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조이홍 Oct 20. 2021

제주의 전통시장들

불편함을 넉넉한 인심과 흥정으로 채우는 사람 냄새나는 공간

 도시에 거주하는 여느 평범한 가정처럼 우리 가족도 한때 할인매장으로 떠나는 나들이를 즐겼다. 코로나로 일상이 변하고 비대면 시대가 10년 앞당겨지면서 왕래는 급격히 줄었지만, 특별한 계획이 없는 주말이면 으레 발걸음은 그곳으로 향했다. 누구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쇼핑 카트에 아이들이 걸터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게 신의 한 수였다. 덕분에 어른들도 아이들도 쇼핑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아이가 둘이라 가끔 쇼핑 카트 두 대가 필요했다. 언제는 서로 그 자리에 앉겠다고 하고, 또 언젠가는 서로 카트를 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공평하게 한 대씩 내주어야 평화가 찾아왔다. 아내는 장 보러 가기 전에 항상 구매 목록을 만들었다. 충동구매를 피하고 필요한 물건은 빠뜨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매장 입구에서 다짐하듯 말했다. “오늘은 꼭 필요한 물건만 사서 나오자!” 물론 그 약속은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괜히 쇼핑 카트를 두 대 밀고 다닌 게 아니었다. 카트가 한 대면 한 대 가득, 두 대면 두 대 가득 물건들이 채워졌다. 품질은 말할 것도 없고 가격도 저렴하고 양도 많으니 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 물건을 사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소비자로 취급받는 것인 양 앞뒤 가리지 않고 카트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놓치는 게 있었다. 소비하는 속도가 구매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유통 기한이 있는 식품이나 음식 재료들은 냉장고 한구석을 차지하다가 반쯤은 버려지기 일쑤였다. 환절기는 냉장고 대청소하는 제5의 계절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대형마트로 향하는 발걸음이 뜸해졌다. 가끔 아내에게 '냉장고 비었는데 마트 한번 갈까?'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도 비로소 충동구매의 악순환을 끊고 현명한 소비자로 거듭났다.   


 제주 한달살이할 때 필요한 음식 재료는 주로 전통시장에서 구매했다. 평소 아이들이 가보지 못했던 전통시장을 함께 체험하고 싶었다. 제주에서 머물렀던 집이 위미리에 있어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을 자주 찾았다. 가끔 서귀포 향토 오일장이나 제주시에 있는 동문시장도 들렀다. 전통시장에는 대형 할인매장에는 없는 게 있었다. 넉넉한 인심과 흥정이었다. 행여 오해할까 봐 사족을 덧붙이면 할인매장은 나쁘고 전통시장은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고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 역시 생필품이나 가공식품이 필요하면 서귀포에 있는 대형 할인매장을 찾았다. 기왕에 제주에 머물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기로 작정했으니 전통시장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가 들렀던 제주 전통시장은 비슷한 듯 서로 달랐다. 각자 개성 넘치는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렸다.  




 <서귀포 매일올레시장>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은 1960년에 상설시장인 서귀포 매일시장으로 개설되었다. 80년대까지 지역 대표 특산물인 감귤로 번성했다가 인구 유출, 대형 마트 확산으로 침체기를 겪었다. 2000년대 이후 열악한 시장 환경을 개선하고 대형 주차장을 마련하는 등 시설의 현대화에 힘썼다. 이후 2010년에 이르러 문화와 예술을 접목해 전통문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제주 올레 6코스에 포함되어 이름도 현재의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으로 바뀌었다. 올레길에서 시작된 걷기 열풍으로 수많은 사람이 제주도로 몰려들었고, 이때에 맞춰 다양한 문화예술축제를 개최해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시장 중앙에 생태 공간을 조성하고 구간마다 분수대와 물레방아, 전통 해녀 조형물도 설치해 다른 시장과 차별화를 꾀했다. 덕분에 침체에 빠져있던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은 전국에서 가장 활성화된 전통시장이 되었다. 시장 바로 맞은편에는 이중섭 거리도 조성되어 있다. 이중섭 거리에는 그가 머물렀던 거주지와 미술관, 공방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 공간과 독특한 카페가 위치해 있다. 주말에는 서귀포 예술 벼룩시장도 열려 제주의 예술가들이 그림이나 사진, 작품이나 손수 만든 물건 등을 판매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이범수>

