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지구를 위한 행동
1.5도와 2도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기후 과학자들이 두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결과는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여러 면에서 볼 때 2도 상승은 1.5도 상승보다 단순히 33퍼센트 더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100퍼센트 더 나빠지는 것이다. 지금보다 두 배가 넘는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얻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열대 지역에서는 옥수수 생산량이 최대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기후변화가 초래할 이런 현상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나쁘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영향은 그저 뜨거운 날씨와 홍수에만 그치지 않는다. 기후는 이보다 복잡하다. 기후변화가 끼치는 영향은 서로 간에 악순환을 만들어 낸다. (빌 게이츠,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 中에서)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제2장은 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하는 일이 어려울 것이라고 아예 대놓고 이야기한다. 가장 큰 이유는 탄소 배출의 주요 원인, 즉 인간의 생명 활동 대부분이 '화석 연료'를 사용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화석연료를 태워 얻은 결과물들은 물이나 공기처럼 우리 삶의 모든 곳에 스며들어 있다. 당장 화석연료 사용을 중지하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그다음 어려운 점으로 꼽은 것이 '기후변화를 위한 세계적 협력이 어럽다'는 점이다. 어떤 일이든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탄소 배출 억제처럼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일이라면 더욱 힘들다는 것이다. 모든 나라가 동참하지 않는 한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혼자만 돈을 쓰려는 나라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이유로 유일하게 파리협정을 탈퇴했다)
그런 의미에서 195개국이 탄소 배출량을 제한하기로 합의한 '파리협정'은 대단히 이례적이었다. 파리협정은 2015년 12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주도로 21차 유엔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채택된 협정으로 산업화 이전 수준 대비 지구 평균온도가 2℃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이는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를 대체하는 것이다. 교토의정서에는 선진국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있었지만, 파리협정을 통해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195개 당사국이 모두 감축 목표를 지켜야 한다. 당사국은 자발적으로 감축 목표를 정하는 '국가결정기여'를 제출해야 하는데 미국은 2030년까지 26~28퍼센트, EU는 40퍼센트, 우리나라는 24.4퍼센트 감축을 목표로 했다.
파리협정 이후에도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졌다. 이에 2018년 우리나라(인천 송도)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48차 총회에서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를 채택한다.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 세계기상기구(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와 유엔환경계획(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이 1988년 공동 설립한 국제기구로 기후변화, 영향 및 대응정책에 관한 평가보고서 작성을 목적으로 지금까지 다섯 번의 평가보고서가 작성되었고 총 195개의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파리협정에 따라 제출된 국가별 감축 목표를 이행하더라도 2030년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목표량을 크게 초과하여 2100년이 되면 지구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3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1.5도와 2도, 단 0.5도의 차이가 미래 지구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아래 표와 같이 전망했다. 숫자에는 감정이 없으니 피부에 와닿지 않을지 모르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면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일이다.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다. 두 세대 후면 벌어질 일이다. (해수면 상승으로 몰디브는 사람이 살 수 없게 된다)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될 점이 하나 있다. 1.5도 상승도 생태계와 인간에게 끼칠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절대 안전권이 아니다. 게다가 1.5도 달성을 위한 온실가스 한계감축비용은 2도에 비해 3~4배 더 높다. 달성하기 힘든데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많이 소요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PCC가 이 보고서를 채택한 이유는 하나다. 온도 상승을 1.5도 미만으로 억제하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 나아가 지구 환경에 닥칠 위험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 1.5도 제한 시나리오에는 에너지, 산업, 수송 분야 별로 감축 목표를 설정했다. 에너지 분야는 2050년까지 전력의 70~80%를 재생 에너지로 공급하는 것, 산업 분야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 비율을 2010년 대비 90%까지 감축하는 것, 수송 분야는 저탄소 에너지원 비중을 65%까지 상승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런 과정의 일환으로 우리나라도 2020년 10월 <탄소중립국 선언>을 했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이 상쇄돼 순배출량이 ‘제로’가 되는 상태를 말한다. 세계적으로 ‘탄소제로’를 추구하는 국제동맹에 120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으며 2020년 현재 70여 개 국가가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우리 정부는 기후위기 문제에 적극 대응하는 한편 전기, 수소차와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등 에너지 전환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끄는 '한국형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지적했듯이 기후변화와 에너지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선거 주기에 따라, 정권에 따라 바뀌어서는 결코 이런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기후 문제는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문제이기에 모든 국가의 역량을 한데 집중하더라도 절대 만만한 숙제가 아니다.
