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5월 14일, 무엇이 당신의 영혼을 노래하게 하는가?

by 조이홍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백년전쟁'. 편의상 영국과 프랑스 간의 전쟁이라고 일컫지만, 아직 근대국가 개념이 생겨나기 이전이기에 실제로는 잉글랜드 왕국인 '플랜태저넷 家'와 프랑스 왕국인 '발루아 家' 사이에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를 놓고 1337년부터 1453년까지 약 116년 동안 일어난 전쟁을 말한다. 때는 바야흐로 1328년(우리나라는 고려 충숙왕 15년, 성정이 급한 정승 윤석을 순군옥에 가두어 장형을 가했다), 프랑스 카페 왕조의 샤를 4세가 후계자(딸이 태어났지만 왕의 유언에 따라) 없이 사망하고 4촌인 필리프 6세가 왕위에 오른다. 이에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는 그의 어머니가 샤를 4세의 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자신이 프랑스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해 두 왕국이 심각하게 대립하게 된다. 그러나 속내는 당시 유럽 최대 모직물 산업지대로 번창하고 있던 플랑드르 지방과 유럽 최대 포도주 생산지였던 가스코뉴 지방을 차지하기 위한 이권 전쟁이었다.


백년전쟁에 대해 잘 몰라도 백년전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잔 다르크'이다. 17세의 평범한 시골소녀가 하느님의 부름을 받았다며 혜성처럼 등장해 프랑스 왕국의 총사령관에 오르더니 반년 넘게 지속되던 오를레앙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파테 전투에서 영국 최고의 명장을 포로로 잡는 등 프랑스가 백년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정작 그녀는 포로로 잡혀 종교 재판을 받고 화형에 처해진다.)


그리고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나만 모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Noblesse oblige(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이 백년전쟁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전해진다). 백년전쟁 초기 단계에서 먼저 승기를 잡은 건 잉글랜드 왕국이었다. 농민과 사냥꾼으로 구성된 잉글랜드 군이 절대적으로 우세해 보이던 프랑스 기사단을 격파하는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장궁(긴 화살)을 사용한 덕분이었다. 크레시 전투를 승리로 이끈 잉글랜드 군은 기세를 몰아 도버해협에 면한 항만도시 '칼레'를 포위한다. 칼레의 시민들은 잉글랜드 군의 거센 공격을 천신만고 끝에 막아내지만, 보급로가 차단되고 원병도 기대할 수 없어 결국 항복하기에 이른다.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의 군대를 끈질기게 괴롭힌 칼레의 시민을 그냥 둘 수만은 없어 모든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대신 대표 6명을 처형하기로 한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칼레 시민들은 혼란에 빠졌고 누가 처형당해야 하는지 설왕설래했다. 그러자 칼레에서 가장 부유한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자진해서 처형당하겠다고 나섰고, 이어 시장, 법률가 등 귀족들이 동참했다. 때마침 잉글랜드 왕비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고, 왕비는 기쁜 소식을 에드워드 3세에게 전하며 죽음을 자처했던 여섯 명의 칼레 시면을 살려달라고 간청한다(다행히 그들은 처형을 면한다).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이렇게 태어났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다).


6·25 전쟁 당시 미군 참전 용사 중 142명이 장성 출신의 아들이라거나 영국 왕실과 왕실에 속한 귀족 자녀들의 군 복무 이행 등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 사례로 종종 미디어에 소개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 경주 최부잣집의 대를 이은 선행과 12대 최준 선생의 독립운동 활동자금 지원, 기근에 시달리는 제주민을 위해 전 재산을 기부한 거상 김만덕,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선생 등(이외에도 많지만)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례로 꼽힌다. 이에 반해 '노블레스 말레드(Noblesse Malade)' 라는 말도 있다. 소위 사회 지도층이나 기득권 세력이 권력에 기대 부정부패를 일으키거나 (불법은 아니지만) 공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권력이나 부를 대물림 하는 것을 말한다.


가급적 뉴스를 보지 않으려 노력한다. 쉽지만은 않다.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나오면 다른 채널로 돌리면 그만이지만 스마트폰은 불시에 원하지도 않는 기삿거리를 '한 줄'로 요약해 보여준다.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하려고 해도 주인 마음을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손가락이 어느새 알람을 터치한다. 의지와 상관없이 눈이 텍스트를 읽고 의지와 상관없이 전두엽에서 열불이 난다. 소위 사회지도층이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해 짬짜미를 한다. 정파나 이념을 초월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무너뜨릴 수 없는 성벽을 쌓았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어느 노교수의 말처럼 공동체를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 구성원 모두가 준수해야 하는 최소한의 도덕, '시투아앵 오블리주(Citoyen oblige)'조차 이행하지 않는 그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일까?


"당신의 행복은 무엇이 당신의 영혼을 노래하게 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미국 배우이자 작가 낸시 설리반)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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