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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Aug 19. 2021

기묘한 책의 쓸모

집에 책이 꼭 필요한 이유

 "책을 불태우는 것보다 더 질이 나쁜 행동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 책을 읽지 않는 것이다." 
  (레이 브래드버리)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에서 저자 고미숙 작가님은 읽고 쓰는 행위는 인간 본성에 닿아 있는 필수 불가결한 활동이라 역설한다. 여기서 인간 본성이란 '사유(思惟)'를 말한다. 4족 보행으로 앞(땅)만 보던 인류의 먼 조상은 어느 날 직립 보행을 통해 손을 해방시킨다. 발은 땅을 딛지만 눈은 하늘을 응시한다. 존재는 현실(땅)과 맞닿아 있으나 언제나 그 너머를 꿈꾼다. 자유를 얻은 손은 이상(理想)을 현실화하는 창조의 도구가 된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장착한 인류는 문자를 발명하고 이후 수천 년간 인류의 정신에 자양분이 될 위대한 전통을 탄생시킨다.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200년 사이, 이른바 '축의 시대'가 등장한다. 종교가 탄생하고 철학이 시작되었다. 위대한 고대의 지혜는 '책'을 통해 후세에 전해졌다. 책이란 단지 정보와 지식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책은 최초의 인류가 품었던 질문과 통찰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존재론적 질문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여러분이 만약 이런 고민에 빠져 있다면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다. 당장 책부터 읽는 것!


 책을 단순히 정보와 지식의 매개체 정도로만 인식하게 되면서 책은 우리와 멀어졌다. 일정 수준 이상의 정보와 지식은 컴퓨터 자판을 몇 번만 두드리면 짠 하고 나타난다. 오히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진짜 필요한 것인지 분별하기 어려워졌다. 인터넷이 뿌린 씨앗은 스마트 폰의 등장으로 대풍년을 맞이했다. 정보와 지식에 더해 오락과 온갖 편리함까지 제공한다. 책에게 안녕을 고하는 이 상황을 누구에게 탓할 것인가? 


 간간이 들려오는 '셀럽의 책'은 오랜 가뭄 속 단비와 같다. 팬덤의 순기능은 메마른 출판 업계를 촉촉한 독자의 관심으로 적셔 준다. 20년 전 절판된 책이 다시 세상에 등장하는가 하면 또 어떤 책은 완판 사태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예전에 1쇄가 5천 부였다면 요즘은 2천 부 정도로 대폭 줄어들었단다. 경우에 따라서는 2천 부 미만으로 찍기도 한다. 발행부수는 책과 독자의 거리에 반비례한다. 이런 척박한 출판 환경 속에서 더 많은 셀럽들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 주면 좋겠다. 누구든, 어떤 이유에서든 독자를 책으로 이끄는 자가 현자(賢者) 아니겠는가!


 우리 집에는 아이들 책, 아내와 내 책, 만화책까지 포함해 약 2천여 권의 책이 있다. 한 집에 10년 이상 머물면서 수많은 물건이 들어오고 나갔지만, 책은 한 번도 제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지난주에 가을맞이 대청소를 하면서 오래된 옷이며 살림살이를 한바탕 정리했는데 이때 '책도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고민했더랬다. 특히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읽던 책들은 시간이 갈수록 다시 볼 기회가 사라지니 이제는 없어도 되겠다 싶었다. 당근 마켓에 내놓을까, 동네 도서관에 기증할까 궁리했다. 


 집에 책이 꼭 있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코로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박을 치고 있는 한국 영화가 있다. 벌써 2백5십만여 명이 관람했다. 류승완 감독이 연출하고 김윤석 배우, 조인성 배우, 허준호 배우 등이 출연한 <모가디슈 - Escape from MOGADISHU)다. 1991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 일촉즉발의 내전이 일어난다. UN 가입을 목표로 아프리카에서 외교전을 펼치던 남한과 북한 대사관 직원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모가디슈를 탈출하기 위해 함께 힘을 합친다. 그런데 탈출 과정에서 눈에 띄는 의외의 물건이 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싶다. 다름 아닌 '책'이다. 일행은 마지막 목적지인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향하는 넉 대의 차를 온통 책으로 뒤덮는다. 쏟아지는 총탄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책은 이리저리 뜯기고 불타지만 일행은 무사히 이탈리아 대사관에 도착한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영화 내용은 여기까지만.) 

