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특제 민간요법

할머니 덕분에 세상에 나온 셋째 외손자

by 조이홍

믿기 힘들겠지만, 아직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나는 마치 신의 계시처럼 어떤 목소리를 들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몸이 많이 아팠던 엄마는 나를 낳기에 너무 연약했다. 어쩔 수 없이 배 속에 있는 태아를 포기해야 한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긴박했던 그 순간, 목소리 주인공이 수술실 문을 부술 듯 달려와 의사를 막아섰다. 덕분에 내가 태어났다. 세상 밖으로 나와보니 목소리의 주인공은 할머니였다. 그래서일까? 세상에 존재한 그 순간부터 할머니와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강한 끈으로 연결되었다.


부모님이 매우 바빴기에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와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기저귀를 차고 막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쭉 그랬다. 할머니 가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다녔다. 친척이나 할머니 친구 자녀들 결혼식은 말할 것도 없고, 친구네 고스톱 치러, 재래시장 장 보러 심지어 계모임까지 따라나섰다. 보통의 아이들이 친구들과 놀 때 나는 할머니 친구들과 어울렸다. 어린 시절의 삶은 할머니를 빼놓고 상상할 수 없다.


긴박함 속에서 태어난 탓인지 어릴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다. 천식, 비염, 축농증을 달고 살았다. 특히 천식 때문에 엄청나게 고생했다. 여름과 겨울 일 년에 두 번 정기적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 운동회에 참석해 본 적도 없었다. 조금만 뛰어도, 자전거를 타도 맞바람을 맞아도 천식이 발작할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끔찍했다. 당시에는 지금 복용하는 세레타이드나 벤토린이라는 약도 없었다. 중학교 때 아빠가 처음 벤토린이라는 약을 구해오기 전까지 나에게 세상은 숨쉬기 힘든 공간이었다. 정말 괴롭고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

<할머니는 내게 좋다는 건 무엇이든지 구해 오셨다>

할머니는 천식으로 괴로워하는 손자를 볼 때마다 눈물부터 흘리셨다. 천식에 좋다는 약재와 음식을 백방으로 수소문하셨다. 호두, 은행, 개복숭아, 약도라지, 배 등을 쉴 새 없이 다려 주셨다. 특히 은행과 호두를 갈아 만든 민간요법으로 누군가가 천식을 나았다는 말을 전해 들은 할머니는 손자 병을 고치겠다는 마음 하나로 춘천 시내에 있는 은행나무의 은행을 몽땅 주워 오셨다. 아마 그 은행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면 할머니 몇 달 치 용돈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아무튼, 할머니는 은행과 호두를 믹서기에 곱게 갈아서 끼니때마다 주셨다. 아무 맛도 없는 걸 처음에는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다. 천식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어린 나는 참 열심히 먹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효과에 의문이 들었다. 맛도 없는 걸 언제까지 먹어야 하나 괴로웠다. 너무 담백한 그 맛은 아이가 결코 좋아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으셨다. 먹기 싫다고 투덜대는 나를 어르고 달래며 끝까지 먹이셨다. 천식이 완치되지 않는다면 평생 먹어야 할지도 몰랐다. 어린 내 눈에도 할머니 정성과 노력이 보이기에 무작정 먹기 싫다고 할 수도 없었다. 치열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먹은 듯 안 먹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방 창문을 열었는데 창문 밖으로 어둑어둑하고 퀴퀴한 냄새가 풀풀 풍기는, 몇 년 동안 아무도 들락날락하지 않은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을 발견했다. 유레카! 이거다, 이거야! 여기에 버리자! 그날부터 비밀스러운 계획은 실행에 옮겨졌다.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마시는 척하며 안방에 들어가서 창문에 걸터앉아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계단 쪽으로 쏟아 버렸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성공했다. 먹는 연기가 너무나 훌륭했다. 이때부터 내 연기 세계가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할머니 특제 민간요법으로 만든 약을 먹기가 수월해졌다.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고 주는 대로 꼬박꼬박 잘 받아먹는 척했다. 갑자기 사람이 바뀌면 할머니가 눈치챌 수도 있으니 열 번에 서너 번은 불평과 함께 할머니 앞에서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켰다. 그 정도는 마실만 했고 또 마셔야 했다.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비로소 내가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방 안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온 날이었다.

