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촌놈’이 되어 할머니 사랑을 담뿍 받는 둘째 손자
명절이 일 년에 두 번밖에 없다는 게 늘 불만이다. 춘천 할머니 댁에 가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 엄마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명절이 있으면 좋겠다. 평소에는 상상도 못 할 많은 용돈을 받을 수 있어 그런 건 아니다. 용돈을 많이 받긴 해도 그 돈은 어차피 엄마 지갑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니 내게 좋은 건 일도 없다. 갖고 싶은 장난감이나 게임 아이템 현질은 꿈도 못 꾼다. 그동안 받은 용돈 다 어디 있는지 물어보면 엄마는 늘 똑같은 대답을 한다.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어쩜 그렇게 거짓말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할 수 있는지. 혹여 내가 가지고 있을 테니 돌려달라고 하면 당장 오늘 저녁부터 밥값이며 숙박비를 내라고 한다. 엄마랑 대화가 길어지면 나만 피곤해진다. 내가 그토록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는 건, 한 달에 한 번씩 명절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할머니 꼬치전 때문이다. 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맛난 꼬치전을 만드신다. 할머니 음식이라면 전부 내 입맛에 딱 맞지만, 그중에 최고는 역시 꼬치전이다. 햄과 맛살, 그리고 단무지와 매번 바뀌는 채소가 긴 이쑤시개에 줄줄이 꽂혀 있어 색깔까지 고운 할머니 꼬치전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맛이다.
명절에 춘천 할머니 댁에 가는 고속도로는 주차장이 따로 없다. 아무리 일찍 출발해도 차가 막힌다. 마음 급한 아빠와 나는 조금이라도 일찍 출발하고 싶어 안달인데 엄마는 서두르지 않는다. 할머니 댁에 가는 날이면 언제나 평소보다 싸늘하다. 나만 느끼는 줄 알았는데 형아도 나랑 생각이 같아 놀랐다. 아빠는 엄마 눈치 보느라 어서 출발하자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형아는 빨리 가든 늦게 가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막히는 차 안에서 들을 음악만 있으면 오케이니까. 엄마에게 서두르라고 말하는 건 언제나 내 몫이다. 엄마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재촉하면 저 멀리서 아빠가 엄지를 치켜세운다. 불쌍한 우리 아빠. 내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차 안에 꼼짝달싹 못 하는 건 나도 정말 싫다. 짜증 나고 답답하다. 몇 번을 자고 깨도 언제나 같은 자리다. 최후의 수단으로 할머니 꼬치전 먹는 상상을 한다. 기름이 적당히 밴 큼직한 꼬치전을 한입 베어 물면 입안에서 흥겨운 축제가 열린다. 꼬치전과 함께 먹는 동그랑땡, 동그랑땡을 싸 먹는 메밀전까지. 할머니 전을 먹는 상상으로 지루한 시간을 버티고 버틴다.
춘천에 가면 엄마는 나를 ‘춘천 촌놈’이라고 부른다. 집에서는 절대 안 먹는 음식도 춘천에서는 잘 먹는다고 붙여준 별명이다. 매워서 입도 못 대는 김치나 두부조림도 춘천만 가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엄마가 놀란 토끼 눈으로 쳐다보는 게 당연하다. 할머니가 한 상 가득 차려 주신 밥상이 엄마가 해주는 것보다 훨씬 맛있으니 어쩔 수 없다. 솔직히 엄마 책임도 크다.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평소에는 좋아하지 않던 할머니 음식을 그렇게 먹고 싶었다고 했다. 춘천만 가면 밥을 두 공기씩 비웠단다.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할머니 음식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춘천에 도착하면 전 만드는 일은 벌써 끝나 있다. 엄마는 집에서 가져간 앞치마와 고무장갑을 챙겨 쏜살같이 부엌으로 달려간다. 할머니는 “내 새끼 배고프지?” 하시며 방금 만든 따뜻한 전을 큰 접시에 한가득 담아 주신다. 아침도 못 먹고 몇 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할머니 댁. 허겁지겁 전을 먹는다. 눈 깜짝할 사이 꼬치전 10개가 사라지고 긴 이쑤시개가 생선 가시처럼 내 앞에 차곡차곡 쌓인다. 얼른 이쑤시개 몇 개를 형아 앞에 몰래 옮겨 놓는다. 그래야 꼬치전을 더 많이 먹을 수 있다. 꼬치전을 워낙 좋아하는 둘째 손자 때문에 할머니는 항상 꼬치전을 많이 만드신다. 아빠는 할머니 힘드시다고 차례상에 올릴 만큼만 시장에서 사 오자고 하지만, 할머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예쁜 손자가 이렇게 잘 먹는데 무슨 소리냐며 아빠를 혼내신다. 효자 아빠 때문에 이 맛있는 꼬치전을 몇 번이나 못 먹게 될 뻔했다. 눈치 없는 우리 아빠! 할머니가 무얼 원하시는지 정말 모르나 보다. 꼬치전으로 배가 부르면 자연스럽게 손은 동그랑땡을 향한다. 돼지고기와 두부를 함께 넣어 만든 동그랑땡은 꼬치전 다음으로 좋아한다. 동그랑땡을 메밀전에 싸 먹으면 그 맛은 또 얼마나 환상적이던지! 내가 개발한 방법인데 안 먹어본 사람은 절대 그 맛을 모른다. 그렇게 먹는 내 모습에 할머니 눈이 휘둥그레지신다. 할머니는 차례상에 올릴 전은 따로 빼두었으니 좋아하는 전 실컷 먹으라 하신다. 얼마나 기다리던 명절, 얼마나 기다리던 할머니 전이었던가! 배가 빵빵해져 숨쉬기 힘들 때까지 전 먹기는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할머니 전이 가득 담긴 쟁반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꽃동산을 걷는 기분이다. 맛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꼬치전은 꽃의 여왕 장미고, 노란 동그랑땡은 튤립이다. 메밀전은 엄마가 좋아하는 안개꽃이고, 동태전은 국화꽃이다. 눈감고 아무거나 하나 집어 먹어도 꽃길을 걷는 것처럼 기분 좋다. 유명한 맛집처럼 할머니도 전을 만드는 특별한 비법을 가진 게 틀림없다. 아빠는 할머니 음식에 세월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월이 어떻게 그런 맛을 내는지 나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왜 엄마 음식 솜씨가 할머니를 따라갈 수 없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엄마에게도 시간이 필요한 거였다. 엄마는 무언가를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할머니 음식을 더 오래오래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춘천에 가는 날이면 우리가 올 때까지 길에 나와 기다리시는 할머니, 한번 안아보자고 하시고, 다정하게 머리 쓰다듬어 주시는 우리 할머니. 세상에 하나뿐인 전 만들어 주시는 우리 할머니. 할머니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할머니 꼬치전만큼이나 우리 할머니가 정말 좋다.
코로나로 명절이 두 번 지나도록 춘천에 못 갔다. 영상통화로 만난 할머니는 내 새끼 보고 싶다며 우셨다. 나는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 대신 진심으로 할머니 꼬치전이 먹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나랑 동생이 보고 싶어 백신을 2차까지 맞으셨다고 하셨다. 돌아오는 추석에는 꼬치전 많이 만들어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하루빨리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끝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