 제주 전통시장에 와본 적 없던 우리에게는 낯선 공간이었지만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은 뭍사람들에게도 이미 너무나 유명한 관광 명소였다. 정말 매일매일 수많은 사람으로 넘쳐났다. 방송 출연으로 유명세를 탄 음식점들은 기다리는 사람들로 통로가 막힐 정도였다. 한 끼 식사를 위해 줄 서는 것을 지독히 싫어했던 우리 가족은 이런 유명한 식당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배고픈 아이들은 참을성이 없었다. 이곳에는 주로 온종일 물놀이하고 저녁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들렀다. 일단 아이들에게 군것질거리라도 하나 들려주어야 시장을 두루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문어빵이나 우도 땅콩 만두가 그 자리에서 먹기에 좋았다. 특히 우도 땅콩 만두가 별미였다. 만두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둘째 아이는 아예 자기가 먹을 저녁 메뉴로 만두를 골랐다. 이곳의 명물 중 하나인 꽁치김밥은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꽁치 한 마리가 그대로 들어가는데 엄청 맛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꽁치 머리를 보니 누구도 먹어보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또 다른 명물인 마농(마늘) 통닭은 빠뜨리지 않았다. 맥주 캔 하나를 전부 비우지 못하는 아내도 치맥은 무척 좋아했다. 그때도 지금도 치킨 한 마리에 맥주 한 캔을 사이좋게 나눠 마시는 게 우리 부부의 소확행이다. 대정에서 재배한 마늘은 맛이 달아 통닭과 잘 어울렸다. 어디나 그렇듯 '진짜 마농 통닭 원조'라는 입간판이 눈에 띄었다. 검색왕 아내가 재빨리 스마트폰을 뒤져 원조집을 찾았다. 안타깝게도 재료가 소진되었단다. 근처에 있는 통닭집에서 두 마리를 포장했다. 맛이 궁금해서 그 자리에서 몇 개 집어먹었는데 훌륭했다. 원조집 통닭을 먹어보지 않았으니 비교는 불가능했지만 이곳 역시 만만치 않았다. 제주를 떠날 때까지 같은 곳에서 마농 통닭을 구입했다. 한방약초와 허브를 넣어 푹 삶아 쫄깃하고 건강한 맛이 일품인 흑돼지 족발, 먹음직스러운 흑돼지 스테이크도 이름난 먹거리다. 흑돼지 족발은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를 운 좋게 구입했다. 물놀이하다 보면 때론 점심을 거르거나 간단하게 컵라면으로 때우는 경우도 있어 저녁거리를 장만할 때면 평소보다 많은 음식을 구입했다. 아내는 통닭을 두 마리나 샀는데 족발은 누가 먹느냐며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그때 어디선가 예언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은 밤, 족발에 맥주를 마시는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고. 예언자의 신비한 예언은 단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귤도 한 봉지 샀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후식 들어갈 배는 따로 있다는 게 평소 아내의 철학이었다. 게다가 이곳 귤은 양도 많고 자기 입맛에도 딱이니 사지 않을 수 없단다. 족발 앞에서는 그리 냉정하게 굴더니 귤 앞에서는 한없이 유해지는 아내 모습에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김지호>

 아이들이 회를 먹지 않아 횟감을 구입하지 않았지만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에는 횟감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무척 많았다. 주로 시장 통로를 막히게 하는 주범이었다. 모닥치기를 내건 분식집도 많았지만 이미 '짱구 분식'에 입맛을 들인 터라 이곳에서는 건너뛰었다. 요즘에는 전통시장도 현대화되어 대부분 재래시장이 깨끗하고 정리도 잘되어 있지만, 특히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은 깔끔할 뿐만 아니라 시장 곳곳에 휴게시설도 잘 마련되어 있어 놀랐다. 구경하다 힘들면 통로 가운데 마련된 의자에서 쉬기도 하고 방금 산 군것질거리를 먹을 수도 있어 좋았다. 물론 코로나 이전 시대의 이야기다. 지금은 이용이 불가능하다. 유독 한 가지 없는 것이 있으니 쓰레기통이었다. 제주는 쓰레기 문제에 민감해 시장에도 쓰레기통을 비치해 두지 않았다. 조금 불편해도 직접 들고 가야 한다. 아름다운 제주를 보존하기 위해서니 사실 불편할 것도 없었다. 제주를 아끼는 관광객이라면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처럼. 



