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사망
"두 발의 총성, 극우의 심장이 멈추다" 2022년 7월 8일, 서울경제신문 기사 제목이다.
8일 오전 일본 나라현 나라시 역 근처에서 유세 연설을 하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총기 테러에 의해 쓰러졌다.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해 아베 전 총리를 병원으로 긴급 이송했지만 심폐 정지 상태에 빠졌고, 오후 6시를 조금 넘겨 긴급 속보로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 최장수 총리이자 일본 우익 정치 세력을 대표하는 그가 사망하자 일본 열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속보를 접한 순간 나도 스마트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애도를 표하는 바이지만, 이번 피격 사건이 향후 일본 정국에 미칠 영향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이는 우리나라(와 세계 정세)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10일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우익 세력이 결집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아베 전 총리는 일본 평화헌법의 자위대 명기를 일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침략 역사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진정한 반성 없는 나라가 막강한 군사력을 갖게 되는 걸 원하는 지각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국민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도 말이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외할아버지는 '기시 노부스케'다. 그는 진주만을 습격해 태평양 전쟁을 발발시킨 A급 전범 도조 히데키(총리) 내각에서 상공 대신을 지냈으며 패전과 함께 A급 전범 용의자로 복역했으나 1948년 석방되었다. 일본 민주당을 결성한 후 자유당과 합당해 자유민주당의 간사장이 되었고 총리직에 올랐다. 평화 헌법을 '자주헌법'으로 개정해 일본을 재무장시키는 것이 기시 노부스케의 정치적 이상이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외손자인 아베 신조 전 총리에게 전해졌다. 아베 전 총리는 집권 2기에 일본을 전범국가에서 보통국가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공을 들였다. 2014년 7월 헌법 해석을 각의에서 변경해 일정한 조건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했고, 2015년 9월에는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집단 자위권 행사를 법적으로 뒷받침할 안보 관련 11개 법률의 제·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평화헌법 9조 개정은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던 공명당의 반대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아베 전 총리에게 외할아버지만큼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 있다. 19세기 중반 막부 시대 말기에 있었던 존황양이(尊皇攘夷) 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요시다 쇼인'이다. 요시다 쇼인은 에도 막부 말(1830년)에 태어났다. 스스로 하급 무사 계급이었던 그는 병법과 학문을 가르치는 사설 교육기관인 '쇼카손주쿠(松下村塾)'를 숙부로부터 인수해 막부에 불만을 품은 하급 무사를 비롯해 신분을 가리지 않고 많은 젊은이를 교육시켰다. 그가 주장한 '일군만민론(一君萬民論)'은 '천하는 천황이 지배하고, 그 아래 만민이 평등하다'는 뜻이다. 서구 열강 세력이 일본에 접근해 오자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외세를 막아내자는 존왕양이 사상을 강조했고 많은 이들이 그를 따랐다. 요시다 쇼인의 사상을 철저하게 따랐던 제자들이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 되었고, 우리에게 익숙한 '이토 히로부미' 역시 그의 제자이다. 1858년 에도 막부 다이묘(영주) 암살 음모에 연루되어 이듬해 사형된다. 이른 나이에 죽었지만 그의 사상과 정치적 자산은 오늘날까지도 일본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요시다 쇼인의 존왕양이 사상이 정치적으로 '정한론(征韓論)'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정한론은 일본이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에도 막부 말기에 쌓였던 여러 가지 내부 문제를 해결하고 서구 열강에 대적할만한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조선을 침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처음에는 '정조론(征朝論)'으로 불렸다가 요시다 쇼인 등에 의해 '정한론'으로 명칭이 바뀌게 되는데 이는 고대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삼한정벌설(三韓征伐說)'에서 비롯되었다. 즉 정한론은 원래 일본 땅이었던 한반도를 되찾는다는 말도 안 되는 속내가 담겨 있는 것이다. 또한 요시다 쇼인은 야스쿠니 신사에 처음으로 봉안된 인물이기도 하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이 봉안되어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사상을 발전시킨, 일본 제국주의의 사상적 밑거름이 된 인물이 잠들어 있는 곳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다. 일본의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걸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될 이유이다. 게다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목적은 '추도'가 아니라 천황을 위한 죽음에 대한 '현창(顯彰)'이다. 언제라도 기회가 온다면 기꺼이 국가와 천황을 위해 죽을 수 있다는 신념을 의미한다.
