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란 결국 공기 포함이다

5월 22일, 고향의 맛, 고향의 멋

by 조이홍

음식에 관해서라면 나는 매우 관대한 편에 속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뭐 이 정도면 까탈스러운 편은 아니지 싶다, 편의점 도시락도 분식집 김밥과 라면도 1인분에 30만 원 넘는 최고급 일식집 요리도 '이거 괜찮네!' 하며 즐겁게 먹는다. 이런 내가 속한 세상에는 단 두 부류의 음식만 존재한다. '맛있는 음식과 더 맛있는 음식.' 땅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믿는 농부가 뙤약볕에서 뻘뻘 땀 흘려가며 재배한 재료들과, 일렁이는 파도 위가 대지보다 편한 어부가 사나운 바다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포획한 식재료들이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손맛과 며느리에게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비기(秘記)를 만나 재탄생한 신화적인 존재가 바로 음식(飮食)일진대 어떻게 이를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도전정신과 실험정신이 투철한 아내 덕분에 신혼초부터 아방가르드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음식(음식의 사전적 정의가 사람이 먹고 마실 수 있도록 만든 모든 것이라면 어떤 날은 음식이 아닌 적도…. 이 대목은 검열되어 곧 삭제될지도 모릅니다.)으로 수없이 미각을 단련한 덕분에 맛없는 음식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직장생활 20년 중에 16년을 테헤란로와 강남대로가 교차하는 동방불패보다 강한 강남에서 보냈다.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라는 말이 있듯이, 강남에는 '맛있는 음식은 죄다 강남에 모인다'라는 전설 따라 삼천리에나 나올 법한 민담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평양냉면을 가장 잘하는 음식점도, 동인동 갈비찜을 제일 맛깔스럽게 내놓는 음식점도, 제주 은갈치 구이와 옥돔 구이가 가장 맛있는 음식점도, 돼지국밥과 의정부 부대찌개가 가장 맛있는 집도 전부 강남에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 직장인 대부분이 '오늘 점심에 뭐 먹지? 하고 고민한다). Lunch Meeting이 잡혀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거나, 밥맛 없는 상사 때문에 한 끼쯤 거를 때를 제외하면 '점심시간' 10분 전에는 항상 행복한 상상에 빠진다. 월요일은 순댓국, 화요일은 백반, 수요일은 냉면, 목요일은 잡채밥(또는 잡탕밥), 금요일은 'Thanks God it's Friday'이므로 그날그날 당기는 음식으로 점심 리스트를 완성한다. 다음 주에는 또 다른 신세계가 펼쳐진다. 직업 특성상 회식과 야근 식대에 관대했기에 그런 날에는 조선시대 임금님이 부럽지 않았다. 온갖 산해진미가 넘쳐나는 곳, 1년 365일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에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음식에 관대해도 강남에서 절대 먹지 않는 음식이 있다. 바로 고향을 대표하는 향토음식 막국수와 닭갈비이다. 향수에 젖어 몇 군데 (나름 유명한) 음식점을 찾아가 먹어봤지만 원하던 맛, 어려서부터 즐겨 먹던 맛이 아니었다. 실망스러운 경험이 계속되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사실 강남뿐만 아니라 춘천(넓게는 강원도)을 벗어나면 제 맛을 내는 막국수와 닭갈비를 만나고야 말겠다는 욕심을 버리게 된다. 그나마 닭갈비는 가끔 부모님과 누나들이 택배로 보내주지만, 즉석에서 면을 뽑아 비법 양념에 시원한 육수를 부어먹는 막국수는 택배조차 어려워 언젠가는 심한 향수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도대체 왜 막국수를 제대로 만드는 음식점이 주변에 하나도 없을까 개탄하면서….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이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나 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음식이란 결국 공기 포함인 것 같다."라고 그의 책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에 쓴 걸 보았을 때 격하게 공감했다. 어떻게 하루키가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을까 내심 당황하면서도 기뻤다. 그는 파스타를 예로 들어 이탈리아 국경을 넘기만 하면 파스타가 갑자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맛 없어진다고 안타까워하며 음식에는 그 지역의 공기도 포함되는 것 같다고 호기롭게 말했다(하루키의 용기에 박수를). 그렇다, 분명 좋은 재료와 비법 양념, 깊은 손맛이 음식의 전부는 아닐 터였다. 공기, 날씨, 물, 온도, 기분(고향이라는 정서가 주는 아늑함 같은) 등이 한데 음식에 버무려져 특유의 맛을 내는 게 분명했다. 이런 이유에서 다른 지역 향토음식은 강남에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고향 음식만은 온전히 그 맛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진짜 막국수를 먹고 싶으면, 제대로 된 닭갈비를 먹고 싶다면 고향으로 오라고. 그게 '고향의 맛, 그리고 고향의 멋'이라고.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용감하지 않으므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입맛에 근거해 쓰인 글이다. 맛 칼럼니스트의 전문성도, 미식가의 객관성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춘천(강원도) 지역 이외의 막국수와 닭갈비가 맛없다는 게 절대 아니다. 그저 내 입맛(취향)과 다를 뿐. 맛에 대해 전문성도 없는 인간이 왜 이런 글을 썼냐고 묻는다면 궁색한 변명밖에 내놓을 말이 없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대답했다는 어린 장금이의 '우문현답'을 슬쩍 들이미는 수밖에.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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