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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Nov 12. 2021

술로 읽는 <위대한 개츠비>

불타는 금요일, 그에게 위스키 온 더 락 한 잔을!

 일상적 경험을 초월적 가능성으로 바꾸는 탁월한 재능을 의미하는 ‘개츠비적(Gatsbyesque)’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킨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인이 사랑하는 소설 목록 상위권에 항상 그 이름을 올리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낭만 소설 3부작'으로 꼽는 <위대한 개츠비>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 <상실의 시대>와 함께 읽을 때마다 매번 '발견의 희열'을 느끼게 해준다. 이전에 읽을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문장이나 Context(문맥)을 발견하면 마치 처음 읽는 것인 양 새로웠다. 오래도록 곁에 두고 읽는 소설이라니 이 작가들의 불멸(不滅)이 못내 부러웠다. <위대한 개츠비>가 2013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주연으로 한 영화로 개봉된다고 했을 때 걱정부터 앞섰다.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는 소설일수록 영화화에 성공한 사례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텍스트를 읽으면 그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한  편의 영화처럼 그려지곤 했는데 내가 상상했던 장면과 영화의 장면이 충돌하는 게 싫었다. 무한한 상상들이 영화의 이미지로 시각화되어 박제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신들린 듯 연기하는 디카프리오 덕분에 영화도 꽤 재미있게 보았다. 사랑에 눈이 멀어 잃어버린 연인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래서 늘 초조한 개츠비는 디카프리오 덕분에 비로소 육신을 갖게 되었다. 그 점을 걱정했는데 그 점이 좋았다. 허영심 많고 세상만사가 귀찮은, 그러나 개츠비 눈에는 아마 아프로디테쯤으로 보이는, 나른한 데이지를 연기한 캐리 멀리건도 소설 속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졌다. 물론 닉(화자)을 연기한 토비 맥과이어도 무척 잘 어울렸다. 걱정이 기우(杞憂)로 끝나 참으로 다행이었다. 

<이미지 출처 : 영화 공식 홈페이지>

 <위대한 개츠비>의 서사는 비교적 간단하다. 평범한 신분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주인공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해 이를 기반으로 다시 사랑을 되찾는 이야기다. 결말은 허무하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돌리지도 못하고 씁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이 소설이 오래도록 미국인과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궁금했다. 아마도 이 작품이 사랑과 물질적 성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재즈의 시대'라 불리던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적나라하게 담아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물론 사랑에 모든 걸 던지는 매력적인 캐릭터도 한 몫했을 터였다. 비록 불법적인 수단으로 부를 축적한 인물일지라도 말이다. 현대의 모든 사랑 영화가 <카사블랑카>의 변주라고 한다면, 현대 연애소설의 변주는 <위대한 개츠비>라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 중 한 명인 무라카미 하루키도 스콧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애정을 그의 작품에 듬뿍 담았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 


 <상실의 시대>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기인 중의 기인인 도쿄 대학 법학부의 나가사와가 평범한 와타나베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나가사와는 사후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은 읽았지만 스콧 피츠제럴드만큼은 예외로 한다. 


 “스콧 피츠제럴드 정도로 훌륭한 작가라면 언더 파로도 충분해.”


 개인적인 뇌피셜이지만, 하루키의 또 다른 작품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오마주를 찾을 수 있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그녀의 집이 잘 보이는 곳에 화려한 저택을 사들인 것처럼 <기사단장 죽이기>에 등장하는 백발의 신사 멘시키도 자신의 딸이 사는 집 맞은편에 호화로운 저택을 구해 산다. 개츠비가 언제나 저 멀리 부두의 맨 끝자락에 있는 데이지의 저택에서 흘러나오는 초록색 불빛을 바라보며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멘시키 또한 자신의 딸을 그리워하며 우연을 만남을 갖기 위해 교묘한 방법을 고안해 낸다. 개츠비가 데이지의 사촌인 닉을 통해 그녀에게 닿은 것처럼, 멘시키도 주인공인 ‘나’를 통해 딸과 만나게 된다. 이 정도 설정이라면 하루키도 참 지극 정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위대한 개츠비>는 1차 세계대전 후 경기상승이 최고조에 오른 1920년대 미국 상류층의 생활상과 문화를 보여준다. 여러 번 읽다 보니 작품에 등장하는 술에도 관심이 갔다. 개인적으로 술과 인연도 깊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술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 보면 재미있을 듯하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 후 곡물의 전용을 막기 위해 금주법을 제정한다. 하지만 상류층에게는 돈이 더 드는 불편함만 감수하면 술 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개츠비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된 것도 금주법 덕분 아니던가! (마치 알 카포네처럼 말이다) 술로 읽는 <위대한 개츠비>가 더 관심 가는 이유다. 


