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 읽어 보실래요?
책 읽는 걸 무지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바쁜 회사 생활에도 한 달에 책 다섯 권 읽기가 목표였다. 주로 출퇴근 시간 버스 안에서 읽었던 터라 어느 날은 졸기도 하고, 어느 날은 귀찮기도 했다. 그런 형편이니 어떤 달은 네 권, 어떤 달은 세 권 읽기도 쉽지 않았다. 한 권으로 헤맨 달도 많았다. 내 기억에 10년 동안 60권을 채운 건 딱 한 번밖에 없었다. 회사에도 몇몇 동료들이 책 읽기를 좋아해 좋은 책은 서로 권하기도 하고 읽은 책은 빌려주기도 했다. 나는 거기서 한 발 더 나가 소장하고 있던 책을 엑셀로 정리해 회사 자유 게시판에 올리고 빌려 주기도 했다. 내 도서 리스트가 별로였는지 어쩌다 한 권 빌려갈까 말까 했다.
하루는 회사 앞 별다방에서 나보다 더 책을 좋아하는 동료와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날도 반은 보스 뒷담화, 반은 책 이야기였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동료에게 건넸다.
"이 책, 다 읽은 거니까 자매님(동료) 읽고, 자매님 친구한테 빌려 주세요. 단, 내가 아는 사람은 빼고요."
"갑자기요?"
"네. 우리(대학 다닐) 때 책 선물 많이 했잖아요. 요즘에는 책을 많이 안 읽으니까, 이렇게 책을 여행 보내면 어디에 닿을지 궁금해서요. 그 대신 책을 읽으면 간단하게 소감 한 줄 정도 쓰고 다음 사람한테 빌려 주는 걸로요."
그렇게 해서 <책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 그 책이 어디에 있는지, 심지어 어떤 책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원래 바람대로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있을 수도 있고, 어딘가에서 냄비 받침으로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책 한 권 값으로 이런 모험을 상상할 수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임에 분명했다.
약 6개월 전, 크리스마스 주간에 코로나가 안겨준 온 택트 시대를 맞이해 아주 사적인 이벤트를 브런치에서 진행했더랬다. 新 <책의 여행>이었다. 그 당시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고 그걸 브런치에 올렸다. 결과는? 아무도 신청하지 않았다. T T
6개월이 지난 지금 다시 <책의 여행>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여행 보낼 책은 움베르트 에코의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브런치의 '제안하기'를 통해 개별적으로 연락 주시면 된다. 가장 먼저 메일 보내주신 분께 이 책을 보내드릴 예정이다. 물론 이미 내가 읽은 책이고 한 줄 평이 쓰여 있다. (밑줄 치거나 지저분하게 보지는 않았다) 이 책을 받게 될 독자(작가님)도 마찬가지로 완독 후 한 줄 평을 쓰고 지인에게 보내면 된다. 과연 신청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과연 이 책이 어떤 여행을 하게 될지 왠지 지금부터 궁금하다 (신청자가 없을 시 6개월 후에 다시 진행 예정!)
코로나 시대라 깨끗하게 소독해 우체국 택배로 발송 예정이다. 어차피 서너 분을 제외하고는 브런치에서 맺은 인연은 실제 지인은 없으니 이 책의 두 번째 독자부터는 자유로운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를 비롯해 여러분의 손때가 묻은 책이 어디에 닿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그걸 왜? 그저 좋은 책을 함께 읽고 싶은 뿐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처음에는 SNS(인스타그램)를 통해 책의 위치를 중간중간 파악할 수 있도록 계획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이번에는 생략했다. 어디에 있는 것이 뭐가 중헌디!
물론 책과 함께 아주 작은 선물도 동봉할 예정이다. 아내의 작품으로 만든 세상에서 단 하나(솔직히 몇 개) 뿐인 머그컵이다. 가족, 지인에게 선물하려고 단 몇 개만 제작했고 마지막 하나는 <책의 여행>을 위해 아껴두었더랬다. 머그컵 때문이라도 한 분이라도 신청해 주면 좋겠다. 물론 브런치 독자님들은 워낙 책을 좋아하시니 '책 때문에' 신청하시리라 생각되지만….
이쯤에서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가 어떤 책인지 궁금하시리라 생각한다. 아래는 <세 번 읽는 그림책>에서 소개한 글을 리라이팅 했다. 책이 궁금한 분들이 많아야 신청자가 한 분이라도 생길 것 같아서….