<영화 모가디슈 한 장면 / 출처 : 공식 홈페이지>

 현실 세계에서도 책이 이렇게나 쓸모 있다. 쓸모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이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유일한 보호막이 되어준다. 영화를 보고 나와 아이들 책을 처분하겠다는 마음을 접었다. 종이질이나 두께를 고려했을 때 아이들 책만큼 방탄에 적합한 물건이 또 있을까 싶었다. 물론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난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나쁠 것도 없었다. 외계인이나 미지의 존재가 침략하면 우리도 집이나 차를 책으로 보호해야 할지도 모른다. 책이 외계인의 무기를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왠지 가능할 것 같다. 책에는 인류가 축적한 지혜의 정수가 담겨 있으니 말이다. 여러분도 집에 넉넉하게 책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틈틈이 책을 구비해 놓아야 한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기왕에 책을 들여놓을 바에야 아무 책이나 구입하기보다는 가족들이 좋아하는 책, 읽을만한 책을 선택하면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인정한다. 방탄용 책은 좀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진짜 집에 책이 꼭 필요한 현실적 이유를 제시해 보겠다. 기후위기는 90%의 과학자가 동의하는 인류의 큰 숙제다. 티핑 포인트는 어떠한 현상이 처음에는 서서히 진행되다가 돌연 급격하게 변화하는 임계점을 말한다. 기후가 티핑 포인트에 다다르면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다른 티핑 포인트를 자극하는 '티핑 폭포'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이런 우려를 영화로 제작한 사례도 있는데 바로 (투머로우 - The Day after Tomorrow)다. 바다에는 열 에너지를 차가운 극 지역에 공급해 지구의 냉각화를 막아주는 해양 컨베이어 벨트가 있다. 영화에서는 이 컨베이어 벨트가 멈춰 서면서 갑작스레 지구에 빙하기가 찾아온다. 순식간에 찾아온 냉기로 도시 곳곳이 얼어붙고 미처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동사한다. 이때 주인공 일행을 극단의 추위로부터 구해주는 물건이 바로 '책'이다. 책을 태울 거면 차라리 가구를 태우는 게 어떨까 싶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들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세상에 단 한 권뿐인 희귀 책까지 태워가며 끝까지 살아남는다. 도서관 사서도 처음에는 막아섰지만 생명이 먼저였다. 서두에 언급한 레이 브래드버리의 말이 떠오른다. 책을 불태우는 것보다 더 나쁜 행동은 그 책을 읽지 않는 것!

<The Day after Tomorrow / 출처 : 공식 홈페이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집에 책이 없다면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방법이 없다. 이래도 집에 책을 구비해 두지 않겠는가? 뉴욕 중심가에 있는 대형 도서관의 장서들도 태우니 하루를 못 버티는데 2천 권도 적다. 천 권은 더 장만해야 하룻밤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때까지 공간이 좀 문제겠지만 말이다) 기왕이면 오래 타는 책이 좋겠다. 유시민 작가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읽고 싶은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 둔 책 중에서 읽는 것이다."라고. 천 권을 더 책장에 넣어두면 아이들이 나만큼 자랄 때까지 읽을 책이 넉넉해 좋겠다. 아직까지 집에 책을 2천 권쯤 구비해 두지 않았다면 여러분도 서둘러야 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기후위기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동의하는 합리적 예측이고 언제 티핑 포인트를 넘을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책은 오감으로 읽는다. 책의 질감과 그 특유의 냄새가 좋다. 열렬한 종이책 신봉자인 이유다. 지구의 미래와 환경을 위해 종이책이 아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우리 세대에는 종이책 역사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게다가 위에서 말한 기묘한 이유 때문이라도 한동안 책이 우리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책이 아니면 딱히 다른 대안은 떠오르지 않는다. 부수적이지만 책이 필요한 마지막 이유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나도 20대 초반 불면증에 시달린 적이 있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이었다. 새벽 4시가 넘어도 잠은 오지 않고 눈만 말똥말똥했다. 그때 수면제 역할을 해 준 것도 역시 책이다. 언제나 한 장(2페이지)을 다 읽지 못했다. 지금도 가끔 잠이 오지 않을 때면 꺼내 읽는 책이 있다. <마의 산>이나 <만들어진 신> 같은 책들이 내게는 그렇다. 물론 책의 수면 효과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어떤 책이 수면에 도움을 주는지는 각자가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야 한다. 결국 많은 책을 구입해서 읽어 보는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아주 현실적인 이유에서도 이렇게 책이 우리 삶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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