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홍 Jul 24. 2020

아내의 야누스적 측면

미처가 (美妻歌) 제4장 : 의식과 무의식의 이중주

<아내가 그린 '껌 좀 씹어 본 엄마' / 2018년 작품>

경국지색 절세가인 첫눈에 반해 부부의 연 맺었더니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하여도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우리 님아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복덩이가 넝쿨째 굴러왔네. 

오호통재라 그 모습이 전부라면 얼마나 좋을 것을 

프로이트가 개척한 무의식의 세계에 새 역사를 쓴 우리 님아

무림 고수나 시전 할 초절정 무공으로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내 모습 초라하네.   

미처가 미처 (美妻歌 美妻 / 아름다운 아내를 노래하네 아름다운 아내를) 

미처요 미처 (美妻謠 美妻 / 아름다운 아내를 노래하네 아름다운 아내를)


 아내는 언제나 반듯하고 행동에 기품이 있다. 정도(正道)를 걸으며 매사에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는다. 정의(正義)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이를 삶 속에 투영해 실천하고자 노력한다. 전 지구적 평화와 인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깊은 고뇌는 종종 늦은 밤까지 아내를 잠 못 이루게 한다. "소통, 공감, 배려"라는 가훈은 온 가족이 참여한 열린 토론회를 통해 제정하고, 이를 집안 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가훈의 조기 정착을 위해 생활 속 실천을 몸소 보여주기도 했다. 


 아내는 어떤 상황에서도 거친 말은 하지 않는다. 나는 아내가 그 흔한 욕(설) 한번 하는 것을 지금까지 듣지 못했다. 물론 약간 예외적인 경우는 있다. 누구나 공감하듯이 사내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는 때론 다소 과장되고 위협적인 언행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순간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는 재채기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누구나 인정하고, 동의하는 것이다. 그런 순간에도 차분하고 조근조근 말할 수 있는 사내아이 둘 엄마가 있다면, 그녀는 분명 사람이 아니고 천사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인간적이기까지 한 아내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아는 한, 아내는 인간계에서 가장 선하고 바른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아내의 전부가 아니다. 남들은 알지 못하는 아내의 다른 면이 존재한다.


 아내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위에 열거한 내용은 맹세코 모두 사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아내의 다른 면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그것은 선하고 바른 아내의 모습이 깨어 있을 때에 한한다는 것이다. 아내가 잠들어 있을 때, 종종 무의식 속 아내는 의식 속 아내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굳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접근이나 융의 분석심리학적 접근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아내의 의식 속 자아와 무의식 속 자아가 강렬하게 충돌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내의 어두운 면, 폭력적인 면에 희생당하는 사람은 언제나 나였기 때문이다. 


 아내는 잠꼬대를 하면 항상 누군가를 혼낸다. 거친 말도 서슴없이 한다. (물론 이때도 욕설은 하지 않는다.) 아내가 피곤해서 먼저 잠들고 옆에서 책을 읽고 있거나 TV를 보고 있을 때면 가끔 들리는 아내의 잠꼬대는 무척이나 낯설다. EC나 IC처럼 평소에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말투와 단어들이 마구 쏟아진다. 대상이 누군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호되게 꾸짖기도 하고 화를 퍼부어 대기도 한다. 다이어트 중일 때는 (1년 365일이 다이어트 시즌이지만) '아이고 배고파'라는 말도 자주 하는데 이런 잠꼬대는 차라리 귀여운 편에 속한다. 


 잠꼬대를 말로 하는 것은 그런대로 괜찮다. 깜짝 놀라는 정도지 나한테 직접적인 피해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타격을 동반한 잠꼬대가 몇 번 있었는데 이는 모두 내게 치명적이었다. 


