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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뇽안뇽안늉 Oct 12. 2024

나이롱 신자의 고해성사

사실 점 보러 다니는 걸 참 좋아합니다만…

나를 ‘조금’ 아는 사람 대부분은 내가 종교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나는 가톨릭 신자다. 신자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성당을 안 나간 지 오래되었지만 (가톨릭에서는 이를 ‘냉담 중‘ 이라고 표현한다), 그럼에도 방 한 켠 잘 보이는 곳에 묵주를 걸어둔 것은 일종의 종교적(?) 아이덴티티를 잊지 않겠다는 작은 노력이다. 부모님은, 특히 엄마는 성당을 안 나가는 내게 자주 ’엄마의 소망은 딸이 성당에 잘 나가는 것‘이라고 하실 만큼 우리 집은 가톨릭이라는 종교에 매우 독실하다. 이미 나는 내가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 어렸을 때 유아세례를 받았다. 신실함과는 매우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어 이를 언급하기도 창피하지만 말이다.


종교에서는 ‘믿음‘의 가치가 가장 최우선시되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개인적으로 ‘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기보다 성당의 안정감을 좋아하는 쪽에 가까운 것 같다.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는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미사에 나갔기 때문에, 성당이라는 공간과 가톨릭이 주는 분위기가 친근하게 느껴져서 그런 듯하다. 미사의 장엄함과 더불어 때때로 찾아오는 고요한 느낌도 좋아한다. 그래서 매우 불경(?)하게도 비록 나 자신은 나이롱이지만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면 결혼식은 성당에서 하고 싶다는 요상한 로망도 갖고 있다. 엄마가 들으면 또 싫어하실 거다. 성당이나 잘 나가면서 그런 이야기하라고 하시겠지…


이처럼 믿음 약하고 속세에 찌들어버린 나이롱 가톨릭 신자인 나는 부끄럽게도 샤머니즘(?)을 참 좋아한다. 한참 성당을 다닐 때에도 사주나 타로를 보러 다니며 믿거나 말거나 내 장밋빛 미래를 그려보는 일들을 참 좋아했다. 그러나 고해성사에서 신부님께 이 내용을 고해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언제나 나의 고해 내용은 부모님께 잘못했어요, 남 험담을 했어요…. 와 같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법한 진부한 죄목들이었다. 이유는 너~무 부끄러워서였다. 신부님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전혀 예측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잘 풀릴 경우 껄껄 웃어넘기실 수도 있겠지만… 잘 안 풀릴 경우 훈계가 길어질까 두렵고… 보속 (죄의 치유를 위한 행위로, 고해 이후 신부님이 그에 맞는 합당한 보속을 내린다)으로 기도문 5번 외라고 할 걸 10번 외라고 할까 봐 겁나고…. 아무튼 무척 창피한 일이라 가톨릭 신자로서 진짜 잘못을 하고도 한 번도 고해한 적이 없다. 진짜 잘못인 이유는 샤머니즘이나 가톨릭이나 ‘신앙심’ 기반의 종교이고,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각기 다른 두 개념을 모두 취한다는 것이 굉장한 모순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나는 타로나 사주도 좋은 말만 믿고 나쁜 말은 흘려듣는데 (아니면 좋은 말을 들을 때까지 다른 철학관을 찾는다…) 이는 나의 미래가 긍정적이리라는것을 어떻게든 믿어보려는 발버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뜻대로 인생이 잘 흘러간다고 생각할 때는 점을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든다. 반면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고 그저 앞날이 불안할 때는 타로나 사주를 보러 가는 횟수가 확 는다. 예컨대, 올해만 30만 원 가까이 쓴 것 같다. 좋은 말을 거듭해서 들으려고 이리저리 찾아다닌 탓이다.

성당 안에서는 내가 스스로 믿음을 찾아야 하는데 이는 일종의 수양 행위라 즉각적인 불안감을 해소하기는 어렵기에, 나약한 나 자신은 반대급부로 접근성이 좋은 점집을 자꾸만 찾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비유이지만, 맛있는 인스턴트 음식에 더 자주 손을 뻗는 것처럼 말이다.


필라테스로 몸의 중심, 코어를 키우듯이 마음의 근육을 키우면 예상하지 못한 인생의 어려움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안다. 근육을 강하게 키우는 촉진제는 무언가를 믿는 마음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데, 내 주변에도 믿음이 굳건한 사람일수록 ( 대상이 무엇이건 간에) 일상을 더욱 평온하게 느끼는 것 같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다. 나 같으면 멘탈이 으스러질 것 같은 사건에도 금방 회복하던 높은 탄력성의 근간을 믿음이라고 직접적으로 일러준 지인도 있었다.

아무튼간에 결론은 믿음이 삶에서 참 중요하다는 것이다. 종교나, 점이나, 그것도 아니면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도 강해야 인생을 덜 불안하게 느낄텐데, 그 셋 중 어느 것도 내세울 것 없는 나라서 어제도 심심풀이로 타로를 보았다. 그래도 좋은 이야기 들어서 기분은 좋았고, 믿고 싶다는 마음이 더해져서인지 과거 풀이도 엄청 잘 맞는 것처럼 느껴지더라. 사실 점괘에 기대지 말자고 다짐하기에는 점 보러 다니는 게 참 재미있는데… 가톨릭 신자라는 느슨한 정체성과 타로 풀이의 즉각적인 재미 사이에서 남은 2024년도 정처 없이 돌아다닐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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