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라면을 끓였다' 리라이팅
"작가님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쌓인 글은 책으로 탄생하기도 합니다.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세요." 당근과 채찍을 교묘하게 반반씩 뒤섞은 경고장이 브런치에서 날아와 심장을 관통했다. 살짝 기분 나쁘면서도 뭔가 써야지 싶었다. 가장 최근에 올린 글의 날짜를 확인해 보니 좀 오래되긴 했다. 올해 목표가 '1일 1 글'이었는데 3월을 넘어가면서부터 조금씩 흔들리더니 5월부터는 흐지부지되었다. 6월에는 뭐…. 엉망진창 그 자체고.
5월부터 '지구 연대기'라는 픽스 업(fix-up) 소설을 쓰고 있다. 장편 소설처럼 보일 것을 목적으로 비슷한 소재의 단편들을 모아 만든 특이한 형식의 소설이다. 레이 브래드베리의 <화성 연대기>를 모티프 삼았다. 물론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마다 벌써 몇 번이나 읽은 <화성 연대기>를 다시 꺼내 읽었다. 그럼 언제나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쓸까'와 '나는 이런 글은 죽었다 깨도 못 쓰겠구나' 하는 기분이 경쟁하듯 '쓰고자 하는 의욕'을 뭉개버렸다. 휴…. 그토록 공들이던 브런치에 쏟아낼 창작의 열정은 까만 재로 변해 버렸다.
브런치팀의 경고장도 받았으니 뭐 하나라도 써야지 싶은데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럴 때 '작가의 서랍'에 언제라도 발행할 수 있는 멋진 글 서너 개쯤 보관해 두면 좋을 텐데, 그런 부지런함도 명민함도 없었다. 그 순간 '푸드 에세이' 낙선작이 떠올랐다. 예전 브런치에 올렸던 글을 리라이팅 해 두었더랬다. 이미 몇몇 독자분들께는 익숙할 터이니 다시 읽을 필요는 없다. 가끔 겨울방학 일기 쓰기 숙제처럼 때를 넘기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브런치가 오늘은 내게 그랬다. (이렇게 쓰고 나니 엄청 시니컬하군.)
<이미지 출처 : Pixabay>
모처럼 이른 저녁을 먹고 아이들 숙제 참견에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공모전에 제출할 소설을 마무리하느라 칼로리 소모가 만만치 않았다. 밤 10시를 알리는 괘종시계에 맞춰 배꼽시계도 눈치 없이 울어댔다. 황홀한 자태의 치맥이 유혹했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겼다. 왠지 글발 받는 날, 한 자라도 더 써야지 싶어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그렇다고 몸이 외치는 절규를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그래, 이 시간에는 라면이 진리지!’
"아빠 라면 먹을 건데 같이 먹을 사람?"
매혹적인 인공 조미료의 바다를 함께 항해할 동료를 구했지만, 웬일인지 나서는 용자(勇者)가 없다. 배신자들! 1년 내내 다이어트와 불편한 동거를 하는 전문 다이어터 아내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사탄아, 물러가라!"
아내가 손가락 십자가를 만들어 눈앞에 들이댔다. 굶주린 어린양이 사탄이 되었다. 억울했다. 야식을 먹지 않는 자만이 나에게 돌을 던지라 나지막이 외쳤다!
어차피 '승자는 혼자다‘ 독하게 마음먹고 주방에 홀로 섰다. 라면 하나 끓일만한 작은 냄비에 수돗물을 받았다. 라면에 정수기 물은 사용하지 않는다. 정수기 물은 인공 조미료 맛을 반감시킨다는 지난 35년간의 경험을 믿었다. 라면 봉지에 적힌 적당한 물의 양(500mL)은 계량컵 없이도 적확하게 가늠했다. 라면 끓이기는 습관을 넘어 삶의 일부가 되었으니. 건강을 위해 물은 450mL만 사용했다. 당연히 수프도 덜 넣었다. 물론 라면 맛에서 미세한 변화도 느낄 수 없었다. 오랜 세월 라면과 함께 울고 웃었던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경지라고나 할까. 세상에서 가장 값싸지만,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행복을 오래도록 즐기기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이었다.
한동안 화제였던 '라면 끓일 때 면을 언제 넣는가?'는 어느새 해묵은 논쟁이 되었지만, 면발의 쫄깃함이 라면의 생명이라 믿기에 물, 면, 수프를 한꺼번에 넣고 끓이는 조리법이 마음에 들었다. 라면은 태생부터 '깊이'를 따지는 음식은 아니었다. 자극적이고 인공적인, 몸에 좋지 않으므로 입이 좋아하는 맛이면 충분했다. 물, 면, 수프를 동시에 넣고 끓이는 방법은 쫄깃한 면발과 함께 잔뜩 치장한 화려한 맛을 극대화하는 최상의 조리법이었다. 게다가 현명한 우리네 어머니들은 라면이 몸에 좋도록 기발한 방법을 고안해 내지 않았던가! 맞다, 달걀이다.
