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처음으로 살 빼고 예뻐진 막내딸
1971년 내가 태어난 해에 아빠가 경찰공무원이 되셨다. 평생 통통한 매력을 뽐내며 살아온 나는 아기일 때도 만만치 않아서 언니들이 포동포동한 내 엉덩이를 수제비 뜯듯 가지고 놀았다. 우람한 골격이 장군감이라며 아빠 친구들 칭찬도 자자했다. 여자 아이에게 그런 말이 칭찬일 리 없겠지만, 씩씩하고 건강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기분 나쁠 것도 없었다. 아무튼 딸 넷 바람 잘 날 없는 집에 복동이가 태어났다고 다들 예뻐해 주었다. 게다가 3년 후에는 그렇게 바라던 아들이 태어났으니 내 위상은 막내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다섯 번째, 즉 막내딸로 태어난 나는 아빠의 예쁨을 많이 받았다. 아마도 아들 같은 우람함이 한몫했겠지만, 아들이 태어난 이후에도 아빠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자주 놀러 다녔다. 나도 그때는 아빠를 더 좋아했다. 아빠가 숙직하는 날이면 엄마 손을 잡고 아빠한테 도시락을 전해 드리러 경찰서에 가곤 했다. 그때마다 아빠는 항상 ‘데이트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경찰서까지 먼 길을 걸어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은 이유는 아이스크림 때문이었다. 다복한 집안이라 먹는 건 늘 전쟁이었다. 아빠가 사준 아이스크림을 혼자서 편안하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경찰의 날'이면 지급되는 종합 선물세트나 선물용 카스텔라도 언제나 나와 동생 몫이었다.
아이에서 여자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은 엄마에게 닿았다. 엄마에게서 ‘아내와 누군가의 엄마로 사는 외로움과 고달픔’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이후로는 엄마 생각만 하면 눈물부터 먼저 났다. 사내아이 둘 키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엄마는 어떻게 우리 일곱(자식 여섯에 아빠까지)을 키웠을까 고개가 절로 흔들어졌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엄마의 멍든 가슴이 짐작되었다. 내가 경험한 사연만 풀어놓아도 눈물이 마르지 않을 것이다. 마침 막내 제안으로 엄마와의 기억을 글로 쓸 기회가 주어진 김에 눈물 ‘쏙’ 감동 사연보다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려 보려 한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이 살던 요선 터널 위 집에는 텃밭이 넓었다. 부유해서 그런 건 아니고 가난한 동네다 보니 남는 게 빈 땅이었다. 식물을 좋아하는 엄마 덕분에 텃밭에는 과실수나 꽃들이 가득했다. 한편에는 꼭 빠지지 않고 호박을 심었다. 엄마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엄마는 큰 호박을 따 노랗게 될 때까지 잘 보관했다. 늙은 호박이 되면 보자기에 쌓아 내 손을 잡고 어딘가로 향했다. 중국집이었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늙은 호박과 짬뽕을 물물 교환했다. 언제나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 덕분에 맛있는 짬뽕을 공짜로 얻어먹었고, 지금까지 짬뽕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엄마가 오징어찌개와 달걀 장조림을 만들어 학교로 도시락을 싸다 주시곤 했다. 엄마 음식을 맛본 반 친구들은 엄마표 오징어찌개가 정말 맛있다며 부럽다고 했다. 오징어찌개는 다른 집에서는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이었는데, 엄마의 특별한 비법으로 만들어 백종원도 그 맛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최고의 맛을 자랑했다. 신랑이 부모님께 인사한다고 무작정 우리 집에 쳐들어온 날, 친구들과 동전 내기 화투를 치던 엄마가 급하게 만들어 준 음식도 오징어찌개였다. 신랑은 지금도 가끔 그날 먹은 오징어찌개 이야기를 한다. 어깨너머로 본 엄마의 비법을 따라 만들어 봤지만, 그 맛은 흉내 낼 수 없었다. 개량도 하지 않고 눈대중으로 대충대충 넣어도 엄마 음식은 언제나 정갈하고 깊은 맛이 났다. 언제쯤이면 그 비법을 터득할 수 있을까?
3년 전 엄마와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큰언니와 둘째 언니 그리고 막내 고모와 일본 규슈를 3박 4일간 여행했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잠을 설치고 새벽 일찍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커다란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터미널에 도착한 나는 엄마를 보고 그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터미널 바닥에 구를 정도로 웃었다. 명색이 해외여행인데 엄마는 짐을 보자기에 싸 왔다. 안에는 달랑 옷과 속옷 몇 벌, 세면도구가 전부였다.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은 딸들이 챙기기로 했지만, 해외여행을 가는데 보자기에 짐을 챙겨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엄마 보자기는 고스란히 내 캐리어로 들어갔다. 엄마 덕분에 모두 한바탕 신나게 웃었다.
벌써 몇 번째 해외여행인데 엄마는 비행기 타는 것도, 현지 식사도 힘들어했다. 평소에도 워낙 소식해 먹는 게 특히 걱정되었다. 회를 드시지 않는 엄마에게 일본에서 입에 맞는 음식을 찾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나마 일본식 카레가 입에 맞았는지 그것만큼은 한 그릇을 다 비우셨다. 아빠에게도 해 준다며 선물로 카레를 살 정도였다. 다행히 한 여관에서 만난 한국 여행객이 김치를 나눠주어 한 끼 맛있게 식사하셨다. 딸들과 여행하는 게 기분 좋으셨는지 우리한테 맞춰주시느라 힘든 기색 하나 안 하셨다. 온천도 즐기고 '가마도 지옥'에서 발도 담그고 달걀과 사이다도 먹고 뱃사공이 노래 실력을 뽐내는 배도 탔다. 특히 유타카를 입은 모습은 예쁘고 귀여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본 온천은 저녁 시간과 아침 시간에 남탕과 여탕이 서로 바뀌었다. 혹시 남탕으로 들어가는 대참사가 발생할까 봐 엄마는 몇 번이고 확인했다. 온천을 하고 나온 엄마 얼굴에서는 광채가 났다. 엄마 리즈 시절을 보는 듯했다. 엄마는, 지금도 내 눈에는 예쁘지만, 정말 미인이셨다. 엄마는 잠은 꼭 막내딸과 잤다. 지금은 운동을 많이 해서 살이 쏙 빠졌지만, 일본 여행 때는 통통할 때라 코를 많이 골았나 보다. 엄마는 내 코 고는 소리가 시끄러워 잠을 못 자겠다고 하면서도 꼭 나랑 함께 주무셨다. 사실 자다 깨 보면 엄마도 피곤하셨는지 코를 골며 꿀잠을 주무셨다. 그런 엄마를 한참 쳐다보고 있자니 웃음도, 눈물도 났다. 일본에서 보낸 엄마와의 3박 4일은 너무 짧았지만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열심히 돈을 모아 내년에도 여행하자고 약속했는데 어느덧 3년이 훌쩍 지나버렸고 이제는 코로나가 말썽이다. 세상 일이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엄마가 오랫동안 건강해서 딸들이랑 자주 여행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러 다니면 좋겠다. 젊어서 고생하신 것, 자식들 키우면서 속 썩인 것도 이제 좀 보상받으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살 빼고 예뻐진 막내딸이 효도 실컷 할 수 있게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해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