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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Aug 24. 2021

아이들에게 그림책 4천권 읽어주면일어나는 일

(feat. 아빠의 잔소리) 엄마한테 잘해라!

10년 넘게 아이들에게 그림책 4천 권을 읽어주면 일어나는 일

 한 브런치 작가님이 자신의 도서관 대출 이력을 바탕으로 <10년 동안 책 670권을 읽으면 일어나는 일>이라는 글을 쓴 걸 우연히 읽게 되었다. 작가님은 꾸준한 독서를 통해 '성장'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었고, '좋은 정보'를 찾는 안목이 생겼으며 미세해진 감각을 일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분량이 제법 나가는 책 한 권을 수시로 읽다 보니 복잡한 내용을 '간단명료'하게 요약하는 힘도 생겼다고 했다. 인생의 다양한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는 책을 앞으로도 계속 읽으리라는 다짐으로 작가님의 글은 마무리된다. 독서의 효능에 대한 참으로 좋은 본보기라 생각했다. 내 경우에는 주로 문학 작품(소설)을 많이 읽는데 책을 읽는 즐거움이 가장 먼저이고, 이를 통해 글쓰기 능력(기술), 문맥(context) 파악이나 요약 능력 등이 조금은 좋아진다고 느꼈더랬다. 최초의 인류가 품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 찾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그 지혜와 통찰력에 닿으리라는 원대한 희망을 가지고 오늘도 책을 읽는다. 현실적인 관점에서도 이렇게나 장점이 많은 독서를 하지 않는 건 자신에 대한 직무유기 아닐까?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 가족은 도서관에서 얼마나 많은 책을 빌렸을까? 


 우리 동네에 마을 도서관이 생긴지는 대략 4년 5개월쯤 되었다. 둘째 아이가 막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53개월 동안 660권의 책을 빌렸다. 가끔 아내와 내 책도 몇 권 끼여 있었지만 주로 아이들이 읽을 그림책을 빌렸다. 월평균 12권을 빌린 셈이다. 마을 도서관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웃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이웃 동네 도서관은 2014년에 생겼다. 그때부터 최근까지 약 84개월 동안 1,634권을 대여했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나 동화책 등이 대부분이었다. 이웃 동네 도서관에서는 월평균 19권을 빌렸다. 단순 계산으로 최근 4년간 한 달에 30권 이상의 책을 빌려 본 셈이다.  


 다른 글에서도 몇 번 언급한 바와 같이 집에 아이들 책이 조금 많은 편이다. 많을 때는 2천 권 가량 있었다. 과거형으로 표현한 이유는 지금은 1천5백 권 가량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오래되어 낡고 찢어져 더는 읽을 수 없어 버린 책들과 어린 조카들에게 물려준 유아용 도서들까지 합치면 대략 5백 권쯤 된다.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과 구입한 책을 모두 합치면 4천 권을 훌쩍 넘긴다. 가끔 집에 있는 책을 빌려 오거나 똑같은 책을 되풀이해서 빌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우를 감안하더라도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읽어준 그림책이 약 4천 권쯤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리 집에 있는 그림책의 역사에 대해서 말해둘 필요가 있을 듯싶다. 우리 집에는 소위 말하는 유아 도서나 아동 도서 '전집'이 없다. 한 권 한 권 아내가 직접 읽고 엄선한 책들이다. 물론 나이대 별로 반드시 읽어야 하는 그림책들도 있다. <달님 안녕>에서 시작해 <구름빵>을 지나 앤서니 브라운, 고대영&김영진 작가 콤비, 요시타케 신스케 등의 작품들이 그것이다. 백희나 작가의 작품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내가 세심하게 내용을 살펴보고 그때그때 아이들에게 필요한 감성, 정서 등을 고려해 골랐다. 이런 까닭에 우리가 자주 들르던 교보문고 서현점에서 아내는 꽤 귀찮은 손님이었다. 보통 아이들 책은 읽을 수 있도록 샘플 책을 준비해 놓곤 하지만, 모든 그림책을 샘플 책으로 비치해 놓지는 않는다. 아내는 궁금한 책이 있으면 직원한테 샘플 책을 요청했다. 아내의 부탁으로 포장을 벗긴 책들 대부분을 구입했지만, 그렇지 않은 책들도 제법 많았다. 그런 아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면 아이들 책에 아내가 얼마나 진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평소 책과 먼 거리를 유지하는 아내의 생활태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파격적인 행보였다. 우리(어른) 책은 대부분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입하더라도 그림책은 아이들이 보고 만질 수 있도록 반드시 현장에서 구입했다. 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그곳 동네책방에 들러 대형서점에서는 구입할 수 없는 독립출판 그림책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림책 한 권에 아이들을 생각하는 아내의 마음이 담겼다. 도서관에서 빌려 오는 책들 역시 이와 비슷했다. 아내가 직접 읽은 그림책들 중에서 오직 최고의 작품들만이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아내는 그 모든 그림책들을 아이들에게 한 권도 빠짐없이 모두 직접 읽어주었다. 아무리 집안일이 많고 힘들어도, 비록 저녁때 먹은 그릇들이 방치된 채 주방에 있어도 먼저 책부터 읽어주었다. 적게는 10권에서 많게는 20권까지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다. 어쩌다 아빠가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아이들 책 읽어주기는 내 몫이 되었지만, 그런 날은 한 달에 고작 두세 번이 전부였다. 아이들에게 그림책 읽어주는 일은 오롯이 아내의 몫이었다. 아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그림책을 읽어주어야만 잠자리에 들었다. 아내가 일부러 그렇게 습관을 만들었다. 책을 읽어주면 아무리 이른 시간이라도 잠자리에 들었다. 보통은 9시 이후였지만 어떤 날은 8시에 잠들기도 했다. 아이들이 밤늦도록 자지 않아 힘들어하는 동료들에게 우리만의 책 읽어주기&재우기 노하우를 비법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면 비로소 아내는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잠깐의 힐링 타임을, 빨래 정리하며 떡볶이에 시원한 맥주 한 잔, 가졌다. 가끔 밤늦게 퇴근해 아이들 책을 읽어주다 잠든 아내와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때 찍어둔 사진이 몇 장 있는데 지금도 가끔 그 사진들을 꺼내 본다. 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 모습은 천사를 닮았다. (깨어 있을 때는? 휴~, 글쎄…)


