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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Aug 15. 2021

우리가 몰랐던 야스쿠니 신사

일본 정치지도자들은왜 야스쿠니를 참배할까?

 '일본 현직 방위상 5년 만에 야스쿠니 참배'


 8월 13일, 한겨레신문 기사 제목이다. 일본 내각 고위 관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현직 방위상으로는 5년 만의 이례적인 참배라고 하니 '스가 내각' 정체성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그런데 일본 방위상 이름이 '기시 노부오'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동생이지만 외가에 양자로 들어가 성이 다르다. '기시 노부오'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외할아버지가 '기시 노부스케'다. 그는 진주만을 습격해 태평양 전쟁을 발발시킨 A급 전범 도조 히데키(총리) 내각에서 상공 대신을 지냈으며 패전과 함께 A급 전범 용의자로 복역했으나 1948년 석방되었다. 일본 민주당을 결성한 후 자유당과 합당해 자유민주당의 간사장이 되었고 총리직에 오른다. 평화 헌법을 '자주헌법'으로 개정해 일본을 재무장시키는 것이 그의 정치적 이상이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외할아버지를 계승한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태평양 전쟁 A급 전범 14명을 비롯해 약 2백4십7만 명이 합사되어 있다. 전장에서 싸웠던 군인뿐만 아니라 후방에서 전쟁 수행을 지원했던 여성, 어린이, 노동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유해나 위패는 없고 오직 합사자 명부만 있단다. 전쟁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이름도 약 2만여 명 이상 포함되어 있다. 우리 외교부에서 입장을 밝힌 바와 같이,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A급 전범들을 합사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은 양국 간 신뢰관계를 크게 훼손하는 일이다. 일본 총리나 고위 관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언제나 우리나라, 중국과 외교 분쟁의 불씨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속내가 궁금했다. 


 '신사'란 일본 왕실의 조상이나 일본 고유의 신, 죽은 사람을 모신 사당을 말한다. 일본의 신도(神導)란 종교적으로 불교 및 유교가 도교와 합쳐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사물에는 신이 있다고 믿는데, 신화에 나오는 신(일본 황실 조상인 아마데라스오미카미)을 모시거나 죽은 인간 또는 신이라 여기는 사물을 모시기도 한다. 야스쿠니 경우에는 국가(더 정확히는 천황)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혼을 모아 신으로 모셨다는 특징이 있다. '야스쿠니(靖國)'라는 말은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나라를 태평하게 다스린다'는 뜻이다. 이웃 국가와 늘 외교 분쟁을 일으키는 주범의 이름 치고는 너무 평화롭다. 


 야스쿠니라는 이름은 1879년 메이지 천황이 붙여주었다. 메이지 유신과 야스쿠니의 깊은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1853년, 미국의 페리 함대가 일본에 무력으로 개항을 요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막부 정권은 이에 굴복해 미일화친조약을 맺게 되고, 이때 서구 문명의 힘을 깨달은 일부 세력은 막부의 무능함을 비판하고 전쟁을 일으킨다. 이것이 일본 내전인 보신 전쟁이다. 전쟁은 반막부 세력의 승리로 끝나고 1868년 메이지 천황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체제가 등장한다. 이때 막부 세력은 붕괴되지 않고 천황 체제 속으로 편입되는데, 이러한 까닭에 메이지 혁명이 아닌 메이지 유신으로 불리게 된다. 천황은 자신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사무라이들을 추도하고 싶었고 이를 위해 야스쿠니 신사가 탄생했다. 천황은 봄과 가을, 일 년에 두 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그런데 야스쿠니 신사를 조슈 신사(長州神社)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쿄에 있는 신사에 왜 조슈라는 지역명이 붙었을까? 조슈 지역이 바로 반막부 세력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천황의 명에 의해 조슈에서 추모 행사가 시작되었고 이후 도쿄로 옮겨져 야스쿠니 신사가 된 셈이다. 조슈번(현 야마구치현)은 일본 우익 사상의 핵심지역으로, 현대 일본의 정치·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조슈벌의 사상적 아버지인 '요시다 쇼인'의 고향이기도 하다. 


 요시다 쇼인은 에도 막부 말(1830년)에 태어났다. 스스로가 하급 무사 계급이었던 그는 병법과 학문을 가르치는 사설 교육기관인 '쇼카손주쿠(松下村塾)'를 숙부로부터 인수해 막부에 불만을 품은 하급 무사를 비롯해 신분을 가리지 않고 많은 젊은이를 교육시켰다. 그가 주장한 '일군만민론(一君萬民論)'은 '천하는 (쇼군이 아니라) 천황이 지배하고, 그 아래 만민이 평등하다'는 뜻이다. 서구 열강 세력이 일본에 접근해 오자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외세를 막아내자는 존왕양이 사상을 강조했고 많은 이들이 그를 따랐다. 요시다 쇼인의 사상을 철저하게 따랐던 제자들이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 되었고, 우리에게 익숙한 '이토 히로부미' 역시 그의 제자이다. 1858년 에도 막부 다이묘(영주) 암살 음모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이듬해 사형된다. 이른 나이에 죽었지만 그의 사상과 정치적 자산은 오늘날까지도 일본을 지배하고 있다.  


