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홍 Aug 14. 2021

너 없이도 잘 살아지더라!

No Japan 2년, 아직 멈출 수 없다.

 5월 따사로운 봄볕에 청보리가 자라듯, 한여름 뙤약볕에 옥수숫대가 자라듯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방문에 아이들 키를 표시해 둔 눈금이 저 아래 허리 밑에서 어느새 눈높이까지 올라왔다. 이제 얼추 아빠만큼 자란 첫째 아이는 내가 아끼는 옷이며 신발을 제 것인 양 입고 신는다. 지난해 생일선물로 받은 하얀색 나이키 운동화는 혹여 때라도 탈까 봐 딱 한 번 신고 신발장에 보물단지처럼 모셔두었는데, 어느 날 보니 첫째 아이가 신고 다녔다. 충격 그 자체, 말문이 막혔다. 누가 아빠의 소중한 보물을 허락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꺼내 신었냐고 따졌더니 엄마가 허락했단다. 왜? 내 신발인데 엄마한테 허락받냐고! 아내에게 쪼르르 달려가 한바탕 하소연했더니 싸늘하게 돌아오는 한 마디. "아끼다 똥 된다." 그날 이후로 첫째 아이는 아빠 옷장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거침없이 꺼내 입었다. 가끔 내 평상복이 잠옷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입을 때보다 나아 보이긴 했다…. 결국 '패완얼' 아니던가!

 한때 아이들도 나도 편하게 입는 옷들 대부분을 유니클로에서 구입했다. 우리 가족에게 유니클로는 비교적 좋은 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브랜드로 포지셔닝되어 있었다. 한때는 GAP이었고, 그 자리를 물려받은 게 유니클로였다. 영화를 보러 가든 장을 보러 가든 우리는 언제나 유니클로 매장에 들렀다. 그런 점에서 서점과 비슷했다. 일단 들어가면 빈손으로 나오는 법이 없었다. 금방금방 자라는 아이들 속옷이라도 몇 장 사들고 나왔다. 수시로 철 지난 옷들은 파격적인 가격 할인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대부분 사이즈가 맞지 않았지만, 가끔 제 사이즈라도 찾으면 보물 찾기에서 1등 상품을 발견한 아이처럼 기뻐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 운동복(트레이닝복)을 제외하면 아이들 옷의 80퍼센트 이상이 유니클로였다. 아내나 내 경우에도 5~60퍼센트쯤 되었다. 게다가 아이들 내복과 잠옷은 100퍼센트였다. 유니클로 모델도 이렇게 열심히 입지는 않으리라고 농담까지 할 정도였다.  


 'No Japan' 이후 지금까지 유니클로에 가지 않았다. 당시 아내와 내가 즐겨 마시던 일본 맥주는 바로 끊을 수 있었다. 대체할 제품도 많았고 맥주쯤 마시지 않아도 사는데 별 지장 없었으니까. 물론 여름에는 예외지만. 유니클로는 조금 달랐다. 당장 이 많은 옷들을 버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입던 옷은 그대로 입기로 하고, 앞으로 유니클로에서 옷을 사는 일만큼은 그만두기로 했다. 한동안은 버틸만했다. 아이들 속옷이나 잠옷은 세일할 때 잔뜩 사둬 라벨도 뜯지 않은 채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계절이 순환하고 다시 그 계절이 돌아오자 아이들 내복이며 잠옷에 군데군데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그나마 멀쩡한 옷도 더는 입을 수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니 헐렁했던 옷이 어느새 엉덩이며 허벅지를 꽉 조였다. (코로나로 확찐자가 된 것도 한몫했다) 'No Japan' 운동이 한창 달아올랐을 때 일본 제품을 대체할만한 국내 브랜드들이 인터넷 상에 많이 소개되었더랬다. 아내 역시 그곳에 소개된 제품들 중에 아이들 옷을 구입했다. 소비자 입장에서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명한 소비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렇게 유니클로 찐 팬이었던 우리는 조금씩 유니클로 없는 삶에 익숙해져 갔다.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이 4단계로 격상되기 직전,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극장 나들이를 했다.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마블 영화가 개봉해 모처럼만의 외출을 결심했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아내가 불쑥 한 마디 했다. 