 10년 넘게 아이들에게 엄선한 그림책 4천 권을 읽어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저 깊은 곳에서 작은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그것이 찻잔 속 미세한 잔물결로 그칠지, 아니면 세상을 휩쓸어버릴 만큼 거대한 태풍으로 거듭날지 지금은 알 수 없다. 그래서 4천 권은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시작이다. 그림책 4천 권으로 싹튼 아이들의 상상력이 멈추지 않도록 지속적인 자극이 필요하다. 그 맨 앞에 독서가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주말에도 아내는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빌려 왔다. 이제 반은 그림책, 반은 분량이 제법 나가는 청소년(아동) 소설이다. 그림책의 힘은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작동하기에 앞으로도 계속 읽게 할 참이다. 그런가 하면 새롭게 구입하는 책 중에는 그래픽 노블도 제법 눈에 띈다. 아내는 자신을 닮아 예술적인 재능이 다분한 둘째 아이가 웹툰 작가나 영화감독이 되기를 내심 기대한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에 레고를 선물로 받은 둘째 아이가 두 레고 캐릭터의 대결 장면을 스톱 모션으로 찍어 영화를 만들었다. 아내도 나도 깜짝 놀랄 만큼 고퀄리티였다. 아내 얼굴에 "이게 다 내가 부지런히 책을 사다 나르고 읽어준 덕분이야!'라고 쓰여 있었다. 무슨 전광판도 아닌데 그 글자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아내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코로나로 아이들과 함께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부모와 자식 사이, 특히 엄마와 아이들 사이에 예상하지 못한 냉기류가 흐를 때가 많아졌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 이렇게 오랜 시간을 집에서 함께 지내본 적이 없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이 정도면 맹자 어머니도 아들에게 마냥 애정을 쏟아부을 수는 없겠구나 싶다. 삼시 세끼를 꼬박 7첩 반상으로 차려내는 엄마의 노고를 아이들이 알기나 할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친구들과의 즐거운 학교 생활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고 현실은 좁은 방 안에 갇혀 일거수일투족을 통제받는다고 느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듯싶다. 톡 하고 건드리면 언제라도 폭발할 것 같은 두 개의 시한폭탄이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가끔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가시 돋친 말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화목했던 집이 금세 좌불안석 숨 막히는 공간으로 바뀐다. 큰 사고 안치고 건강하게 자라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하면서도 아내는 욱하는 성미를 참지 못하고 사자후(무자식이 상팔자!)를 쏟아 낸다. 그럴 때면 아이들을 따로 불러내 아빠로서 꼭 해주는 말이 있다. 


 "아빠한테는 막 해도 되니까 엄마한테는 잘해라! 너희는 엄마한테 잘해야 해, 정말!"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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