 “중앙 홀에는 진짜 청동 레일로 장식한 바를 설치해 놓고, 그 위에는 각종 술과 코디얼 주가 가득했다. 코디얼 주는 워낙 오랫동안 잊혔던 술이라 나이 어린 여자 손님들은 제대로 구별해 낼 수도 없었다.”          


 작품 초반부에는 베일에 싸인 인물인 개츠비의 화려한 파티를 묘사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영화에서도 파티 장면을 연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개츠비가 얼마나 성공한 인물인지를 독자(관객)가 상상하도록 유도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술 가운데 하나가 코디얼 주다. 상류층만 참석하는 호화 파티에서 제공하는 칵테일이라 호스트가 가장 신경 써 준비하는 만찬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디얼(Cordial)이란 냉장 보관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유럽에서 착즙 한 과일 원액을 설탕과 함께 가열해 농축한 것을 말한다. 사전적 의미로 강심제, 흥분제, 리큐어 술을 뜻하는데 알코올이 함유된 주스인 셈이다. 코디얼은 파티에 잘 어울리는 술이다. 과일 베이스라 마시기에 편하고 자양강장 효능까지 있어 계속 하이텐션을 유지할 수 있다. 매주 금요일 뉴욕의 과일 가게에서 개츠비의 대저택으로 다섯 광주리의 오렌지와 레몬이 배달되고, 월요일 오후면 그 과일들은 반쪽으로 쪼개진 껍질만 남긴 채 버려지는데 작품 안에서는 이 과일들이 주스로 만들어진다고 표현되었지만, 코디얼 주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금주법이 시행 중이던 시기에 이렇게 들어내 놓고 술을 제공하는 파티를 제공하다니 개츠비가 당시 사교계에 얼마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잊혔던 술'이라고 한 건은 아마도 이 술이 처음 만들어진 곳이 유럽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미권 국가에서는 향을 첨가한 증류주로 리큐르 또는 브랜디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한다. 

    

 뉴욕 뒷골목의 권력자 울프심과의 만남에서 등장하는 술은 하이볼(Highball)이다. 덥고 끈적끈적한 정오의 레스토랑에서 개츠비가 주문할 때 등장한다. 더운 날씨에 한 잔 하기에 이만한 칵테일은 없으니 적절한 선택이지만, 역시 금주법이 시행되던 시기에 한낮에 대놓고 주문하다니 개츠비를 용감하다고 해야 할까? 하이볼은 만들기도 무척 쉬워 개인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높은 위스키를 마실 때 애용하기도 한다. 하이볼은 추락하던 일본 위스키를 부활시킨 산토리 하이볼이 200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다가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큰 인기를 얻었다. 물론 이전에도 종종 하이볼로 음용했지만 이때만큼 유행하지는 않았다. 위스키에 얼음과 함께 소다수(탄산수나 진저엘도 가능)를 넣기만 하면 끝이다. 한 여름에 시원하게 한 잔 마시기에 더없이 좋은 술이다. 흔히 알고 있는 '위스키소다(Whisky & Soda)'라고 생각하면 된다. 현재는 위스키 종류에 상관없이 소다수를 타서 마시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부드러운 스카치위스키는 향을 극대화하기 위해 물과 함께, 거친 아메리칸 위스키는 소다수와 함께 섞어 마셨다. (부드럽다와 거칠다는 품질이 아니라 특징을 설명하는 의미로 사용)


