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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Aug 08. 2020

작가로의 길

독자는 작가의 필요충분조건

 최근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일이 뜸하게 되었다. 지난 11월 이후 나름 짧은 기간에 많은 글을 써 올렸는데, 글이 올라가지 않으니 그나마 많지 않던 방문자의 발길도 뚝 끊어졌다. 브런치 작가가 된 초기에는 방문자 수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였으나, 이제는 어엿한 중견 브런쳐(브런치를 하는 사람)가 되어 방문자 수 따위에는 관심 없다는 듯,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처럼 모든 것을 초월하고 있다고 믿었다. 


 착각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폰으로 브런치 방문자를 확인하는 나를 발견했다. 통계 페이지를 요리조리 뜯어보기도 한다. 어떤 글을 많이 읽는지 유입 키워드가 무언인지 등등. 요즘은 아내에 대한 글이 브런치 편집팀 눈에 들었는지 예상도 하지 못한 조회수가 나왔다. 그럼 아내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써보아야 하나 궁리를 하기도 했다. 이게 뭐지? 내가 조회수에 이렇게 연연했단 말인가?   


 '로젠탈 효과(Rosenthal effect)'의 충직한 수행자라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로젠탈 효과는 "타인의 칭찬과 기대, 자기 긍정의 심리적 암시"로, 실제 그 사람이 가진(또는 가졌다고 생각되는) 능력 이상을 발휘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피그말리온 효과라고도 한다. 브런치를 포함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SNS에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이유도 로젠탈 효과로 설명될 수 있다. 


 나 역시 졸고(拙稿)에 선뜻 좋아요를 눌러주거나 칭찬이 담긴 댓글을 달아주는 독자 덕분에 글 쓰기 의지를 더욱 불태우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것이 글 쓰는 이유, 글 쓰기의 목표는 아니지만, 방문자가 없다면 독자가 없다면 계속 글 쓰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을지 자신이 없다. 나를 표현하고 싶어 글 쓰기를 시작했지만, 그 글을 외로이 혼자만 보고 싶지도 않다.   


 사실 브런치에 자주 글을 올리지 못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누가 출간을 제안하지도 않았는데 뜬금없이 장편 소설 쓰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문예 창작에 대해서는 배워본 경험도 없다. 그래서 겁도 없이 도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글이라고는 브런치 작가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기록하는 게 전부였다. 글쓰기를 취미로 하는 분들과 함께 단편 소설집을 낸 경험이 있지만, 말 그대로 취미활동이었다. 하지만 브런치를 통해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해 주지 않았다면, 단편 소설 쓰기라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지 않았다면, 장편 소설에 도전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장편 소설 쓰기를 하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한 권 분량의 책을 오롯이 써 본다는 경험이 나를 '작가'의 길에 한 발 더 다가서게 해 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단편 소설 쓰기 모임의 첫 만남이 있던 날이었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고 4개월이 조금 지난 때였다. 나이도, 성별도 다른 각양각색의 일곱 사람이 모였다. 참석자는 첫 만남에서 소설 쓰기를 함께 진행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구성원들이 어떤 사람인지, 모임을 주도할 프로젝트 리더의 성향은 어떤지 등을 고려해 최종 결정을 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다른 회원들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나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었다. 운 좋게 한 번만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지만, 일상의 기록과 소설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은 한 줄도 써 내려갈 자신이 없었다. 참여를 망설이는 내게 프로젝트 리더가 웃으며 말해 주었다.   


 "연필로 생각나는 것을 종이에 써보세요. 지금까지 쓰지 않은 것뿐입니다.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 편의 글이 완성될 거예요." 


 물론 그 말처럼 글 한 편이 쉬이 써지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모임 참여를 결정했다. 참가를 결정한 네 사람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서로의 글을 읽고 좋은 점은 칭찬해주고, 이해가 되지 않는 전개나 궁금한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3개월 후에 마침내 200페이지 정도 분량의 단편 소설집을 완성했다. 이 책은  <뜨거운 물 있나요?>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물론 서점에서 판매하지는 않는다. 각자 가족이나 친구에게 선물하는 용도로만 출판하기로 했다. 나는 꽤 많은 50부를 발행했다. 직장 동료, 학교 선후배 등 지인분들께 선물로 드렸다. 내 입장에서 '선물'이지, 받는 분들은 '부담'이었을 것이다. '이걸 왜 나한테?' 이런 마음이었을지도.  


 다행히 책을 받은 분들은 글이 너무 좋다, 재미있다는 등 칭찬 일색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사실 소설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글임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형식적인 칭찬이라도 고마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몇몇 독자분은 아내를 통해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며, 반드시 작가님께 잘 읽었다고 전해 달라고 하셨다. 진짜 작가가 된 기분이 들었다. 한 명이라도 진심으로 재미와 감동을 느꼈다면 그것으로 단편 소설 쓰기 도전은 성공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발 더 나아가 장편 소설 쓰기 도전을 결심할 수 있었다.   


 20년 직장생활을 마케터로 살았다. 해보고 싶은 것,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을 원 없이 해 보았다. 하지만 언제나 가슴 한 구석에 채울 수 없는 결핍 같은 것이 있었다. 기회가 닿으면 오래도록 마음에 품었던 꿈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것, 작가의 길을 가고 싶었다. 내가 창조한 세상에서 독자들이 희로애락을 경험하기를 바랐다. 글 쓰기로 경제 활동도 하고, 지역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도 싶었다. 베테랑 마케터인 나는 이제 막 번데기가 되었다. 작가라는 나비로 거듭 태어날 수 있도록 노력이, 행운이 필요한 순간이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독자의 관심과 칭찬도 필요하다. 독자만이 비로소 작가를 작가답게 만들어 준다. 


 나는 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독자가 항상 그곳에 함께 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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