얇은 동화책에 나온 그의 이름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걸작 <장미의 이름>은 20대의 풋풋했던 내가 가장 사랑한 소설 중 하나였다. 10년 주기로 다시 읽곤 하는 <장미의 이름>은 1980년에 출간되었다. 나보다 불과 몇 살 어릴 뿐이다. 어린 시절에 책 좀 읽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읽었다. 소위 잘 나가는 소설이었다. 지금까지 네 번 정도 읽었으니 앞으로 적어도 다섯 번은 옆에 두고 더 읽고 싶은 작품이다.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귀는 벗'은 많을수록 좋지 않겠는가! 게다가 배울 게 많고 재미있는 친구라면 더욱.
<움베르트 에코의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가 우리 집에 온 건 코로나가 막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때였다. 움베르트 에코의 동화책이라고? 처음에는 눈살이 먼저 찌푸려졌다. 직전에 믿고 있던 친구에게서 세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후유증 때문이었다. 하루키의 '동화적 상상력'이 빛나는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에 좌절했기에 아무 잘못도 없는 이 책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루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움베르트 에코의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에는 정말 세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되어 있으나 하나뿐인 우리 별 지구와 그곳에 사는 우리기 직면한 문제라는 점에서 결국 하나의 이야기이다.
첫 번째 이야기 <폭탄과 장군>은 전쟁과 무기(핵폭탄)에 대한 이야기다. 아토모라는 원자가 주인공이다. 부자들이 돈을 대 무기를 잔뜩 만들어 놓자 장군에게 전쟁을 일으키도록 압력을 넣는다. 세상이 파괴될 것을 걱정하는 아토미와 그의 친구들은 핵폭탄에서 도망치고, 덕분에 핵전쟁은 무산된다. 도시마다 떨어진 핵폭탄은 터치지 않고 꽃병이 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전쟁 없는 세상이 훨씬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두 번째 이야기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은 다름(다양성)에 관한 이야기다. 화성에 간 미국인, 러시아인, 중국인은 서로 경계하고 미워한다.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구를 보며 '엄마'를 그리워하는데 '엄마'는 만국 공통어라 모두 같은 처지임을 깨닫고 하나의 지구인이 된다. 그때 갑자기 팔이 여섯 개나 달린 괴물처럼 생긴 화성인이 등장한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지구인들은 무기를 겨눠 화성인을 죽이려 한다. 때마침 불쌍한 새 한 마리를 보며 눈물짓는 화성인. 이를 본 지구인들은 화성인도 같은 감정을 지닌 존재임을 깨닫는다. 이제 모두우주인으로 하나가 되었다.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괴롭히고 심지어 죽일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다.
마지막 이야기 <뉴 행성의 난쟁이들>은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지구에 대한 이야기다. 황제 명을 받고 새로운 별을 찾아 나선 탐험가가 뉴 행성의 난쟁이들에게 발달된 지구 문명을 전하고자 한다. 지구 문명이 궁금한 난쟁이는 커다란 천체망원경으로 지구를 관찰하는데 기계문명이 지구를 오염시키고 황폐화 시킴을 목격한다. 난쟁이 대장은 그런 문명을 거절하고 오히려 역제안을 한다. 지구를 그들 별처럼 깨끗하고 살기 좋은 행성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지구로 돌아온 탐험가는 황제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는데, 신하들은 온갖 핑계로 난쟁이들이 지구에 오는 걸 막는다. 과연 왜 그랬을까?
<움베르트 에코의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를 읽으면서 신영복 선생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가 떠올랐다.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두 권의 책이 왜 자연스럽게 연상되었을까? 그건 아마도 두 권 모두 인간(인류)에 대해 따뜻한 시선으로 걱정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뉴 행성의 난쟁이들>에서 '장자의 소요' 한 대목이 떠올랐다.
자공이 초나라를 유람하다 진나라로 가는 길에 한수 남쪽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한 노인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밭에 내고 있었는데 힘은 많아 드나 효과가 별로 없었습니다. 딱하게 여긴 자공이 용두레라는 기계를 소개하자 그 노인이 분연히 낯빛을 붉히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스승에게 들은 것이지만 기계라는 것은 반드시 기계로서의 기능(機事)이 있게 마련이네. 기계의 기능이 있는 한 반드시 효율을 생각하게 되고(機心), 효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 잡으면 본성을 보전할 수 없게 된다네. 본성을 보전하지 못하게 되면 생명이 자리를 잃고, 생명이 자리를 잃으면 도(道)가 깃들지 못하는 법이네. 내가 기계를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이 여겨서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 뿐이네.”
책을 덮으면서 '역시 움베르토 에코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각한 문제들을 아이들과 읽을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이 물씬 풍겼다. 책은 100 페이지가 조금 넘지만 글자는 크고 그림도 많아 중학생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도 읽으면 좋을 작품이다. 두꺼운 책이 부담되는 성인이 읽어도 좋겠다. 이렇게 좋은 책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