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으로 진짜 가족이 되었다.

아이는 당신의 것이 아니다!

by 조이홍
가족의온도.jpg '개성 만점 입양 가족의 하나 되는 시간' <가족의 온도>

아내와 결혼하던 해, 우리에게 삶과 세상에 대해 아직 순수한 열정이 존재하던 무렵에 '입양'을 계획했었다. 작게라도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가슴으로 아이를 낳는 일은 그 마음과 무척 잘 어울렸다. 바위처럼 단단한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첫째 아이를 낳고 두 해 후 다시 둘째 아이를 낳으면서 입양 계획은 봄눈 녹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리가 낳은 자식도 이토록 애를 먹고 감당하기 힘든데 생판 모르는 아이를 잘 키워낼 자신이 없었다. 후회하지 않을 용기가 없었다. 치기 어린 20대 젊은 부부의 감성은 현실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피우지도 못한 채 시들고 말았다.


몇 날 며칠을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입양하겠다는 마음을 접길 잘했다 싶다. 사내아이 둘을 키우면서 반려동물 하나 들이는 것도 '생명' 하나를 보살피는 신성한 책임이 따르는지라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하물며 한 사람의 인생을 돌봐야 한다는 건 선한 마음이나 이상에서 비롯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삶 그 자체였고 매일매일 부대껴야 하는 일상의 고단함과 노력을 수반했다. 뜨거운 가슴보다 냉정한(현실적인) 판단이 필요했다. 고백하자면 우리는 그만큼의 성숙함에 닿지 못했다.


아내가 도서관에서 이설아 작가의 <가족의 온도>라는 그림책을 빌려 왔다. 그림책이지만 두께가 상당하고 글밥도 많았다. 우리와 같은 꿈을 꾸었고, 우리와 달리, 삶에서 그 꿈을 이룬 입양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가족이란 무엇인지, 아이란 부모에게 어떤 존재인지 등의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생면부지 아이를 하나도 아니고 무려 셋이나 입양해 가족을 이룬 부모는 얼마나 마음이 깊고 넓을지 헤아릴 수 없었다. 내가 낳은 자식도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꼴도 보기 싫은 날이 있었다. 10,000 조각 레고 부품이 방안에 차고 넘치는데 부품 하나로 치고받고 싸우는 날이면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부모가 도(道)를 닦는 사람이라면 이번 생애는 득도하는 건 포기해야겠다 싶었다. 그러다 이설아 작가의 다음 구절을 읽고 가슴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쿵 하고 떨어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가슴에 떨어진 바위는 세차게 동심원을 그리며 끝없이 일렁거렸다.


"아이를 그려야 할 스케치북이 아닌 읽어야 할 책으로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갓 태어난 아기에게서 순백의 깨끗한 도화지를 떠올리며, 앞으로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는 무한대의 가능성, 부모의 열심과 사랑으로 빚어내는 멋진 완성품을 꿈꾸곤 합니다. 아이가 무엇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어떤 개성과 고유함이 있는지 관찰하기보다는 부모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이에게 새겨 넣으려고 애쓰곤 합니다.


모든 부모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었다. 나 역시 우리 아이들에게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아이들은 부모들이 그려나갈 스케치북이 아니었다. 정말 읽어야 할 책에 가까웠다. 어떤 개성과 내용으로 채워져 있던지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스스로 자신의 스케치북을 채워나갈 용기를 북돋아주는 걸로 부모의 역할은 충분했다. 처음 접한 사실도 아니고 모르는 바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쉽게 잊어버렸다. 망각이라는 신의 선물을 이럴 때는 무기로 잘도 활용했다. 그러니 이렇게 각성해주는 무언가가 없다면 지독한 자기 망상에 시달려 또 아이들을 마음대로 휘두를 뻔했다. 워워…, 스스로 꽉 조인 고삐를 풀어놓기로 했다.


어린 자식이 있다면 최선의 능력을 다해 돕고 지도하고 보호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공간을 허용하는 일이다.
존재할 공간을. 아이는 당신을 통해 이 세상에 왔지만 '당신의 것'이 아니다.
- 에크하르트 톨레


요즘 한창 조정래 작가님의 <풀꽃도 꽃이다>를 읽고 있다. 사교육에 찌든 교육 현실에서 성적보다는 인간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대한민국을 꿈꾸는 작가님의 소망이 담긴 작품이다. 마침 작가님이 작품에 인용한 에크하르트 톨레(달라이 라마, 틱낫한과 함께 세계 3대 영적 지도자)의 문장이 <가족의 온도>에서 읽은 내용과 묘하게 겹쳤다. 하필 이 시점에 두 책을 만났다? 뭔가 삶의 도표(道標)와 마주친 기분이었다. 그렇다, '내려놓음'이었다. 아내와 20년 동안 싸우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비결 아닌 비결은'내려놓음'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티격태격하던 젊은 날의 우리가 하하호호 웃으면 살게 된 건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부터였다. 내가 꿈꾸던 배우자상(像)이 아닌 그 사람 그대로.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지만 오랜 진통 끝에 결국 멋지게 해냈다.


이제 아이들과의 관계도 '내려놓음'으로 가야 할 차례임을 우연히 읽은 두 책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려놓음'은 '포기'와는 질적으로 완전히 달랐다.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높은 수준의 정신력을 요구했다. 내가 정해 놓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고 각자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나아가다 우연히 교차점을 만나는 것이었다. 사실 이전에도 몇 차례나 시도했지만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내려놓기란 아내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러나 이제 정말 내려놓아야 할 때가 왔다. 우연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면 운명이 된다. 내려놓음으로써 진짜 가족이 탄생하리라 믿는다. 그저 생물학적으로 부모, 자식이 아니라 서로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진짜 가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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