여기까지가 '기후변화(위기 또는 재앙)'에 대응하는 국내, 외 주요 흐름이다. 전반적인 내용을 수박 겉핥기로 알고 있어 (언제나 그렇듯이) 글 쓰면서 제대로 정리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불쑥 'P4G 서울 정상회의'가 튀어나왔다. 이건 뭐지? 이러면 용량 초과인데!
P4G는 녹색 성장과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the Global Goals 2030) 회원국이 2년마다 번갈아 개최하는 세계적인 협의체다. P(Partnering)는 어느 한 나라가 아닌 선진•개도국 모두가, 그리고 정부•기업•시민사회 등 이해관계자 모두가 참여하는 것을 의미 한다. 4G(Green Growth, Global Goals) 중 녹색성장(Green Growth)은 경제성장에 지속 가능한 발전 개념을 도입하여 기후변화를 중심으로 환경적 측면을 중시하는 경제성장을 말한다. 글로벌 목표(Global Goals)는 2015년 유엔에서 채택된 지속가능 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중 기후변화 대응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 5개 분야(식량·농업· 물·에너지·도시·순환경제)가 그 대상임을 의미한다. 출범을 주도한 덴마크에서 2018년 1차 회의가 열린 지 3년 만에 2차 회의(화상 회의)가 5월 30일 ~ 31일 서울에서 열리는 것이다. (지난해 코로나로 한 해 연기되었다)
P4G는 국가와 기업, 시민사회를 민관협력 파트너십이라는 하나의 틀로 묶어 기후위기 대응의 전략 자원, 즉 Food(식량), Energy(에너지), Water(물)과 City(도시), Circular Economy(순환경제)에 대한 해결책을 개발해 개도국에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파리협정에서 본 바와 같이 기후변화는 더 이상 선진국만이 앞장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가난한 국가의 국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수준(기본적인 의식주 해결과 의료 지원 등)을 가져야 하는 것이 전 지구적으로 당면한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사용이 필연적(이는 탄소배출 증가와 직결)이기에 P4G 같은 세계적인 협의체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해결책으로 개도국을 지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서울회의는 코로나 상황으로 모든 행사가 온택트로 진행될 예정이며, P4G 홈페이지를 통해서 별도 등록 없이 누구나 참관(시청)할 수 있다. (5월 24일부터 이미 일부 세션이 시작되었다) 5월 30일에는 개회식과 각 정상들의 연설이 진행되고 31일에는 다섯 개의 기본 세션(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탄소중립 스마트 물관리, 혁신적인 에너지 솔루션으로 더 푸르른 지구, 지속 가능한 농업과 푸드시스템 구축, 도시, 파트너십을 통해 녹색 미래를 꿈꾸다, 순환경제 전략에 의한 제로 웨이스트 사회로의 전환)이 진행된다. 마지막 순서로 정상 토론 및 서울 선언문 채택이 진행될 예정이다. 모든 세션에 관심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31일 16시~18시 30분에 진행되는 '순환경제 전략에 의한 제로 웨이스트 사회로의 전환' 세션은 꼭 참관해 보려 한다. (요즘 제로 웨이스트에 관심이 부쩍 늘었다)
짧게 정리해보려던 의도와는 다르게 또 긴 글이 되었다. 기후위기가 가장 큰 걱정거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변곡점이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수소차 같은 경우가 그렇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수소차 상용화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2021년 2월 기준, 수소 승용차 보급도 세계 1위를 기록 중이다. 미국, 독일 등 자동차 선진국이 전기차에 집중할 때 (물론 우리나라가 전기차 배터리 부분 세계 1위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수소차에 미래를 걸었다.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숙제가 하나둘이 아니지만, 산업화에 성공하면 반도체 이상으로 미래 한국을 책임질 신기술이 되지 않을까 싶다. 탄소발생이 없고 공기정화 효과까지 있다고 하니 지구를 위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스웨덴 출신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2019년 9월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외친 말로 마무리를 대신할까 한다. 툰베리는 2018년 8월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 1인 시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현재는 한국을 포함한 133개국 160만 명이 동참하고 있다. 이제 아이들의 외침에 어른들이 대답할 차례다!
"저는 여기가 아니라, 바다 반대편에 있는 제 나라 학교에 있어야 합니다. 당신들은 공허한 말로 내 어린 시절과 내 꿈을 앗아갔어요. 생태계 전체가 무너지고, 대규모 멸종의 시작을 앞두고 있는데 어른들은 돈과 영원한 경제 성장이라는 꾸며낸 이야기만 늘어놓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