 <서귀포 향토 5일장>


 서귀포 향토 5일장은 매월 끝자리가 4일, 9일인 날에만 열린다. 이곳 역시 시설이 현대화되어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이용할 수 있었다. 큰 주차장 건물이 따로 있을 만큼 규모도 엄청나다. 우리가 처음 서귀포 향토 5일장을 방문한 날은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오전 시간이라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아내 제안으로 출출한 배를 진정시키기 위해 대표 먹거리인 녹차 호떡부터 하나씩 손에 들었다. 허기진 상태로 장을 보다가는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역시 아내는 현명했다. 녹차 호떡을 들고 시장 구경에 나섰다. 평소 궁금하던 애플망고를 사러 과일가게가 몰려 있는 구역부터 들렀다. 역시 제주의 전통시장답게 온갖 종류의 귤이 소담하게 진열되어 손님을 기다렸다. 어느 가게로 가야 하나 망설이는데 마침 모퉁이에 있는 가게의 인상 좋은 주인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어느새 그 가게 앞까지 갔다. 노란색 망고에 익숙한 우리는 붉은색 애플망고를 4개나 구입했다. 가격이 제법 나갔지만 맛이 궁금해 큰 마음먹고 샀다. 귤은 아내가 좋아하는 맛, 내가 좋아하는 맛으로 각각 한 봉지씩 샀다. 확실히 귤은 전통시장에서 사야 제맛이라는 게 귤 전문가 아내의 의견이었다. 마음씨 좋은 주인아저씨가 파치라는 비상품용 귤도 한 봉지 덤으로 주었다. 분식집에 들러 아내가 좋아하는 떡볶이와 튀김, 내가 좋아하는 찹쌀 도넛과 꽈배기도 한 봉지씩 샀다. 맛이 너무 궁금해 그 자리에서 도넛과 꽈배기를 하나씩 먹었는데 나중에 계산할 때 주인아주머니가 덤이라며 돈을 받지 않았다. 우리가 먹은 것이니 돈을 내겠다고 했지만 한사코 받지 않겠다고 했다. 반찬 가게에 들러서는 둘째 아이가 좋아하는 오징어 젓갈도 사고 태어나서 처음 맛본 아귀포채도 구입했다. 아귀포채는 그 맛이 정말 기가 막혔다. 아이들 반찬으로도 좋지만, 맥주 안주로 그만이라는 반찬가게 사장님의 달콤한 유혹에 홀랑 넘어갔다. 그런 유혹이라면 얼마든지 넘어가도 좋았다. 일주일 치로 구입한 아귀포채는 이틀 만에 동났다. 반찬가게 사장님이 한 움큼이나 덤으로 주었는데도 말이다. 

 장 본 물건들로 두 손이 제법 무거워 더 이상 먹을거리는 사지 말자고 다짐한 순간 우리 눈앞에 빙떡이 떡 하니 나타났다. 제주 7대 향토음식이기도 한 빙떡은 그동안 먹을 기회가 없어 몹시 궁금했는데 하필 그 순간에 거짓말처럼 고운 자태를 드러낸 것이다. 아내에게 빙떡은 먹을거리가 아니라 제주 향토음식을 공부하기 위한 교재라고 은근히 말했다. 이건 사야 하지 않을까?" 멀리 떨어진 사람도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목소리로 혼잣말했다. 아내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쪼르르 달려가 그 자리에서 빙떡을 맛보았다. 삶은 무채를 메밀전에 말아먹는 것으로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 주시던 강원도 메밀전병과 모양이 똑같았다. 하지만 맛은 전혀 달랐다. 양념이 되어 있지 않은 시원한 무채가 담백한 메밀전과 만나 슴슴함의 절정을 꽃피웠다. 아내와 나는 말없이 눈빛을 교환했다. 곧이어 "5천 원어치 포장이요."라는 말이 어디선가 들려왔다. 결국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먹은 녹차 호떡은 효과가 없었다. 두 손 가득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기분 좋게 웃으며 발길을 돌렸다.

 서귀포 향토 5일장은 매일올레시장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향토 5일장이 토착민을 위한 재래시장에 가깝다면 매일올레시장은 관광객을 위한 전통시장에 가까웠다. 향토 5일장은 식재료나 생필품도 많은 자리를 차지했다. 반면 매일올레시장은 먹거리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두 곳 모두 과일(귤)이 한 구역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으니 제주의 전통시장다웠다. 향토 5일장에서 '몸뻬'라는 편안한 바지를 아내와 하나씩 장만해 입으려고 했는데 아이들 만류로 그만두었다. 그때가 아니면 못하는 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조금 아쉽다. 전통시장에서 장 보는 일이 조금 불편하긴 했다. 먹을거리 한두 가지만 사 가지고 나온다면 불편할 것도 없지만, 제법 양이 많으면 쇼핑 카트 어디 없나 살펴보게 된다. 그래도 그 불편함은 넉넉한 인심과 흥정으로 감당할 정도였다. 덤은 기본이고 몇 천 원씩 꼭 깎아주었다. 제 값을 내겠다고 우기면 덤에 덤이 따라왔다. 물론 장사꾼의 '밑지고 파는 거예요.'라는 말이 세계 3대 거짓말 중 하나에 속한다지만 사람 마음이 또 그렇지 않다. 흥정이라는 우리말에 정이 '정(情)'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 냄새가 나서 좋았다. 제주도에는 서귀포 향토 5일장 말고도 다른 5일장이 많다. 제주시의 민속 5일장과 대정 5일장이 규모도 크고 볼거리도 많다고 하니 다음에 제주에 가게 되면 이 두 곳도 꼭 들러볼 참이다.   


