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 부부 사이에 있어야 할 한 가지!
노안(老眼)과 정상 시력의 경계에서 위태로운 칼춤을 추는 남편에게 어느 날 아내가 도서관에서 '큰 글자책'을 빌려다 주었다. 아내에게 대신 책을 빌려다 달라고 왕왕 부탁하긴 했지만, 큰 글자책으로 빌려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 이거 뭐지?' 아내가 책을 내민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수정체가 노화된 구 남친, 현 남편을 위한 아내의 세심한 배려가 눈물 나게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뒷방 노인네 취급당하는 것 같아 서운한 감정이 봄비처럼 촉촉하게 가슴을 적셨다. 꼭 읽고 싶은 책이었는데 반납 기한이 다가올 때까지 한참을 바라만 볼뿐 손이 가지 않았다. 당장 평범한 책, 가끔 필요 이상으로 글자가 작은 책도 컨디션이 좋을 때면 무난하게 읽었는데 굳이 큰 글자책을 빌려다 준 아내의 행동에 아연했다. 반납일을 사흘 남기고 결국 책을 손에 쥐었다. 아내에게는 섭섭한 감정을 1도 표현하지 못하면서 읽고 싶은 책을 곁에 두고 뭐 마려운 강아지 마냥 끙끙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책 내용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책 내용도 정말 좋았지만). 책 읽는 내내 두 눈이 그렇게 편안할 수 없었다. 글자 하나하나가 수정체로 돌진해 그대로 콕 박혔다. 단어들이 너무 명징해 마치 눈앞에 푸른 바다 위를 가르는 날치 떼들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하나의 사물을 나타내는 데는 하나의 단어밖에 적합한 게 없다'라고 주장한 프랑스 작가 플로베르의 말은 '단어의 쓰임'이 아니라 큰 글자로 쓰라는 말인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엉뚱한 상상이 확신에 찰 정도였다. '아! 역시 아내의 도량에 닿으려면 나는 아직 한참 멀었구나' 싶었다. '큰 글자책 대혼돈'이 벌어진 줄도 모르는 아내의 튼튼한 종아리(요즘 한창 축구에 시달리는)를 정성스레 주물러 주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후유증이 았었다. 큰 글자책을 맛본 간사한 수정체가 작은 글자책(사실은 보통 크기의 글자책이지만)을 자꾸만 밀어냈다. '어! 안 보이는데? 지난번처럼 큰 글자책을 갖다 바치라고!' 하는 통에 며칠간 책 근처는 얼씬거리지도 못한 것이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잘 보이던 글씨들이 분신술을 부리는 듯 여러 글자로 겹쳐 보였다. 문득 옛 성현의 말씀이 떠올랐다. "생선회는 흰 살 생선회부터 붉은 살 생선회 순으로 음미하고, 책은 작은 글자책부터 큰 글자책 순으로 독서해야 도(道)를 벗어나지 않는다"라는 삶의 정수가 담긴 그 말이 가슴에 깊게 새겨졌다. 오늘도 일상에서 옛사람의 지혜를 배웠다.
아내에게 빌려와 달라고 부탁한 책은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죽음을 직면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면, 영원히 살 것처럼 굴기를 멈출 것이다. 소소한 근심에 인생을 소진하는 것은, 행성이 충돌하는데 안전벨트를 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는 작가의 말이 무척 가슴에 와닿았다. 책은 지혜로운 이들의 생각을 합법적으로 훔칠 수 있는 참 좋은 도구다. 오늘도 책에서 지혜로운 이들의 생각을 엿봤다.
요즘 제19대 대통령에서 '깨어 있는 시민'으로 되돌아간 문재인 전 대통령의 <문재인의 위로>를 읽으며 위로받고 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밑줄까지 쳐가며 열심히 읽고 있는데 그중 '부부 사이에 있어야 할 한 가지'를 소개해 볼까 한다. 아마도 문 전 대통령은 이 글을 통해 대한민국의 수많은 남편을 등 돌리게 했을 터였다. 역시 소신! 그러나 나는 손을 번쩍 들어 말하고 싶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라고.
부부 사이에는 신뢰도 있어야 하고,
배려도 있어야 하고,
책임도 있어야 하고,
존경도 있어야 하고,
사랑도 있어야 합니다.
그중 맨 앞에 있어야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보다 한 뼘 앞에 성실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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