 첫 번째 경험은 결혼 전에 있었다. 결혼 날짜를 잡은 후, 양가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2박 3일 서해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결혼을 약속한 사이지만, 아직 한 침대를 사용할 수는 없어서 예비 아내는 침대에서 나는 바닥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그렇게 첫 날을 보냈는데 예비 아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둘째 날은 침대에서 같이 자도 좋다는 윤허(允許)를 내렸다. 아내의 성정(性情)을 익히 아는 터라 순수한 잠 이외의 목적은 언감생심(焉敢生心) 생각지도 않고 성은이 망극하게도 한 침대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한참 잘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얍" 하는 기합 소리가 나더니 이내 예비 아내가 나를 걷어차 버렸다. 무방비 상태인 나는 침대에서 약 1미터 정도를 날아가 내동댕이 쳐졌다. 너무 황당한 나머지 아픈 줄도 모르고 후다닥 일어나 예비 아내를 쳐다봤는데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당장 깨워 따져 물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날이 밝으면 이야기하기로 마음먹고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생각에 생각이 쌓이다 보니 잠이 올 리 없었다. 걷어 차인 상황도 황당했지만, 몸무게가 훨씬 많이 나가는 내가 그렇게 무참하게 나가떨어지는 상황도 설명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말하면 누가 믿어주기나 할까 싶었다. 다음날 아침 예비 아내에게 어젯밤 일에 대해 설명했더니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시치미를 뗐다. 자기가 걷어 찰 일도 없지만, 무슨 힘이 있어 오빠를 날려버리겠냐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했다. 혹시 꿈꾼 거 아니냐고. 그렇다면 정녕 그것이 꿈이었단 말인가? 나도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 한밤 중 걷어차여 종이장처럼 날아간 사건은 그렇게 미스터리로 남았다. 


 두 번째 경험은 신혼 초에 있었다. 가장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전쟁이 마침내 막을 내리고 가정의 평화가 찾아온 시기였다. 그때를 회상해보면, 지금도 그렇지만, 한 쌍의 원앙처럼 금슬 좋은 부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싸한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깼다. 자다 깨는 일이야 흔하디 흔한 일이지만, 그날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정말 자다가 번쩍 눈이 떠졌다. 의식적으로 뜬 것이 아니고,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눈이 떠졌다. 그 순간 아내의 손이 얼굴 위로 쉬익 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외마디 비명. 나는 불을 켜고 거울 앞으로 뛰어갔다. 마치 울버린의 아다만티움 칼날에 공격받은 것처럼 얼굴에 선명하게 빨간 줄 세 개가 그어졌다. 그 와중에도 아내는 평화로이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화가 났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얼굴에 상처 난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내 얼굴이 증거니 아내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는 꿈에서 내가 나쁜 짓을 했다며, 나쁜 짓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꿈에서) 내 얼굴을 할퀸 것인데 현실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다니 정말 신비로운 체험이라고 했다. 아내는 신기해했지만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꿈이 너무 간절하면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나마 위로가 된 것이 있다면 이번에는 아내가 자신이 한 일을 인정했다는 것뿐이었다. 


 두 번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경험한 나는 오랜 명상과 참선을 통해 결국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은 누구나 선한 면과 악한 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사람에 따라 누구는 선함이 강하고, 누구는 악함이 강하게 분출되어 그 사람의 인성이 된다. 하지만 선한 사람도, 원래 가지고 있던 악함을 억누르는 것이지 완전히 소멸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억압된 악함이 결국 무의식을 통해 표출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그렇게 선하고 바른 아내가 무의식 중에 잠꼬대를 통해서 그 악함을 거친 말과 폭력으로 폭발시키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라도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정말 아내가 잠을 자고 있었을까? 적어도 한 번은 계획적이지 않았을까? 아내와 가끔 치킨에 맥주 한 잔을 할 때마다 그날의 사건을 웃으며 묻곤 한다. 여전히 아내는 정말 잠을 자고 있었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말해 주어 알게 된 것이라고 했다. 아내의 손톱이 내 얼굴에 그린 상처는 무려 한 달이나 갔다. 그사이 만난 사람들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어, 믿지도 않겠지만, 숱하게 거짓말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진실이 밝혀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패권은 이미 아내가 꽉 쥐고 있고, 상처 받는 사람은 또 내가 될 것을 말이다. 


 아내는 지금 사용하는 퀸 사이즈 침대가 너무 좁다고 자주 불평을 한다. 항상 大자로 편하게 주무시면서도 말이다. 그럼 다음에 침대를 바꿀 때는 반드시 킹 사이즈로 고르겠다고 다짐을 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킹 사이즈 침대로 바꾸어도 나는 침대 끄트머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자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잠을 자는 순간에는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바닥에 내려가 자라고 하지 않는 게 어디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여전히 한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성은을 베풀어 주는 아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감사할 것이 많은 삶은 축복받은 삶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나처럼 산다면 싸움이나 전쟁은 사라질 텐데......라고 엉뚱한 상상을 하는 밤이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 모든 부조리에 대한 저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