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내 편

2월 26일, 정지음 작가의 <젊은 ADHD의 슬픔>을 읽다가

by 조이홍

정지음 작가의 <젊은 ADHD의 슬픔>을 보면 '성인용 ADHD 검사'를 무료로 진단할 수 있는 사이트(https://testharo.com/)를 소개해 준다. (초등학생용, 중고등학생용, 성인용 3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총 22개 항목을 4지선다형(전혀 그렇지 않다 / 가끔 그렇다 / 자주 그렇다 / 항상 그렇다)으로 고르도록 되어 있는데 총점 20점 이상이면 ADHD로 의심되는 것이다. 모두 '전혀 그렇지 않다'를 고르면 총점은 0점이 나오고, 모두 '항상 그렇다'를 고르면 총점이 66점이 된다. 문항은 아래와 같다. (궁금하면 한 번 시도해 봐도 좋다)


1. 일을 순서대로 진행하기 어렵다.

2.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준비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3.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시작하지만 끝마치기 어렵다.

4. 책을 읽거나 대화하는 도중 쉽게 주의가 분산된다.

5. 어떤 일에 과도하게 집중한다.

6. 정밀한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

7. 조심성이 없어 실수를 많이 한다.

8.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9. 지속적인 정신력을 요하는 직업을 피하거나 싫어한다.

10.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즉각적으로 말한다.

11.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다.

12. 불필요하게 끝없이 걱정한다.

13.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한다.

14.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불쑥 대답해버린다.

15. 차례를 기다릴 때 초조하고 답답하다.

16. 술 담배 게임 쇼핑 일 음식 등에 깊이 빠져든다.

17. 가만히 있지 못하고 손발을 움직이거나 몸을 뒤튼다.

18.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

19. 가끔 창조적이고 직관적이며 지적으로 우수해 보인다.

20. 가족 중 우울증 조울증 약물남용 충동조절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다.

21. 돈을 충동적으로 쓴다.

22. 과속 음주운전 또는 과음을 자주 한다.


우리 뇌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한 기간을 1년이라고 가정할 때 이와 반대로 즉흥적이고 본능에 의한 감각적인 사고를 한 기간은 얼추 계산해도 약 100년쯤 되지 않을까 싶다. 위의 22가지 문항을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가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그 100년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능력들이 아닐까 싶다. 사냥하고 물고기 잡으며 삶을 개척해 나가던 시대 말이다. 내일 해가 뜬다는 사실 말고는 모든 것이 불명확한 시대를 살았던 우리 먼 조상들에게 순서가 정해진 일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사냥하고 물고기 잡던 시대에 형성된 뇌로 온종일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거나 업무를 보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부조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꼭 ADHD가 아니어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 부조화를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까? 차마 독서가 좋다는 말은 못 하겠다. 정지음 작가는 '온전한 내 편'을 하나쯤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각박한 세상에서 누가 나를 위해 온전한 내 편이 되어줄 수 있을까? 가족, 연인, 자식 모두 가능성은 있지만 아니다. 톡톡 튀는 문장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정지음 작가의 <젊은 ADHD의 슬픔> 속 '완전무결한 상냥함'에서 답을 찾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외로운 이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인 듯하여 소개한다. 이 문장이 마음에 든다면 정지음 작가의 신작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을 읽어도 좋다. 개인적으로 <젊은 ADHD의 슬픔>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얼렁뚱땅 30년을 낭비하며 깨달은 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것도 차가운 것도 결국 인간이란 거다. 데거나 얼어붙기 싫으면 사람들과의 거리를 너무 좁히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삶에 지친 나는 문득 쓸쓸했고, 나의 비루함과 초라함을 어딘가에 모조리 의탁하고 싶었다. 홀로 서야 할 때마다 완전무결한 상냥함이 절실했다.

온전한 내 편.

그건 절대로 남편 같은 게 아닐 거였다. 또 부모님에겐 나 말고도 두 명의 자식이 더 있었다. 엄마 아빠가 우리 자매에게 공평할수록 완벽한 내 편에서는 멀어졌다. 친구들 역시 다른 친구들이 있고, 남자 친구는 떠나기 위해 잠시 머무는 존재이니 더더욱 무리였다. 고양이가 제일 좋았지만 쌍방향 소통이 불가능했다.

그러면 나는 누구의 사랑과 이해를 받아야 할까? 대체 누가 이다지도 엉망인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 줄까. 심지어 내게 이용되길 원하면서도 무보수에 동의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부족한 나를 발전시키려 들지 않고 오히려 보존하려 애써 주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완전무결의 상냥함이다.

모든 조건은 불가능해 보였지만, 그래도 적합한 사람 하나를 알긴 알았다. 그는 본인의 결심만 선다면 요구받은 것보다 내게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를 최고 등급의 행복으로 적시고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위로와 응원을 퍼부어 줄 수도 있다. 그가 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은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렇게 멋진 사람이 지금껏 나를 외면했던 이유는 내가 그를 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사는 내내 그 애를 배척하고 흠잡아 오지 않았던가?

미안한 마음을 담아, 들어도 들어도 직접 발음하기 어색한 이름을 불러 본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명치에 무언가 차오르는 느낌이 든다. 그건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유대감과 충족감이다.

내가 부른 이는 나다.

결국 나에겐 나만이 유효하고 고유하다. 나는 너무 나답게 아름다워서 모든 타인에게 해석에 대한 실패를 주었다. 최후의 오해들을 아우르는 해답은, 그것들을 아예 풀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오로지 내게만 나를 해명한다. 가끔은 그조차 필요 없다. 우리는 입으로 하는 말을 멈추고 필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내 글은 그 대화의 기록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러분은 이제 미래로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