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이제 미래로 가십시오!

2월 25일, 37년 만에 복직과 퇴직.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며.

by 조이홍

2월 25일은 참으로 역사적인 날이다. 이런저런 설명도 필요 없이 그저 유튜브 영상 하나를 링크해 두고 싶었다. 별로 울 일 없는 요즘 이 영상을 보고 다 큰 어른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내도 아이들도 일찍 잠들어 다행이었다. 지난날을 돌이켜 후회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았다. 제법 잘 살았다고 나 자신을 다독였지만, 그래도 사람인데 어찌 후회하는 일이 없을까. '희망버스'에 함께 하지 못했던 것도 후회되는 일 중 하나였다. 솔직히 정의감에 불타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울컥하는 순간, 말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어떤 신념과 마주치는 순간을 한 번쯤 경험할 터였다. 희망버스가 그랬다. 그 버스에 올라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희망버스는 2010년 10월 20일 '한진중공업 파업' 사태 당시 일반인들이 모여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시위를 벌였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조합원들을 응원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시'에서 몇 차례 소개했던 길거리 시인 송경동 시인이 바로 이 희망버스를 기획했다.


바로 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37년 만에 복직했다. 복직과 함께 정년(명예) 퇴직했지만 그녀는 마침내 길고 혹독했던 자신의 싸움을 끝내게 되었다. 복직 행사에서 아마도 피맺힌 가슴으로 썼을 편지를 그녀가 직접 낭독했다. 37일도 쉽지 않을 싸움을 37년이나 지속했던 그녀의 가슴에는 자신보다 동지들, 하청 노동자들, 그리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을 감내해야 하는 소수자들이 있었다. 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김진숙 위원이 이제 오롯이 자신을 위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번 복직을 통해 노동이 존중받는 성숙한 사회로 한 걸음 내딛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래 링크를 클릭해 영상을 직접 보시길 권합니다.)


“단식을 해도, 애원을 해도 열리지 않던 문이 오늘에야 37년 만에 열렸습니다.
탄압과 분열의 상징인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습니다.
여러분은 미래로 가십시오!"




1981년 대한조선공사(한진중공업 전신, 현 HJ중공업)에 용접공으로 입사한 김진숙 지도위원은 1986년 노동조합 대의원에 당선된 뒤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대공분실에 끌려가 여러 차례 고초를 겪었다. 같은 해 회사는 김 지도위원에게 강제적인 부서 이동을 명령했고, 이에 반발하자 해고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사측의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37년간 법적 소송과 관계기관 중재 등 복직 투쟁을 벌였다.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때는 영도조선소 내 크레인 위에서 309일 동안 고공 농성을 벌이며 노동자를 지원했다. 김 지도위원이 해고된 기간 대한조선공사는 1989년 한진중공업으로, 다시 2021년에는 HJ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김 지도위원은 2020년 만 60세 정년을 넘겼지만 노사 양측이 전격적으로 합의하면서 명예 복직이 성사되었다.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김진숙 씨가 수백 일째 고공농성으로 기네스 기록을 갱신하고 있을 때, 아이디어 많은 박점규가 '고공클럽'을 제안했다. 그간 평지에서 살지 못하고 고공으로 올라간 사람 백명만 엄선해 모아보자는 계획이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때 포클레인에 올라간 나도 당연히 회원일 거라 했는데 그만 탈락하고 말았다. 농성하다 떨어져 병원 신세까지 진 나를 왜 빼느냐고 항의하자, 거긴 5미터밖에 안돼 자칫 '고공클럽'을 희화화할 수 있단다. 제일 높이 오른 이는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으로 130미터. 정히 불만이면 '저공클럽'을 만들란다.


다른 후보의 탈락 사유는 정말이지 너무했다. 그는 부평 GM대우 비정규직으로 한강 다리 난간에 매달려 있다 강으로 뛰어내리기까지 했다. "야, 나는 30미터도 넘는데 왜 빼?" 하자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었다. 거기는 고공이 아닌 '허공', 불만이면 '허공클럽'을 따로 만들라는 말에 모두 깔깔거렸다.


그렇게 피눈물 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지상에선 존재할 수 없었던 아름다운 사람들의 클럽 하나가 만들어졌다. - 송경동 '허공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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