  * 제주 민속 5일장 : 매달 끝자리 2, 7일 개장 

  * 함덕 5일장 : 매달 끝자리 1, 6일 개장

  * 대정 5일장 : 매달 끝자리 1, 6일 개장

  * 표선 5일장 : 매달 끝자리 2, 7일 개장

  * 성산 5일장 : 매달 끝자리 1, 6일 개장

  * 중문 향토 5일장 : 매달 끝자리 3, 8일 개장

  * 고성 5일장 : 매달 끝자리 4, 9일 개장

  * 한림 5일장 : 매달 끝자리 4, 9일 개장

  * 세화 민속 5일장 : 매달 끝자리 5, 10일 개장 



 <동문시장>


 한달살이 하며 머물렀던 집이 위미리에 있어 좀처럼 제주시까지 나올 일이 없었다. 하지만 중간에 한두 번은 반드시 나와야 했다. 동문재래시장에 들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아내가 유일하게 맛을 인정한 오메기 떡집이 있었다. 오메기떡은 제주도에서 많이 재배되는 차조를 이용해 만든 떡이다. 일명 흐린 좁쌀이라고 하는 검은색 차조로 만든다. 일반적으로 사 먹는 오메기떡과 전통 오메기떡은 모양이 다르다. 차조에 소금을 넣고 가루로 빻은 후 끓는 물로 반죽한다. 직경 5cm 정도의 도넛 모양처럼 가운데 구멍이 뚫리게 빚는다. 골고루 잘 익게 하기 위해서다. 그걸 삶으면 오메기떡이 된다. 삶은 떡은 그냥 먹기도 하고 콩가루나 팥고물을 묻혀 먹기도 한다. 냉수로 씻어낸 후 꿀을 묻혀 먹기도 한다. 떡에 누룩가루를 버무려 보관하면 오메기술이 된다. 사실 오메기떡은 오메기술을 만들다 남은 차조로 떡을 만들어 먹은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다른 시장에서 몇 번 오메기떡을 먹어 본 아내는 더욱더 동문시장 떡집을 그리워했다. 솔직히 내 입맛에는 그 집 떡이나 이 집 떡이나 차이점을 모르겠는데 아내는 어떻게 모를 수 있냐며 발끈했다. 그렇다면 어서 동문시장으로 납시셔야죠!