 요시다 쇼인의 존왕양이 사상은 정치적으로 '정한론(征韓論)'으로 발전한다. 정한론은 일본이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에도 막부 말기에 쌓였던 여러 가지 내부 문제를 해결하고 서구 열강에 대적할만한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조선을 침략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정조론(征朝論)'으로 불렸다가 요시다 쇼인 등에 의해 '정한론'으로 명칭이 바뀌게 된다. 당시에는 대한민국(또는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도 사용하지 않을 때인데 왜 정한론이라 불리게 되었을까? 이는 고대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삼한정벌설(三韓征伐說)'에서 비롯되었다. 즉 정한론은 원래 일본 땅이었던 한반도를 되찾자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허구의 역사를 조선 침략의 밑거름으로 삼았고, 이는 다시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시발점이 된다.  


 일본 우익 사상의 아버지라 부르는 요시다 쇼인이 야스쿠니 신사에 처음으로 봉안된 인물이다. 일본인들도 잘 알지 못하는 야스쿠니 신사의 참모습이다. A급 전범이 봉안되어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사상을 발전시킨, 일본 제국주의의 사상적 밑거름이 된 인물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천 번 만 번 양보해 전쟁에서 형제, 자매를 잃은 유가족은 죽음을 애도할 수 있다.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목적은 '추도'가 아니다. 천황을 위한 죽음에 대한 '현창(顯彰)'이다. 기회가 온다면 기꺼이 국가와 천황을 위해 죽을 수 있다는 신념을 의미한다. 게다가 신사 측은 유가족에게 원호금을 지급한다. 물질적인 혜택을 통해 야스쿠니 사관에 동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일본 천황은 1978년 이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는다. 1978년은 도쿄재판에서 사형을 받은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되어 있다는 게 발표된 해이다.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자들을 신으로 모신 야스쿠니 신사에 천황이 가지 않는 기묘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것이 현재 일본 정국에서 야스쿠니 신사가 처해져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치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이곳을 참배한다. 아베 총리가 집권 기간 내내 일본 평화 헌법 개정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숨은 의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고 평화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일본인들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관심과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친구가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게 훤히 보이는데 가만히 있으면 진짜 친구가 아니지 않겠는가! 조금 힘들어도 어르고 달래 친구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깝고도 먼, 그리고 조금 얄미운 이웃 나라를 곁에 두고 있는 우리나라가 짊어져야 할 과제이다. 모두가 불행해지는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론'에서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일본이 해야 할 일을 천명했지만, 어쩌면 오늘날 그 일을 우리나라가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라면 충분히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오늘은 76주년 광복절이다. 문(창)밖에 태극기를 내거는 아주 간단한 행동에서 그 일은 시작된다.   



 일본 보수우익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요시다 쇼인 이외에 조슈 출신 정치가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이는 이영채, 한홍구 두 분의 공저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에서 인용했다. 


 요시다 쇼인의 사상을 충실히 계승한 다카스기 신사쿠는 에도막부에 대항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시노모세키전쟁을 치른 인물이다. 아베가 존경한다고 밝힌 인물이기도 하다. 기도 다카요시는 메이지유신 당시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힌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설계했던 이노우에 가오루 역시 이곳 출신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정권을 잡고 일본 근대화를 이끈 이토 히로부미, 러일전쟁 영웅인 노기 마레스케, 일본 수상을 지낸 가쓰라 다로, 초대 조선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 2대 조선 총독을 지낸 하세가와 요시미치, 일본 군대의 기초를 닦아 야스쿠니에 동상이 세워진 오무라 마스지로, 일본 육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이 모두 조슈번 출신이다. 일본 근현대사를 이끈 주요 인물들이 한 지역 출신이라는 점이 놀라우면서도 두렵다. 이들의 사상적인 아버지격인 요시다 쇼인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이 오래 전 품었던 꿈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시다 쇼인의 이론을 담금질한 정치 아카데미이자 메이지 유신 실천의 주역을 배태한 혁명의 근거지였던 '쇼카손주쿠'는 2015년 7월 아베 내각 아래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그의 고향에 해마다 200만 명 넘는 관광객이 찾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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