 "애들이 금방 자라니까 요즘 입을 옷이 없어…."


 그 순간 아내와 나는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유니클로 매장을 바라보았다. 거짓말처럼 눈앞에 짠 하고 나타났다.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던 바로 그 매장이었다. 나도 모르게 과거의 기억 한 조각이 입 밖으로 툭 하고 튀어나왔다.   


 "유니클로가 옷은 괜찮지. 요맘때 아이들이 막 입기에는." 


 2년 전에는 유니클로라는 말을 꺼내기만 해도 엄마, 아빠를 째려보던 아이들이 이번에는 왠지 조용했다. 시간이 제법 지나기도 했고 온라인 수업으로 친구들과 만날 기회도 적으니 어떤 옷을 입든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텅 비었던 유니클로에 다시 손님'이라는 제목의 뉴스 기사가 종종 눈에 띄었다. 2년 정도 경과되었으니 이제 좀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사실일 터였다. 2년이면 오래 버티긴 했다. '잠깐 들어가서 구경만 하고 나올까?'라는 말이 막 나오려던 찰나였다.  


 "그래도 유니클로는 아닌 것 같아. 요즘 큐가 <마사코의 질문>도 읽고 있는데." 


 잠깐 고민에 빠졌던 아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마사코의 질문>은 둘째 아이에게 여름 방학 독서 목록으로 정해준 책이었다. 무례 세 차례나 방학 독서 목록으로 정해주었는데 이번에야 비로소 제대로 읽는 눈치였다. 매번 다 읽었다더니 이 책이 이런 내용이었냐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낭독으로 읽고, 읽은 후에는 독서 일기를 쓰도록 하는 것이 그나마 도움(?)이 되었나 보다. 아무튼, 아내는 단호했다. 역시 독립 운동가의 후손다웠다. 잠깐 정신줄 놓을 뻔했는데 아내 덕에 얼른 제자리로 돌아왔다.  


 한참 글을 써놓고 보니 대단한 뭔가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No Japan'을 다시 불사르자거나 일본을 향한 결연한 의지를 만방에 고(告)하는 글처럼 되어버렸다. 그러한 의도는 없다. 솔직히 'No Japan'이 한참일 때도 좋아하는 일본 작가의 소설이나 만화책 읽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특히 <원피스>는 지금도 가장 즐겨 읽는 만화책이다. 여전히 <드래곤 볼>과 <슬램덩크> 그리고 <봉신연의> 등 일본 만화를 좋아하고 일본 영화도 좋아한다. 우리에게 'No Japan' 운동은 책임 있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회피하는 일본 정부와 거기에 동조하는 기업, 우익 단체를 향한 분노였다. 우리가 열광했던 유니클로는 일본 정부와 궤를 같이 했고, 광고를 통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의도가 분명했고 우리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혔다. 게다가 변명 이외의 어떠한 사과도 아직 하지 않았다. 2년 전과 비교해 달라진 게 없었다. 아내 말처럼 우리에게 유니클로는 아직 아니었다. 


 <마사코의 질문>은 손연자 작가님이 쓴 여러 편의 동화를 엮은 동화집이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 민족이 겪었던 혹독한 고초를 어린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작가님의 바람으로 세상에 나왔다. 아픈 과거라도 제대로 배우고 이를 통해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다짐도 담겨있다. 제일 마지막에 수록된 글이 <마사코의 질문>이다. 할머니와 히로시마 평화 기념공원을 방문한 어린 마사코는 질문한다. 일본이 얌전히 있었는데 왜 미국이 자기네들 맘대로 꼬마(원자 폭탄)를 히로시마에 떨어뜨렸는지, 누가 먼저 싸움을 걸었는지 말이다. 할머니는 끝내 속시원히 대답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왜 과거에 얽매여 미래를 보지 않느냐고 한다. 과거는 흘러간 시간 속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현재에도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마사코의 할머니가 솔직하게 손녀에게 진실을 말해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마주 앉아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하루빨리 오면 좋겠지만 그리 쉽게 올 것 같지만은 않다. 그러므로 과거를 계속 말해야 한다. 역사는 망각하지 않는 자의 편이다. 


 내일은 76주년 광복절이다. 집집마다 태극기를 꼭 달았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