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8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3.1절이 올해로 103주년을 맞이한다.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이 공동 서명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대대적인 만세시위운동이 거행되었다. 휴대폰도 SNS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독립을 향한 민족의 굳은 의지는 봄바람을 타고 물결을 타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갔다. 2개월여 동안 백만 명 이상이 만세운동에 동참했고 그 과정에서 4만 7천여 명이 구속되어 옥고를 치렀다. 민족 자결주의에 바탕을 둔 3.1 운동은 성별, 나이, 신분, 지역, 계급을 초월해 우리 민족이 하나로 통합된 역사적 사건이었고, 이를 통해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제헌 헌법에서는 3.1 운동을 대한민국 건국의 기원으로 삼아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천명했다.
우리는 이에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이 선언을 세계 온 나라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크고 바른 도리를 분명히 하며,
이것을 후손들에게 깨우쳐 우리 민족이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는 정당한 권리를
길이 지녀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 기미독립선언서 서두 中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ㆍ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 대한민국 헌법 전문
3.1절은 임시정부 시절부터 국경일로 지정했다. 임시정부에서는 1920년에 3월 1일을 국경일로 지정하여 명칭을 ‘독립선언일’이라 칭하고 ‘대한인이 부활한 성스러운 날’로 공포했다. 이후에도 3월 1일은 광복을 열망하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기념일이자 축제의 날이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미군정 치하에서는 1946년 2월 21일 군정 법률 제2호 ‘경축일 공포에 관한 건’을 공포하여 경축일로 지정했으나, 이는 대한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열사에 다한 감사를 표하는 것으로 의미가 제한되었고, 행정명령 13호 ‘3.1절(독립일) 기념 축하식 거행에 관한 건’을 통해 지정된 장소 이외에는 축하식을 제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공포함으로써 국경일로 지정되었고,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라 공휴일로 지정되어 임시정부로부터의 국경일 전통을 계승하였다. 우리 모두에게 공기처럼 너무 익숙해서 혹시 그 의미를 잊지 않았을까 싶어 어쩌면 괜한 걱정으로 3.1절의 의미를 다시 되짚어 보았다.
3.1절 하루 전날 당황스러운 뉴스 기사를 하나 보았다. 다른 날이면 이렇게 당황스럽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독립 운동가 후손이 3.1절 특정 후보와 현충원 간다"라는 기사였다. 마시고 있던 커피를 내뿜을 정도로 놀랐다. 노안 때문에 잘못 본 게 아닌가 몇 번이나 확인했다. 지난 정권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던 '건국절 법제화' 사건이 머리를 스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건국 68주년을 언급하면서 논란이 시작되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이 왜 난데없이 건국절 법제화 카드를 꺼내 논란을 초래했을까? 이 사건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다시 시계를 거꾸로 돌려 2008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2008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의원들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정부는 8.15 행사 명칭을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및 광복 63주년 경축식’으로 바꾸려 시도했다. 건국절 주장은 뉴라이트 역사관에 기초한다. 건국절 주장이 최초로 제기된 2008년은 뉴라이트 교과서가 출간된 해이기도 하다. 뉴라이트 교과서는 일제강점기가 근대화의 바탕이 됐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따른다. 뉴라이트 역사관에 따르면 일제에 부역했던 친일 세력들은 ‘민족 반역자’에서 ‘건국 세력’으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건국적 논란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특강-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참고)
“뉴라이트들이 정말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들 입장에서 다시 쓰려고 하는 겁니다. 그들 입장에서 건국절을 만들려고 그럽니다. 그동안 광복절 잘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왜 건국절이 나올까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역지사지해보면 됩니다. 여러분이 친일파 입장에서 보세요. 어떤 날을 기억하고 싶을까요? 1945년 8월 15일은 친일파한테 무슨 날입니까. 제삿날입니다. 사실 집단으로 제삿날이 될 뻔한 날이죠. 반면에 1948년 8월 15일은 친일파한테 어떤 날입니까? 서광이 비친 날입니다. 살 수 있다, 드디어 살았다. 여러분 같으면 어떤 날을 기억하고 싶으시겠습니까? 1945년 8월 15일의 광복을 이야기하면 당연히 순국선열이 떠오르고, 순국선열이 떠오르면 그 반대편에 친일파가 떠오르는 구도 아닙니까? 건국절부터 시작하게 되면 이전의 행적이 어땠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죠. 전에는 친일파로 통했지만 이제 반공투사가 되는 겁니다. 왜? 독립운동가들 중 상당수가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였으니까요. 이 사회주의자를 잡는 기술자, 전문가가 최고의 반공투사, 최고의 애국자가 되는 거죠. 그래서 이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역사를 새로 쓰는 겁니다. 건국절을 자꾸 들이미는 이유가 바로 그런 맥락입니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숨 쉬는 일만큼이나 자연스럽다. 함께 현충원 참배도 드릴 수 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국민에게 주어진 신성한 한 표를 포기하는 것보다 지지하는 후보에게 행사하는 일이 천 배는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누구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말은 삼가면 좋겠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뉴라이트 역사관을 가졌던 정당과 뜻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게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이해되지 않는다. 풍찬노숙(風餐露宿)도 마다하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한 목숨 기꺼이 바친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누가 될까 두렵다. 대한민국은 그분들에게 큰 빚을 졌고 그 후손들에게 최고의 예우를 해주어야 했다. 역대 정부 중 누가 그 일을 가장 잘했을까? 역사에서 잊힌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명예를 회복하고 경제적 지원을 한 정부는 누구인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후손에게 장학금을 지급한 정부는 누구인가? 타국에서 잠든 애국지사의 유해를 봉환해 편히 모신 정부는 누구인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역사에서 소환해 바로 알린 정부는 누구인가? 모든 걸 다 차지하고서라도 만약 독립운동가들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당신들의 후손들이 행한 일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실까? 정말 잘했다고 등을 토닥거려주실까? 단재 신채호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자꾸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내일은 103주년 3.1절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태극기를 게양해야겠다. 이 땅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모든 분들을 추모하고 기념하기 위해서.
(이미지 출처 : 행정안전부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