달걀이 들어가지 않은 라면은 팥 없는 팥빙수요, 아이언맨 없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다. 라면과 달걀의 조합, 겉으로 보면 하나에 하나를 얹는 단순한 덧셈 같지만, 둘의 만남으로 전혀 새로운 세상이 탄생했다. 라면이 인스턴트식품을 넘어 국민 음식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동인(動因)이었다. 나는 라면 국물과 달걀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르는 조리법을 좋아했다. 펄펄 끓는 라면에 달걀을 넣자마자 빛의 속도로 저어주면 완성이다. 면을 먹기 전에 국물부터 맛보면 ‘그래, 이 맛이야!’라는 말이 가슴 깊은 곳에서 저절로 우러나온다. 매사에 잘 맞는 짝꿍인 아내와 나도 달걀을 둘러싼 논쟁에서만큼은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아내는 닭이 알을 품듯이, 면이 달걀을 포근히 감싸는 조리법을 선호했다. 달걀이 국물과 섞이면 수프 본연의 깔끔한 맛을 잃는다고 주장했다. 그럴 거면 도대체 왜 라면에 달걀을 넣는지 따져 물었다. 아내는 수란에 빗대어 설명하며 남편의 무지몽매를 일깨우려 했다. 면 속에 꼭꼭 숨은 달걀은 노른자 형태를 그대로 간직했다. 손대면 톡 하고 터질 듯한 보름달 같은 노른자를 라면 국물과 함께 숟가락으로 퍼먹으면 그렇게 황홀할 수 없단다. 아내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지만, 취향은 존중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듯한 팽팽한 대립도 라면이기에 타협점을 찾았다. 내가 끓이면 내 조리법대로, 아내가 끓이면 아내 조리법대로!
라면이 끓는 사이 준비할 게 하나 더 있다. 김치다. 배추김치도 좋지만, 파김치나 부추김치와 함께 먹으면 라면의 품격도 한 단계 올라간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주인공은 언제나 라면이어야 한다. 김치는 그저 거들뿐!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났다.
식탁에 앉아 꼬들꼬들한 면발을 호로록 흡입하려던 찰나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조금 전까지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던 아내가 소리 없이 다가와 곁에 앉았다.
"와, 맛있겠다. 한 입만!"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또르륵 흘러내렸다. 이 한 입이, 한 입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지난 세월이 무수히 증명했다.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었다.
"다이어트 안 해?"
정곡을 찔러도 소용없었다. 라면 한 입 정도는 살로 가지 않고 소화 중에 사라진다고 믿는 아내였다. 한 입으로 끝내지도 않을 거면서…. 어느새 무기(젓가락)를 챙겨 전장에 참여한 아내는 공들여 끓인 라면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 ‘라면 왜 이렇게 맛있어!’라고 말하는 순간 끝장이다. 라면 절반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추스르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라면 먹을 거냐고 물어봤잖아요!"
아내는 세상 귀여운 얼굴로 대답했다.
"한 입만 먹으려고 했지. 라면은 딱 하나만 끓일 때 제일 맛있잖아."
명언을 남기고 홀연히 떠난 자리에 주인 잃은 젓가락만이 패잔병처럼 애처로웠다.
이쯤 되면 비장의 무기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정량은 군대에만 있는 게 아니다. 라면도 오롯이 하나가 정량이다. 반쪽은 차라리 먹지 않은 것만 못했다. 재빨리 냉장고로 달려가 찬밥을 찾았다. 다행히 저녁때 먹고 남은 밥을 소분해서 담아두었다. 얼른 하나 꺼내 전자레인지에 1분간 돌렸다. 적당히 데워진 밥을 미지근한 라면 국물에 말았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또 다른 맛의 세계를 경험하는 순간이다. 이미 저녁을 먹었지만, 야식은 이렇게 정당성을 확보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아이들이 식탁으로 몰려왔다. 벌써 다 먹었냐며 나라 잃은 표정을 지었다. 아빠가 한 입 줄 줄 알았다나? 어림도 없다! 그래도 안다, 그 마음.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삼키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라면 한 그릇 할래? 라면은 살 안 찐다. 살은 너희가 찌지!"
아이들 삐죽 내민 입을 뒤로하고 다시 냄비에 수돗물을 받았다. 원하는 라면이 달라 1인분 냄비에 각각 따로 받았다. 이럴 거면 차라리 치맥을 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콧노래를 부르며 늦은 밤 라면을 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