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내년에 칠순이다. 올해 연휴도 길고, 나도 해외로 나가고 싶던 차에 겸사겸사 아버지 칠순을 ‘미리’ 축하드리는 차원에서 1년 이른 가족 여행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른바 효도여행. 목적지는 고향인 제주에서도 직항 노선이 있는, 게다가 두 차례의 방문 경험으로 조금은 익숙한 홍콩.
해외로 가족 여행을 나갔던 것은 7년 전 패키지여행으로 다녀왔던 칭다오가 다였다. 먹고사는 문제로 바쁜 부모님은 해외여행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으셨고, 엄마는 이모를 보러 몇 차례 일본을 방문했었지만 말 그대로 친지 방문의 목적이라 여행이라고 부르기는 다소 애매했다. 특히나 아버지는 홍콩 여행 이전에는 칭다오가 처음이자 마지막 해외여행이었는데, 나는 그 점이 못내 애석했다. 더 좋은 여행지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더군다나 평소에 걱정이 많아서 여행에 엄두를 못 내시는 성향이라 ‘효도 여행’이라는 목적으로 내가 추진하면 움직이실 듯했다. 제주에 직항 노선이 있어서 동선이 복잡하지 않다는 점도 아버지의 홍콩행 결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나 혼자 움직이는 여행이라면 계획도 짜는 둥 마는 둥 할 테고, 여행지 가서도 내키는 대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겠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여행이라 막상 시기가 다가오니 불안해지더라. 연세도 많으시니 많이 걷거나 움직이면 쉬이 지쳐하실 테고, 홍콩의 무덥고 습한 날씨도 복병이었다.
예산도 걱정이었다. 넉넉히 들고 가긴 하지만 혹시라도 현지에서 모자라면 어쩌나 싶었다. 물론 모바일로 안 되는 게 없겠지만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으로 괜히 마음이 심란했다. 무엇보다 걱정되었던 것은 부모님의 컨디션. 엄마는 체력이 괜찮으신 편인데 비해 아버지가 워낙 운동을 안 하셔서 조금만 걸어도 힘들어하신다.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홍콩 전날에는 또 아버지랑 무지하게 싸웠다. 가족들 싸움이 원래 사소한 문제로 발발하지 않던가. 짐 싸는 것 때문에 싸웠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나지 싶다. 효도여행이라면서 그 전날 다툴게 뭐람. 그냥 모른 체하면 되는 것을 나도 꼭 말대꾸를 한다. 아무튼 아침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만 해도 엄마를 제외한 나와 아버지 사이의 기류는 다소 냉랭했다.
그러나 홍콩에 도착한 직후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홍콩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해외라는 사실이 자못 신이 나셨는지 아버지는 연신 휴대폰으로 촬영 버튼을 누르셨다. 공항 안에서 인증샷을 찍어야 한다며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주실 때에는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층 버스를 타고 공항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서는 좌우로 고개를 돌려 번갈아 차창 밖을 보셨는데, 아무래도 홍콩의 거대한 항만과 수많은 물류 컨테이너들에 시선을 빼앗기신 것 같았다. 과거와 현재가 오묘하게 뒤섞인, 숨 막히는 인구 밀도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홍콩을 가족 여행지로 잘 선택했구나 싶었다. 완전한 중화권 느낌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벽한 영미권 분위기도 아닌 그 어느 사이 지점의 홍콩을 완벽하게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나의 욕심이기는 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젊은 나의 욕심임을 인정해야 했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꽉 찬 4일을 보내면서 꽤 많은 것을 덜어냈다. 빅토리아 피크 트램도 타지 못했고, 마카오 구시가지도 가지 않았다. 생각보다 더운 날씨라 2일 차에 방문을 결정했던 구룡 공원에서도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나름대로 사전 계획을 짰음에도 정작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그다음 날의 일정을 자기 전에 계속 수정해야 했다.
도보보다 택시를 더 자주 이용한다해도, 밖에 8시간 이상 있는 그 자체로 어르신들은 지쳐하신다. 나였으면 2만 보 이상 걸으며 지칠 때까지,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이리저리 쏘다녔겠지만 애석하게도 부모님은 더 이상 그러기 어려우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 사실이 꽤 서글펐고 한편으로는 죄송했다. 엄마가 5년 전 위암 수술을 받기 전에, 그리고 아버지가 조금 더 젊으셨을 때 무리해서라도 좋은 곳들을 많이 다녀볼걸, 하는 생각이 들었달까. 이미 몇 번 본 데다 여행에 익숙해서 내게는 그다지 이색적이지 않은 풍경도 부모님은 너무 신기해하시며 마치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수없이 휴대폰 카메라를 누르시는 아버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조르는 엄마.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나 또한 무언가로 마구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물론 부모님의 컨디션을 내내 신경 쓰고 동선을 미리 계획하고 있어야 해서 딸인 내가 힘들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의 계획과 속도대로 자유롭게 즐긴 덕에 우리만의 추억을 더욱 많이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같다. 10분 거리를 내 실수로 약 한 시간가량을 헤맸다. 그래서 볼 수 있었던, 나 또한 이전에 왔을 때 자세히 보지 못했던 센트럴 부근의 빽빽한 빌딩숲과 이들이 조성한 야경. 바람이 통하는 시원한 광장에서 잠시 숨을 돌리기도 했고, 그때 잡화점에서 산 과도에 살짝 베여 내가 피를 보기도 했다.
그뿐인가. 차찬탱에 들어섰을 때 앉자마자 건네는 뜨거운 물컵을 물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마신 부모님. 사실 이 물은 젓가락을 소독하는 물이었다. 나 또한 몰랐다. 이전 방문 때는 딤섬집에서 대접 형태로만 받아봐서, 이렇게 작은 컵에 소독물을 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실수가 만든 에피소드들이 여행의 추억 거리들을 더욱 많이 안겨주는 듯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님이 좋아하셔서 그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엄마와 나의 걱정보다 아버지는 별로 지쳐하는 기색 없이 여행을 즐기셨고, 엄마 또한 낯선 외국 음식을 거부감 없이 잘 드셨다. 칭다오에서는 특유의 향이 난다며 거의 못 드셨는데, 우려와 다르게 홍콩의 음식은 정말 잘 드셨다. 다행이었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또 이야기하며 세 식구 모두 홍콩에서의 마지막 날까지 알차게 즐겼다.
홍콩 공항에서 부모님과 인사를 하는 날, 살짝 울컥했다. 나는 인천으로, 부모님은 제주로. 저 멀리 비행기로 들어서는 통로에서도 그곳을 통창 너머로 바라보고 있는 나를 알아보시고는 연신 손을 흔드셨다. 실루엣 정도만 간신히 보이는 수준이지만 나도 놓치지 않고 알아보았다. 흰색 니토리 종이가방을 든 아버지와 그 앞의 갈색 카디건을 입은 작은 엄마를.
꽉 찬 3박 5일간의 홍콩 여행은 효도여행으로 시작했지만, 돌아보면 결국 나를 위한 여행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를 순수하게 기쁘게 할 때에 덩달아 기뻤던 마음, 진심을 다 할 때 느낄 수 있었던 충만함,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무언가를 성취한 일, 가족들과 떠났기에 만들 수 있었던 추억 등등. 올 한 해 가장 잘한 일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여력이 된다면 새로운 여행지로 떠나, 그곳에서 만의 추억거리들을 가족들과 함께 다시 한번 더 만들고 싶다.
*여행 후의 컨디션을 걱정했으나 정작 부모님은 쌩쌩, 나는 감기몸살로 고생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