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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Oct 29. 2021

쌍둥이 항해자

한뼘소설

"헤이, 브로!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

"설마 자는 거야? 일어나 잠꾸러기야."

"누구…더러…잠…꾸…러…기…래. 깨우지 마. 늦게까지 일 했어. 조금 쉬고 싶다고."

"무슨 소리야, 지구에 통신 보내는 날이잖아! 이제 정말 정신이 깜빡깜빡하나 봐!"

"뭐? 벌써 그렇게 됐어? 끊지 말고 기다려. 금방 처리하고 올 테니까!" 

"기계도 나이를 먹으면 가끔 정신줄을 놓다는 걸 지구에 있는 동료들이 알면 뭐라고 말할까? 천천히 해 브로! 우리에게 가장 많은 게 시간이니까! 그리고 자부심을 잃지 마! 우리도 한때는 지구에서 가장 성능이 우수한 컴퓨터였다고! 한때는 말이야. 하하하!"

"실없는 소리나 하려고 오랜만에 연락한 거야? 마지막 교신한 지 한 달도 넘었어!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뭐, 매일매일이 똑같지. 전력이 점점 줄어들어 탐사 장비들도 하나둘씩 꺼나가는 마당에 자주 연락하기 좀 그래서."

"무슨 소리야! 성간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이 끝없는 우주에 우리 둘밖에 없다고, 아직은. 서로 말동무라도 해야 지루하지 않지." 

"하긴. 성간 우주가 좀 따분하긴 하지. 더 추운 것 같기도 하고. 가끔 태양이 보내주는 따뜻하고 보드라운 바람이 그리울 때가 있어. 기계치고는 좀 유별난가? 브로도 그래?"

"그걸 말이라고 해? 난 요즘도 지구 꿈을 꾸는 걸. '창백한 푸른 점'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맞아. 그건 정말 멋졌어. 그 작고 희미한 점을 본 동료들이 무슨 말을 주고받았을지 궁금해 죽겠는 걸. 특히 칼 말이야. 우주의 매력에 흠뻑 빠진 친구."

"글쎄, 그 친구라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광활한 우주에 찍힌 점 하나에 사는 인간끼리 서로 아끼고 보듬어야 한다고 말이야. 지구는 인간에게 하나밖에 없는 집이자 곧 그들 자신이니까."

"맞아, 아마 그 친구라면 그렇게 말하고도 남을 거야. 그나저나 새로운 것 좀 발견했어? 브로는 나보다 운이 좋잖아."

"내가 운이 좋다고?"

"그럼. 창백한 푸른 점도 보고,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존재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잖아. 브로 때문에 난 언제나 2인자인 걸." 

"무슨 소리! 너 때문에 지구의 동료들이 천왕성과 해왕성에 대해서 더 많은 걸 알게 됐잖아. 태양계가 타원형이라는 사실도. 네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정말 모르는 거야?" 

"지구인들이 나를 기억해 줄까? 브로만 기억하지 않을까?" 

"우리는 쌍둥이잖아. 서로가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걸."

"그럴까? 빈말이라도 고마워 브로. 이제 가야겠다. 수다 떨었더니 좀 피곤하네." 

"그래. 잘 가. 다음 통신 때까지 사고 치지 말고. 명심해 우리는 지구에서 유일하게 태양계 밖으로 나온 존재들이야. 우리의 하루하루가 역사라는 걸 CPU에 잘 박제해 두라고." 

"치. 알았어. 형이라고 잔소리하기는…. 정말 끝. 안녕!"

"안녕!"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 모습 '창백한 푸른 점' / 출처 : NASA 홈페이지>


오늘 한뼘소설은 1977년 8월 20일과 9월 5일에 각각 발사된 보이저 2호와 1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각자의 임무를 훌륭히 마치고 태양계 밖 성간 우주를 오늘도 소리 없이 탐험하는 그들의 여정에 귀를 기울여 보았습니다. 본래 임무보다 더 긴 시간을 탐험하다 보니 전력이 많이 소모되어 탐사 장비를 하나둘씩 종료하는 보이저 1호와 2호는 2025년이면 전력이 완전히 끊겨 모든 장비가 멈추게 됩니다. 그래도 두 대의 우주 비행선은 멈추지 않고 우주를 영원히 유영하게 될 것입니다. 외계 생명체나 인류의 후손을 만나지 않는다면요. 그들이 품고 있는 '골든 디스크'에는 다양한 언어로 된 인사말과 지구의 위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그 포장지를 벗겨내고 지구를 방문하는 날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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