“아니 이게 뭐야? 이게 똥이야? 뭐야 이게!”


할머니가 유력한 용의자인 나를 불러 세웠다. 할머니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침착하고 차분했다. 그래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몇 개월 전에 버렸고 그 정도 시간이면 전부 썩어 없어졌으리라 믿었다. 아니었다. 나만의 착각이었다. 몽땅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처음 본 내 눈을 의심했다. 몇 개월간 버린 녀석들이 재래식 화장실 응가 마냥 그대로 쌓여서 말라 있었다. 누가 봐도 범인은 나였다. 줄행랑쳐도 소용없었다. 할아버지도 경찰, 아빠도 경찰! 마음만 먹으면 금방 잡힐 게 분명했다. 순순히 자백하고 용서를 빌었다. 할머니는 아까운 걸 다 버렸다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게 진심으로 화를 내셨다. 요즘도 가끔 할머니는 그날 이야기를 하시며 눈물을 훔치곤 하신다. 나도 잘 안다. 할머니 사랑이 듬뿍 담긴 소중한 약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그 정도 눈치는 내게도 있었다. 하지만 어린 내가 먹지 못할 정도로 맛없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날 이후 할머니는 아이 입맛에 맞추기 위해 요구르트에 넣어 주셨다. 그렇게 만들어진 약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맛이었다.


지금은 천식을 이겨내고도 남을 만큼 강한 몸을 갖게 되었다. 할머니가 정성 들여 꾸준하게 만들어 주셨던 특제 민간요법 약 덕분임에 틀림없다. 어느 시인이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고 노래했는데 할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이 지금의 내 전부를 만들어 주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할머니가 안 계셨더라면 내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할머니는 내게 빛을 주셨고, 또 계속 빛이 되어 주셨다.


나는 할머니의 여럿 손주 중 하나지만, 내게 할머니는 정말 특별한 존재다. 그런 할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해드리지 못했다. 표현하지 않아도 아실 테지만 이 자리를 빌려 할머니께 말씀드리고 싶다. 할머니, 사랑해요. 항상 건강하세요.




번외로 천식을 고치기 위한 기도원 방문기도 살짝 공개해 볼까 한다.


천식을 고치기 위해 할머니를 따라 꼬불꼬불 시골길을 지나 기도원에도 자주 갔다. 거기에는 천식을 낫게 기도해준다는 마법사 같은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가 몇만 원씩 헌금통 같은 곳에 돈을 넣으면 치료가 시작되었다. 마법사 할머니는 일단 나를 눕히고 기도했다. 내용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사처럼 주문을 외웠다. 기도하고 나면 내 몸 이곳저곳을 쑤셨다. 손으로 창을 만들어서 목도 찌르고 가슴팍도 찔렀다. 배를 주물럭거리고, 목을 주물럭거리고 기도하면서 막 주물렀다. 무얼 하는 거지? 어린 나는 그 상황이 너무 웃겼다. 왜 자꾸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지 궁금했다. 이 마법사 할머니가 정녕 나를 치료하는 것인지, 간지럼 태우는 것인지 모르겠더라. 아무튼, 마법사 할머니는 열정적으로 나를 치료했고 우리 할머니는 열정적으로 마법사 할머니를 응원했고, 나는 열정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자꾸 찔러대니 간지러워 참기 힘들었다. 두 할머니가 그토록 진지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떼굴떼굴 구르며 웃었을지도 모른다.


기도원도 꽤 오래 다녔다. 한때는 믿어 보려고 노력도 했다. 그만큼 천식이 나를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기도로 치료된다면 나쁜 것도 없지 않은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믿음은 점점 사라졌다. 참고 참다가 마침내 웃음이 터져버렸다. 마법사 할머니가 제일 먼저 당황했고, 할머니도 당황했다. 웃은 나도 당황스러웠다. 그날을 마지막으로 더는 기도원에 가지 않았다. 지금도 그 기도원의 정체가 정말 궁금하다.

이전 04화오래도록 먹고 싶은 할머니 꼬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