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함께했고 앞으로도 늘 함께 하고픈 첫째 딸
행복이 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행복은 그리 거창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았다.
2015년 8월 7일, 시골에 작은 집 하나를 마련했다.
시간 날 때마다 그곳에서 엄마와 세상 사는 이야기를 했다.
쓰리고 아픈 기억도 지나고 나니 추억이란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되었다.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젊은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운 날도 있었다.
백발이 성성하고 온통 주름진 엄마 얼굴은 한없이 낯설고 또 한없이 친근했다.
인생이란 참 달콤쌉싸름했다.
입이 수시로 헐어 밥 한 끼 제대로 먹기도 힘든 엄마를 위해
어떤 음식을 준비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는 순간이 내겐 행복이다.
멸치국수, 수제비, 샤부샤부, 장어구이, 능이 닭백숙, 닭갈비, 등갈비찜, 비빔밥.
그중에서도 대패삼겹살 콩나물 찜을 가장 좋아하는 우리 엄마.
평상에 앉아 여유롭게 엄마와 밥을 먹으면 또 옛날이야기가 툭 튀어나온다.
그래도 엄마와 함께 있으니 행복하다.
엄마와 함께 텃밭에서 농사도 짓는다.
엄마 깻잎이 잘 자랐는지, 내 상추가 잘 자랐는지,
엄마 고추가 잘 자랐는지, 내 토마토가 잘 자랐는지
아이처럼 서로 자랑하고 비교한다. 그 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엄마가 키운 깻잎과 내가 키운 상추로 고기를 싸 먹으면
두 배는 더 맛있다.
언젠가는 해외여행도 함께 다녀왔다.
열심히 적금을 모아 엄마와 함께 여행하던 그때,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소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재잘대던 낭랑한 목소리
그곳의 낯선 풍경, 날씨, 음식까지 모든 것이 좋았다. 행복했다.
어릴 적 엄마와 나는 행복이 뭔지 잘 몰랐다.
행복은 특별한 것, 대단한 것이라 여겼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빴고, 버텨내기조차 힘에 벅찼다.
마지막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그때 아직 젊었던 엄마는 자식을 돌보기 위해
빨간 다라이에 꽈배기며 오꼬시 과자, 오징어, 소주, 배 등
여러 가지를 담아 머리에 이고 장사를 다녔다.
장사하러 나가면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오는데,
수돗물 나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던 그 시절 언덕 위의 작은 우리 집은
하루 동안 고생한 엄마의 꾀죄죄한 흔적을 씻어 내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도 엄마를 돕고 싶어 방법을 고민했다.
힘들게 일하고 온 엄마가 편히 씻을 수 있게 물을 받아 두었다.
수돗물이 나오는 시간에 맞춰 집에 있는 그릇과 다라이를 전부 꺼내
닥치는 대로 물을 받았다.
엄마는 간장 종지까지 물을 담아 둔 내게 기특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지만 나는 미소 속에 숨은 엄마의 눈물을 보았다.
일부러 못 본 적 했다.
그때부터 맏딸 본능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땐 너무 힘든 현실이 앞을 가려 깨닫지 못했지만,
그것도 엄마와 나 단둘이 간직한 행복한 순간이었으리라 믿는다.
엄마에 대한 기억은 가난 때문에 온통 부정적 이리라 생각했다.
아픈 기억들을 새삼 끄집어내 글로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한 줄 한 줄 적어나가다 보니 그 시절에도
나는 엄마가 있어, 엄마는 내가 있어 참으로 행복했다.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엄마와 행복한 기억을 새롭게, 많이 만들어 가고 싶다.
맛있는 밥도 함께 먹고, 농사도 재미있게 함께 짓고, 좋은 곳으로 여행도 하고,
동전 치기 화투도 치며 가끔 그 시절 이야기도 회상하면서.
앞으론 어떤 행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엄마와 내가 함께 그려나갈 행복이 어떤 모습일지 무척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