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경찰 제복 입은 모습을 보여드리고픈 열째 외손자
어린 시절에 할머니를 뵈러 가는 건 명절이거나 심부름하러 간다는 의미였다. 두 살 터울 형이 있는 막내라 어릴 때부터 심부름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우리 집은 할머니 댁과 가까웠다.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엄마는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선물이 들어오면 할머니가 먼저 떠오르는지 “막내야, 이것 좀 할머니께 갖다 드려.” 하고 심부름을 시켰다. 마냥 놀기 좋아하던 어린아이였던 내게 심부름이 즐거울 리 없었다. “이번에는 형한테 시켜 좀!” 하며 떠넘기기도 했고, 불평불만을 잔뜩 늘어놓기도 했다. '답정너!' 심부름은 막내의 피할 수 없는 숙명, 결국에 할머니 댁을 향해 뛰어가고 있는 건 언제나 나였다.
할머니 댁에 심부름 가면 빈손으로 돌아오는 법이 없었다. 양손 가득 무언가를 더 많이 받아오곤 했다.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할머니 마음을 난 그저 귀찮아서, 무거워서 괜찮다며 손사래 쳤다. 가끔 거짓말도 했다. "그거 우리 집에도 많아요."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내주고 싶은 마음을 어린 내가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을까? 천 원짜리라도 한 장 받아야 할머니가 내주신 반찬이며 군것질거리를 덥석 받았으니 역시 초딩다웠다.
명절이나 할머니, 할아버지 생신날이 되면 할머니 댁에 대가족이 모여들었다. 5녀 1남 자식들, 13명의 손주들, 그리고 언제부턴가 증손주까지 정말 많은 사람이 비좁은 할머니 댁을 가득 채웠다. 지금은 할머니 댁에 정수기를 설치해 아래층(둘째 이모)으로 물 가지러 갈 필요가 없지만, 내가 막내일 때는 매끼마다 아래층으로 물 뜨러 가야 했다. 그 심부름 역시 언제나 내 몫이었다. 식당에서나 볼 수 있는 커다란 플라스틱 물통과 지금은 없어진 큰 유리 주스병에 한가득 물을 떠 와도 식구가 많아 언제나 부족했다. 하루에도 일 층과 이 층을 수십 번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렇게 원하지 않는 운동을 실컷 하면서도 토실토실 살이 빠지질 않았으니 할머니 음식이 정말 맛있었나 보다. 손주 서열이 아래인 동생이 태어났지만, 그때는 할머니 댁에 정수기를 들여놔 물 떠 오기 심부름의 짜릿함을 경험하지 못했다. 이제와 생각하니 천만다행이었다. 이런 에피소드는 나만 간직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으니 말이다.
할머니는 항상 졸업식에 와 주셨다. 초등학교 때는 국밥, 중학교 때는 짜장면, 고등학교 졸업식 때는 갈비탕을 사 주셨다. 덕담과 함께 많은 용돈도 주셨다. 손주들 중 유일하게 우리 형제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빠짐없이 졸업식에 오셨다. 가깝게 산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할머니는 유독 우리 형제에게 특별한 사랑을 주셨다. 아직은 어려서 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만, 나이가 더 들면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졸업식 날 받은 용돈은 아꼈다가 학교생활에 필요한 걸 샀다. 할머니가 주신 용돈은 백 원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아니 쓸 수 없었다. 할머니가 아끼고 아꼈다가 주시는 소중한 돈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스무 살이 되어 첫 아르바이트를 하고 받은 월급으로 할머니께 내복을 사드렸다. 직접 땀 흘려 번 돈으로 처음 할머니께 무언가를 사드린 것이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할머니 생각이 제일 먼저 나서 내복을 사 왔다고 하니까 할머니가 무척 좋아하셨다. 기저귀 갈아주던 게 엊그제 같은데 다 컸다고 말씀하시며 눈가에 눈물이 그렁하셨다. 그런 할머니 모습을 보니 마음속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할머니께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돌려드리고 싶어 빨리 사회에 나가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해 8월 20일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되었다. 입대 전 가족들끼리 놀러 가 맛있는 밥을 먹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해 노래자랑도 했다. 손주들 장기자랑을 보고 웃으시는 할머니 미소는 순수하고 어린 소녀처럼 귀여웠다. 그 모습을 보니 할머니, 엄마가 되기 전에 어떤 삶을 사셨을지 궁금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여쭤보려고 마음먹었다. 첫 휴가를 나와 군복 입은 손자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곧장 할머니 댁으로 달려갔다. 난데없이 군복을 입은 남자가 집에 불쑥 들어와 깜짝 놀라셨다. 처음으로 할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휴가 나왔으니 재밌게 놀다 가라고 용돈도 넉넉하게 챙겨주셨다. 휴가 나갈 때마다 제일 먼저 할머니 댁부터 들렸다. 휴가 나온 손자를 반겨주시는 할머니 미소가 자꾸 생각났다. 전역 후 할머니께 군복이 아닌, 경찰 제복을 입은 모습을 보여드리리라 다짐했다.
"할머니, 우리 할머니, 경찰 제복 입은 외손주 모습 볼 때까지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제가 할머니 제일 많이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