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름은장.순.희.입니다

할머니의 품이 그리운 여덟째 외손녀

by 조이홍

나의 할머니, 아무도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지만 그녀도 고운 이름을 가졌습니다. 그녀 이름은 장순희입니다.


아직은 진달래꽃 꿀을 빨아먹던 어린 시절, 나는 그녀를 할망구라고 불렀다. 철없는 어린아이에게 무슨 불순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함께 보다가 우연히 듣고 따라 했나 보다. 그 단어가 품은 정확한 뜻을 헤아릴 수 없었다. 단지 친근함의 표현이었을 뿐. 그때 할머니는 봄꽃처럼 싱그럽고 활기 넘쳤다. 아빠가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해 혼자서 일하랴 아이들 돌보랴 고생하는 당신의 딸을 위해 춘천에서 수원까지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한 걸음에 달려오곤 했다. 엄마한테 된통 혼난 뒤로 할망구라는 말은 쏙 들어갔지만, 그녀는 나에게 부모님보다 더 가까운 존재였다. 고맘때 재미있게 읽던 동화책에 나오는 마귀할멈과 달리 그녀는 한없이 살가웠다.


할머니가 집에 오는 날이면 냉장고가 빈틈없이 채워졌다. 그녀는 항상 떡이며 만두며 고구마 말랭이를 양손 가득 들고 왔다. 밖에서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나와 언니를 '돌보러' 온 것이다. 그녀가 오면 냉장고뿐만 아니라 어린 내 일상도 빈틈없이 메워졌다. 초등학교 입학식이며 운동회에서 내 보호자는 언제나 그녀였다. 너무 어렸던 터라 60대 젊은 할머니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는 따뜻한 손길, 정겨운 냄새, 달짝지근한 고구마 말랭이와 담백한 된장찌개 맛으로 기억된다. 작고 어린 나에게 그녀는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의 안식처였다.


조금 더 자라 자기중심적인 세계에서 벗어났을 때, 엄마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할머니도 어렸을 땐 귀여운 소녀였겠지?” 그녀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보았다. 잘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 일찍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할머니가 된 그녀에게 싱그러운 소녀 시절은 애석하리만치 짧았다. 평생을 자식과 손주들 돌보느라 고생한 할머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즐겨 보던 TV 연속극을 찾아 틀어드리는 것뿐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은 거의 사라졌다. 기숙학교에 들어가 할머니 댁에 갈 시간도 없었지만,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손주가 잇따라 태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나대로 내 자리에서 전력 질주해야 한다는 이유로 애써 가족 모임을 외면했다. 어느 날, 이른 아침부터 몸에 좋은 재료를 듬뿍 넣어 죽을 만들고 있는 엄마를 보며 그녀가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 안부 전화 한 통에도 기뻐했을 텐데 그때의 나는 침묵을 선택했다. 공부가 최우선이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게 그녀에게도 좋으리라 내 멋대로 생각했다. 철없던 시절 할망구라고 부른 일과는 비교가 안 되는 잘못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건강을 회복했지만, 죽을 담는 엄마의 서늘한 모습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대학생이 되어 그녀와 진해에 간 일이 있다. 진해는 그녀의 형제, 자매가 있는 제2의 고향이었다. 벚꽃이 한창이던 4월, 춘천에서 대구를 거쳐 진해까지 긴 여정을 함께했다. 버스 안에서 그녀의 옛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남쪽의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났고 전화도 없고 교통시설도 엉망이었던 그 시기에, 일주일이나 걸려 춘천을 오가며 자리를 잡았고 그 뒤로는 진해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오랫동안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몇 시간에 걸쳐 도착한 그곳에는 그녀와 똑 닮은 또 다른 그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년만의 재회 속에서 그녀의 웃음과 울음을 지켜보다. 대가족을 일구어낸 굳센 그녀지만, 언니들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요즘 같은 세상에 진해 정도는 금방이지만, 그녀는 또 오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 ‘약속하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오랜 시간 아내이자 엄마로, 할머니로 살아온 그녀에게 재회의 시간마저 너무 짧았다. 진해의 벚꽃은 아름다웠고 그녀는 어느 때보다 즐거워 보였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그녀의 소녀 시절이 '이런 모습이었겠구나' 싶었다. 다음에도 진해에 오게 되면 내가 꼭 모시고 오리라 마음먹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할머니의 두부조림>

내가 점점 엄마를 닮아가는 것을 보면, 엄마 성격도 그녀로부터 유전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굳세고 강한 생존력. 늘 베푸는 마음, 성실하고 근면함, 긍정적인 태도까지. 이 모든 것을 엄마에게 물려주고 다시 나에게 전해준 그녀에게 아직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엄마가 물려받지 못한 것은 그녀의 두부조림이다. 우리 가족에게 그녀의 두부조림이야말로 간장게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밥도둑이다. 그 두부조림을 더 오래오래 먹고 싶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녀만의 무심하면서도 완벽한 두부조림을 계속해달라고 칭얼대는 것은 다 자란 손녀의 철없는 욕심은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그녀와 함께했지만, 한동안 그녀의 이름을 몰랐거나 까먹었다. 오랜 시간 엄마였고 또 할머니였던 그녀의 이름은 장, 순, 희다. 그녀는 장순희다. 장순희의 두부조림이고 장순희의 된장찌개며 장순희의 고구마 말랭이다. 그녀의 이름 석 자야말로, 어린아이였고, 소녀였으며 일찍 엄마가 되었고, 할머니가 된 그녀의 생애를 담아내는 공평한 이름이다. 나는 우리 가족과 그녀 자신이 그 이름을 더 오래도록 불러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 그녀 이름은 장순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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