 개츠비는 닉을 설득해 드디어 데이지를 자신의 저택에 초대한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집안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준다. 데이지에게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재력가가 되었는지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러자 데이지도 개츠비와 닉을 자신의 집에 초대한다. 개츠비는 갑작스러운 초대에 불안해하지만 데이지는 여전히 특유의 나른함에 빠져있다. 자신의 아이를 개츠비에게 인사시키기도 한다. 이때 톰이 들고 나오는 술이 진 리키(Gin Rickey)다. 진은 처음 네덜란드에서 국민 음료라 불리며 유행했는데 네덜란드 지지를 얻어 영국 왕위에 오른 윌리엄 3세가 자국에 보급해 큰 인기를 끌었다. 값싼 독주라 당시 영국 사회에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가격이 저렴하고 감미가 적어 칵테일 원료로도 많이 사용한다. 드라이 진에 라임 주스를 섞고 소다수를 첨가해 만든 칵테일이 진 리키다. 만드는 방법 역시 매우 간단해 하이볼 글라스에 라임 즙을 짜서 넣고 드라이 진과 라임 주스, 찬 소다수를 넣으면 끝이다. 데이지의 초대를 받은 날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의 막바지라 개츠비는 진 리키를 단숨에 들이켠다.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당황해서인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시원한 진 리키 한잔으로 개츠비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으리라는 점이다. 결국 아무 사고 없이 데이지의 첫 초대는 끝이 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야기가 절정을 항해 갈 무렵 등장하는 술은 민트 줄렙(Mint Julep)이다. 개츠비와 데이지, 닉과 조던 그리고 톰 다섯 사람은 더위 때문에 무작정 외출하자는 데이지의 황당한 제안으로 시내에 나온다. 이 상황이 마땅치 않던 톰은 개츠비와 데이지 두 사람이 사라질까 봐 막무가내로 플라자 호텔로 가자고 제안한다.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인 데이지는 숨이 턱 막히는 더위 때문에 냉수욕을 즐기자고 제안하지만, 정작 호텔 스위트 룸에 들어가자 민트 줄렙을 마시자며 생각을 바꾼다. 줄렙은 텀블러에 잘게 부순 얼음을 채우고 주로 켄터키 주에서 생산하는 버번위스키에 설탕을 넣어 만드는 칵테일이다. 줄렙 중에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이 상쾌한 민트 잎을 첨가한 민트 줄렙이다. 민트의 상쾌함과는 반대로 정작 이곳은 비극이 시발점이 된다. 개츠비와 톰이 충돌하고, 개츠비와 데이지의 갈등이 극대화되는 공간이다. 톰은 개츠비의 추악함을 들춰내고, 개츠비는 데이지가 남편을 사랑한 적이 없음을 고백하라고 종용한다. 데이지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은 개츠비지만, 남편을 과거에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두 사람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개츠비는 톰의 정부(머틀 윌슨)를 차로 치여 죽였다는 오해를 받고 그녀의 남편(조지 윌슨)에게 죽임을 당한다. 사랑하는 연인을 되찾고 싶던 개츠비의 꿈은 거품처럼 사라지고, 불빛을 쫒던 불나방들처럼 파티를 찾던 사람들 중 누구도 개츠비의 장례식에 오지 않는다. 오직 닉만이 그를 기억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개츠비의 대저택에서 호화로운 파티가 수도 없이 벌어졌지만 정작 개츠비는 술 한잔 마시지 않았다. 꿈에 그리던 데이지가 언제 자신의 저택을 방문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개츠비는 사랑밖에 모르는 바보 사랑꾼이었다. 모든 일에 빈틈없던 완벽주의자였지만 사랑 앞에서는 서투른 것투성이인 낭만주의자였다. 사랑을 위해서 모든 걸 내던질 수 있었던 개츠비. 불타는 금요일 그에게 공감과 동정의 마음을 담아 술 한잔을 권한다. 가장 흔하게 위스키를 마시는 방법이지만, 그 본질에 가장 가깝게 닿을 수 있는 칵테일이다. 

     

 "형씨, 위스키 온 더 락(Whisky On the Rocks) 한 잔 하겠소?"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 글은 <고전의 재味발견>이라는 제목으로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썼던 독서 감상문을 리라이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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