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
한 해 약 7만 명의 청소년이 학교를 그만둔다. 아침 8시에 등교해서 밤 12시까지 야자(야간 자율학습)에 시달려야 했던 세대였지만, 그런 나도 솔직히 요즘 같은 시대에 학교에 잘 적응하며 생활할 자신이 없다. 라떼는 공부만 잘하면 됐는데, 요즘은 공부도 잘해야 한다. 운동도 봉사도 수행평가도 뭐 하나 빠지지 않고 전부 잘해야 하고, 기왕이면 브랜드 아파트 넓은 평수에 살아야 한다. 요즘 아이들 참 안됐다. 초등학교 때부터 일평균 사교육 시간이 많을 경우 네다섯 시간에 달하고, 평균 두 시간은 기본이다. 초등학생이 이 정도니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어떨지 통계를 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상위 1퍼센트에 들 수 있는 학생은 정말 딱 1퍼센트 밖에 안되는데 모두 죽기 살기로 꼭짓점을 향해 질주한다. 내 아이는 반드시 그 1퍼센트가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 확신이 한낱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걸 알아차려도 절대 멈추지 않는다. 그 확신의 언저리에 아이의 행복이, 아이 미래의 행복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끼어들 공간은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OECD' 국가들 중에서 하루 평균 학습 시간이 10시간으로 우리나라가 가장 길다. 자살률 1위 국가라는 불명예와 함께 부끄러운 우리 교육 현실의 민낯이다. 설상가상으로 10대 자살률이 계속 증가하고 있으니 미래보다 당장 아이들이 걱정이다.
참교육시민연대가 전국 남·녀 중고생 1,500명을 대상으로 부모로부터 듣고 싶은 말과 듣기 싫은 말을 조사했다. 대한민국에서 중학생 또는 고등학생으로 살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따뜻하게 안아주어야 이유는 충분한데 부모로부터 듣기 싫은 말까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야 한다면 우리 아이들 심정은 어떨까? 만약 독자분들 중에 아이를 둔 부모가 있다면 얼마나 아이들이 듣고 싶은 말을 자주 하는지, 거꾸로 듣기 싫은 말을 자주 하는지 헤아려 보면 좋겠다.
- 공부는 언제 할 거니?
- 누구네 자식은 잘하는데 넌 왜 그 모양이니!
- 커서 뭐가 되려고 그래?
- 네가 뭘 안다고 말대꾸야!
- 도대체 넌 잘하는 게 뭐니?
- 아휴, 꼴 보기 싫어. 다른 애들 하는 것 좀 봐.
- 그따위로 할 거면 다 집어치워!
- 차라리 나가!
- 그럴 거면 왜 태어났니?
- 너 때문에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
-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었지?
- 오늘도 수고했어!
- 잘했어.
- 괜찮아.
- 사랑해.
- 푹 쉬어.
- 우리 맛있는 거 먹자.
- 엄마(아빠)도 네 나이 때 그런 실수 숱하게 했어.
- 그 정도면 충분해.
- 자, 용돈.
물론 대한민국에서 부모 노릇하기도 힘들다. 있는 거 없는 거 다 내주고 온갖 정성 들여 키워놨더니 아이로부터 '아빠(엄마)가 나한테 해 준 게 뭐 있어?'란 말을 열에 아홉은 듣기 십상이다. 그럼 정말 억장이 무너질 것 같다. (다행히 아이들이 어려서 우리 부부에게는 아직 그런 경험이 없지만) 1번 항목에 있는 것처럼 부모들이 아이가 듣기 싫은 말만 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반대로 2번 항목에 있는 것처럼 아이가 듣고 싶은 말만 하는 경우도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 부모가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1번 항목에 있는 말들은 상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학부모가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2번 항목보다 1번 항목의 말들이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사내아이 둘을 키워 학부모가 되어보니 '사랑해', '괜찮아'와 같은 말들을 현저히 사용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공부 좀 해.'나 '언제 공부하려고?'라는 말들이 더 자주 나왔다. '공부'가 문제였다. '공부보다 중요한 건 네가 원하는 삶을 사는 거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나 역시 공부로 아이를 평가하고 판단했다. 그런 내가 싫었다. 공부가 아닌 아이 그 자체로 바라보리라 마음먹었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아이가 듣기 싫은 말을 참는 것보다 아이가 듣고 싶은 말을 한 번이라도 더 해주려고 노력하는 부모가 되고 있다. 이미 몸에 밴 습관이 금방 바뀌지 않아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도 마음속에 칼을 품고 있는 것보다 부처님(자비의 상징으로서)을 품고 있으니 한결 여유로워졌다. 하긴 이런 기막힌 깨달음(불교에서 말하는 돈오)이 불현듯 찾아왔으니 어쩌면 내게 불심의 DNA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서 10년 동안 교회에 다녔고, 지금보다 더 나이 들면 성당에 다니리라 마음먹었는데, 그러고 보니 나라는 존재야 말로 종교 대통합의 상징이 아닌가 싶다. 내려놓으니 모든 신들이 내게 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참교육시민연대'는 내가 만든 가상의 단체다. (물론 실제로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니 전국 남·녀 중고생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사실 위에 쓴 '부모에게 듣고 싶은 말, 듣기 싫은 말'은 조정래 작가님의 <풀꽃도 꽃이다> 2편에 나와 있는 내용 중 일부를 발췌 및 수정한 것이다. 조정래 작가님이 가출 청소년에 관해 현장 취재한 내용이고 그들에게 들었던 말을 소설에 반영한 것이다. 실제 가출한 많은 청소년들의 원인을 살펴보니 부모로부터 폭력이나 학대를 당한 경우도 있었지만, 듣기 싫은 말을 자주, 반복적으로 들어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 자식인데 내가 보듬어주지 않으면 누가 해 줄 수 있을까? 조금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더라도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오늘 공부하느라 고생했지? 우리 맛있는 거 먹을까?'라고 말해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