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등에서 한참 칭얼거리다 잠들곤 한 일곱째 외손녀
우리 세대 많은 사람이 전화 포비아를 가지고 있다. 온라인 메신저, 채팅, 카카오톡 등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실시간으로 전화 통화를 하는 것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다. 전화 한 통이면 되는 배달 주문도 앱으로 주문하는 시대가 온 것을 보면 많은 사람이 전화 포비아를 경험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 또한 전화 통화가 썩 편안한 소통의 도구가 아닌 지 오래다.
어렸을 때부터 춘천에 다녀오면, 엄마가 '수원에 잘 도착했다'라고 할머니께 전화하라고 시키곤 했다. 어떤 때는 어버이날인데 장녀인 내가 대표로 할머니께 전화하라고 한 적도 있었다. 엄마가 직접 하는 게 어렵지 않았겠지만, 예쁜 손녀딸이 전화하면 할머니께서 더 좋아하시리라 여긴 탓이다. 어릴 때는 '뭐라고 말해야 하지?' 하는 막막함에 하기 싫다고 더 예쁜 동생에게 미뤘다. 수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이따금 할머니께 전화를 드린다. 초복에 삼계탕이라도 드셨는지, 춘천에 비가 많이 온다는데 할머니네 집은 아무 일 없는지 등등.
옛날에나 지금이나 통화료가 비싸서 용건만 간단히 하고 빨리 전화를 끊는 것이 할머니와 전화 통화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할머니에게 그 시절 습관이 몸에 깊게 배어있다. 대화하다 아주 잠시 정적이 생기기라도 하면 "어어~ 그래그래~ 어어~~"라고 자꾸 끊으려고 하신다. 실제로 종종 끊어버리기도 하신다! 엄마가 간혹 "아휴 할머니는 다음 말을 하려고 하는데 끊어버리시네"라고 웃으며 말하는데, 사실 엄마도 똑같다!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끊어버릴 때가 많고, 심지어 이모들도 똑같다. 성격 급한 게 홍 씨 집안 내력인가, 매력인가 싶기도 하다. 그럴 때면 할머니 생각도 나고 통화 습관도 유전인가 하면서 동생과 깔깔대며 웃는다.
하루는 출근하는데 발산역 주변에서 마스크 착용을 독려하는 자원봉사자가 서 있었다. 파마머리에 작은 체구의 그분을 보고 할머니 생각이 나서 곧장 전화했다.
뚜르르- 뚜르르-
"여보세요?"
"할머니, 저예요."
"아이고 우리 손녀니?"
"헤헤 비 이제 안 와요, 춘천에?"
"아휴, 비 많이 왔는데 좀 그쳤다, 너는 직장 잘 다니고?"
"네. 하하하. 출근하는 중이에요."
"아이고 쑥떡 가래떡 했는데 너희 엄마가 안 와서 못 줬다"
(용인 놀러 오시라고 하는 중)
(남자 친구랑 잘 지내냐고 하는 중)
"출근하는데 힘들지? 응 그래그래 응. 그래그래 응. 그래그래 으응."
"조만간 놀러 갈게요."
"그래그래 응. 그래, 응."
1분이 채 안 되는 통화에서 몇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했던가! 역시나 마지막에는 "응. 그래그래"로 통화가 마무리되었다.
할머니와 통화를 하면 2분을 넘기는 법이 없다. 심오한 얘기도, 하다못해 시시콜콜한 얘기도 길게 하지 않지만,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날의 마음이 따뜻해진다. 할머니도 나의 안부 전화로 그날 하루가 더 행복해지셨으면 한다. 조금 어색하지만 앞으로도 자주 전화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