 복근 운동을 할 때 너무 힘들어서 선생님 눈치 보다가 도중에 멈추곤 했는데, 지금은 끝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이 그렇다. 오롯이 나의 몸, 나의 움직임에 집중하면서 생각을 환기하는 것도 좋다. 일에 지쳐 몸과 마음이 피곤할 때 필라테스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 운동을 마치고 나올 때의 뿌듯함, 오늘 하루도 무언가 했다는 약간의 보람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나처럼 운동에 취미 없는 사람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하게 되는 것 같다. 오늘도 ‘가기 싫다’ 곱씹지만 그럼에도 가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을 알아버렸달까.
고로, 2024년의 목표는 올해도 꾸준히 필라테스를 가는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서, 필라테스를 시작한 지도 1년이 되었으니 이번달만큼은 벼르던 B 클래스에 도전해보고 싶다. 1년간 꾸준히 해왔다고는 하지만 중간에 쉬기도 하고, 주 2회도 겨우 가는 몸치라 A클래스를 벗어날 만큼 실력이 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선생님도 너무 겁내지 말고 한 번은 들어보라고 하셨으니… 이번달은 두려움을 조금 거둘까 한다. 해보고 정 아니면 계속 A클래스 듣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