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의 그 질문은 아직도 어렵다
한 팀으로 같이 일한 지 벌써 1년 하고도 5개월,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서로 우당탕탕 부대끼며 나름의 정을 쌓아온 덕일까. 팀장님을 포함해 팀원들 간 많이 친해졌고, 훨씬 편해졌다. 1년 전에는 조심스럽고 어려웠던 회식 자리였지만 지금은 제3자가 본 우리의 회식 자리가 제일 재밌어 보인다고 한다. 프로젝트는 지금도 어렵고, 이전에는 더 버거웠지만 그런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을 기반으로 팀워크가 더 단단해진 것 같다. 일을 차치하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동기들과의 강한 전우애(?)를 다진 것이야말로 올해의 가장 큰 성과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몇 번의 이직을 거치고, 꼬박 만 7년의 회사 생활을 경험하면서 느낀 것은 나라는 사람은 지극히 일보다 사람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같이 일하는 내 옆자리 동료와 합이 잘 맞고, 이들과 기꺼이 일하고 싶다면 일이 아무리 잘 맞지 않고 힘들어도 무난히 견뎌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버거워 보이던 프로젝트가 어느새 술술 잘 풀리기도 했다. 그러면 상사의 인정도 받고, 팀의 인정도 받고, 이를 토대로 다시 동료들과 으쌰으쌰 하게 되고.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는, 나만의 이상적인 선순환 고리인 셈이다.
반면, 사람이 힘들면 일이 더욱 버겁게 느껴진다. 대부분 그럴 테지만 나는 특히 그렇다. 이쯤 되면 차라리 내가 혼자 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때는 일에 대한 싫증도 더욱 심화된다. 사실 일이 맞지 않았던 것이 아니고, 사람이 맞지 않았던 것이지만 그때는 내가 일이 맞지 않는다고 의심하며 동일한 업무가 주어졌을 때 무조건 회피하고 싶어 진다.
그렇기에 결론적으로 지금의 나는 내 일을 나름 원활하게 해내고 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한 일임을 몇 군데의 회사를 거치며, 그리고 주변의 사례들을 보며 익히 깨달은 바 있기에 내 주변 환경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를 조금 다르게 해석해 보면, 어떤 동료들과 일하느냐가 업무를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지, 업무 그 자체로 결정하기는 어렵다는 뜻이 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금요일, 팀장님의 개인적인 질문에 나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그때의 대화를 그대로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일은 재미있니?’
‘아니요. 재미없어요. 뭔가 보이면 (잘 알게 되면) 재미있겠죠?’
‘그래. 일이 요새 재미없어 보여서.’
‘네, 일은 재미없어요. 근데 일에 대한 재미보다는 책임감 때문에 일을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렇지… 그 간극을 줄이는 게 내가 하는 일이라서. 나는 일이 재미있는데.’
그 말에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하려고 하다가, 중간에 누군가 와서 대화가 끊기긴 했다. 다만, 집에 가는 길에 이 대화를 계속 곱씹으며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과연 일이 재밌을 수 있을까?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존재하지만 내가 못 찾은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나는 일에 대한 재미를 느끼기 어려운 성향인 걸까?
내가 굳이 책임감을 언급한 이유는 내가 일을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야말로 동료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일을 하지 않거나 중간에 멈추면 결국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나는 이러한 상황을 지극히 싫어하기에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언제나 내 손에서 끝냈다. 개인적으로 나는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것, 폐 끼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내게 주어진 몫을 끝까지 해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사실 일하다 보면 실수도 하기 마련이겠지만 동료가 내 실수로 인해 (설령 그것이 작은 실수일지라도) 내 일을 대신하게 된다거나 혹은 조금 더 마감 시간이 지연되는 상황을 나는 가장 견디기 어려워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비효율적일지라도 동료에게 부탁하기보다 내가 하는 편이며, 함께 일하는 프로젝트에서도 각자 맡은 업무는 무조건 해내려고 한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이고, 도움이 필요할지라도 야근을 불사하며 꾸역꾸역 해내는 편이다. 모르겠으니 물어보라거나, 혹은 조정해 줄 수 있냐고 요청하라고 하지만 나는 섣불리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내가 찾을 수 있는 데까지 찾아보고 그제야 질문하는, 어찌 보면 조금 피곤한 타입이겠다.
성과를 제대로 못 내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내가 성과를 잘 못 내면 결국 누군가가 대신해야 하지 않는가. 그도 아니면 팀장님이 혹은 사수가 나로 인해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 일이란 오롯한 책임이자 성과를 내야 하는 무엇이었다. 이런 성향에 동료들과의 관계에 대한 민감성까지 더해져서 그런지 나는 지금까지 회사 생활을 하면서 일 자체에서 재미를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물론, 언제나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업무를 하면서 재미를 느끼거나, 보람 있거나, 뿌듯했던 순간들이 왜 없었겠는가. 다만 누군가 나에게 일이 재미있냐고 물어봤을 때 갸우뚱하게 되는 것이다. 이전의 회사에서도, 그 이전의 회사에서도 이 질문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어깨만 으쓱했을 것이다. 나에게 일이란 즐거움이라기보다는 책임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내가 잘하는 일이라도 언제나 나에게는 의무였다. 그래서 보통 업무가 끝나면 해방감도 크게 느꼈고, 무척이나 뿌듯했다. 이는 내가 다시 일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다시 돌아가서, 과연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아니면 아직 내가 못 찾은 것일까? 회사 생활을 조금 더 하면 일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 아니면 그때에도 똑같이 애매모호한 태도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대신할지. 대리 N년차인 지금도 팀장님의 그 질문은 여전히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