<이미지 출처 : 제주 동문재래시장 공식 홈페이지>

 동문시장은 제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상설시장이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동문시장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제주 동문 상설시장이 형성되었고, 이듬해 모슬포에 국방경비대 제9연대가 창설되고 육지 왕래객이 늘어나면서 제주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현재는 청과시장과 수산시장이 나란히 붙어 있는데 없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올레 17코스가 지나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 가게도 많은데 요즘에는 소규모 수공예 상품들이 인기가 많다. 이곳은 제주시 구도심 중앙로에 위치해 있어 관광객뿐만 아니라 도민들도 많이 이용해 언제나 활기 넘친다. 주차시설이 잘 되어 있지만, 워낙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 주차하기에 쉽지 않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우리는 주로 시장 입구 건너편에 있는 유료주차장을 이용했다. 모르고 갔는데 동문시장을 이용하면 1시간은 무료였다. 주차비도 저렴했지만(1시간에 1,500원) 관광객을 위한 배려에 괜히 기분 좋았다. 오메기 떡을 사러 왔으니 오메기 떡집부터 들렀다. 제주에 머무르는 동안 먹을 만큼만 욕심부리지 않고 샀다. 냉동실에 얼려 두었다가 하나씩 꺼내 녹여 먹으면 간식용이나 아침 대용으로 그만이었다. 포장하는 동안 주인아주머니가 맛보라며 오메기떡을 하나씩 주었다. 확실히 맛은 있었지만 차이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아내가 "거 봐, 맛이 다르지?" 하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동문시장은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만물시장이지만 역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건 은갈치와 귤이었다. 반짝이는 은빛 비늘이 고운 제주 갈치는 비싼 가격 때문에 '금치'라고도 불리는데 이곳에는 갓 잡은 싱싱한 갈치를 구입하려는 관광객들로 언제나 북적인다. 귤은 또 어떤가? 뭍사람은 쉽게 헷갈리는 다양한 종류의 귤이 자기가 가장 맛있다고 뽐내듯 진열되어 있다. 아내는 작고 새콤한 귤을 좋아해 1kg에 5,000원 하는 감귤을 샀다. 같은 종류의 귤이라도 땅에서 그냥 키운 것, 바닥에 비닐을 덮어 씌워 키운 것, 하우스에서 키운 것 각각 맛이 다르다고 했다. 감귤 생산 및 유통에 관한 조례가 따로 있다는 말도 이때 처음 들었다. 감귤 품위 유지 및 농가의 생계를 위해 감귤 생산과 유통을 엄격히 관리한다고 했다. 흔하게 먹는 과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제주에서는 생계이자 생활이었다. 진열된 귤 한편에서 돗멘이라는 검은 봉지도 발견했다. 제주 흑돼지 라면이었다. 정말 제주에는 별게 다 있구나 싶었다. 라면에 진심인 우리가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한달살이가 끝나고 제주를 떠나는 날 이곳에 들러 오메기 떡과 함께 돗멘을 사갈 정도였으니 그 맛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하시리라.  


 지금은 편의점에서 4캔에 만 원으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제주맥주도 당시에는 구하기 어려웠다. 특히 그 당시 막 출시한 펠롱 에일은 구할 방법이 없었다. 동네 슈퍼나 편의점, 음식점에서는 존재조차 몰랐다. 일부러 대형 마트까지 찾아가 물어봤는데 그곳에서 일하던 직원이 오히려 전통시장에 가야 살 수 있을 거라고 귀띔해 주었다. 몇 군데 가게에 들렀지만 잘 모르거나 없다고 했다. 출시 초기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아내의 끈질긴 탐문  덕분에 드디어 한 과일 가게에서 펠롱 에일을 만났다. 일단 6 캔들이 한 상자만 사서 맛을 보기로 했다. 제주에서도 1일 1 맥주를 실천 중이니 사나흘이면 없어지겠지만 검증할 시간이 필요했다. 페일 에일 타입 크래프트 맥주인 펠롱 에일은 다양한 기후대의 식물들이 조화를 이루는 곶자왈처럼 여러 가지 개성 있는 홉을 블렌딩해 만든 맥주였다. 외국어인 줄 알았던 펠롱은 ‘반짝’이라는 의미의 제주 방언이었다. 펠롱 에일은 그해 우리가 먹은 맥주 중에 단언컨대 최고의 맥주였다. 지금도 냉장고에는 제주맥주 삼총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당시에는 한 캔에 4천 원이라 가격 부담이 있었는데 이제 만 원에 4캔이나 구입할 수 있으니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제주를 떠나는 날 24 캔들이 한 상자를 사서 실고 올 정도로 우리 부부는 펠롱 에일 맛에 흠뻑 취했다. 동문시장이 야시장으로도 유명하다는 걸 나중에나 알게 되었다. 아내와 단 둘이서 데이트를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는데 가보지 못해 아쉬웠다.


 규모가 큰 동문시장은 골목 상점들이 많아 찬찬히 살펴야 한다. 오래 볼 수록 좋다. 그래야 재래시장의 참맛을 즐길 수 있다. 제주도를 자주 찾기에 관광 기념품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지 한참 되었다. 하지만 이곳 골목골목에서 만난 수공예 관광 기념품 가게에는 마음에 드는 상품이 꽤 많았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소장하려고 몇 가지를 구입했다. 귀여운 병따개도 있고 제주를 대표하는 동식물을 적용한 화투도 있었다. 물론 단점도 있다. 곳곳을 살펴보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다. 주변에 관덕정이나 제주목관아와 같은 유적지가 있었지만 찾아가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도 하루쯤은 시간 내어 제주 전통시장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넉넉한 인심이나 사람 냄새나는 낭만은 뒤로 하더라도 온갖 제주의 산해진미가 전통시장에 모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이다. 주머니가 가벼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으니 이곳만큼 여행자에게 좋은 장소가 또 있을까?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김지호>

이전 20화 구름도 바람도 쉬어 가는 비양도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익숙한 제주 낯설게 즐기기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