일본 보수우익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요시다 쇼인 이외에 조슈 출신 정치가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이영채, 한홍구 공저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에서 참고했다.
요시다 쇼인의 사상을 충실히 계승한 다카스기 신사쿠는 에도막부에 대항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시노모세키전쟁을 치른 인물이다. 아베가 존경한다고 밝힌 인물이기도 하다. 기도 다카요시는 메이지유신 당시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힌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설계했던 이노우에 가오루 역시 이곳 출신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정권을 잡고 일본 근대화를 이끈 이토 히로부미, 러일전쟁 영웅인 노기 마레스케, 일본 수상을 지낸 가쓰라 다로, 초대 조선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 2대 조선 총독을 지낸 하세가와 요시미치, 일본 군대의 기초를 닦아 야스쿠니에 동상이 세워진 오무라 마스지로, 일본 육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이 모두 조슈번 출신이다. 요시다 쇼인의 이론을 담금질한 정치 아카데미이자 메이지 유신 실천의 주역을 배태한 혁명의 근거지였던 '쇼카손주쿠'는 2015년 7월 아베 내각 아래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해마다 200만 명 넘는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태평양 전쟁 A급 전범 14명을 비롯해 약 2백4십7만 명이 합사되어 있다. 전장에서 싸웠던 군인뿐만 아니라 후방에서 전쟁 수행을 지원했던 여성, 어린이, 노동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유해나 위패는 없고 오직 합사자 명부만 있단다. 전쟁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이름도 약 2만여 명 이상 포함되어 있다. '신사'란 일본 왕실의 조상이나 일본 고유의 신, 죽은 사람을 모신 사당을 말한다. 일본의 신도(神導)란 종교적으로 불교 및 유교가 도교와 합쳐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사물에는 신이 있다고 믿는데, 신화에 나오는 신(일본 황실 조상인 아마데라스오미카미)을 모시거나 죽은 인간 또는 신이라 여기는 사물을 모시기도 한다. 야스쿠니 경우에는 국가(더 정확히는 천황)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혼을 모아 신으로 모셨다는 특징이 있다. '야스쿠니(靖國)'라는 말은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나라를 태평하게 다스린다'는 뜻이다. 역설적이게도 이웃 국가와 늘 외교 분쟁을 일으키는 주범의 이름 치고는 너무 평화롭다.
야스쿠니라는 이름은 1879년 메이지 천황이 붙여주었다. 메이지 유신과 야스쿠니의 깊은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1853년, 미국의 페리 함대가 일본에 무력으로 개항을 요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막부 정권은 이에 굴복해 미일화친조약을 맺게 되고, 이때 서구 문명의 힘을 깨달은 일부 세력은 막부의 무능함을 비판하고 전쟁을 일으킨다. 이것이 일본 내전인 보신 전쟁이다. 전쟁은 반막부 세력의 승리로 끝나고 1868년 메이지 천황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체제가 등장한다. 이때 막부 세력은 붕괴되지 않고 천황 체제 속으로 편입되는데, 이러한 까닭에 메이지 혁명이 아닌 메이지 유신으로 불리게 된다. 천황은 자신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사무라이들을 추도하고 싶었고 이를 위해 야스쿠니 신사가 탄생했다. 천황은 봄과 가을, 일 년에 두 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그런데 야스쿠니 신사를 조슈 신사(長州神社)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쿄에 있는 신사에 왜 조슈라는 지역명이 붙었을까? 조슈 지역이 바로 반막부 세력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천황의 명에 의해 조슈에서 추모 행사가 시작되었고 이후 도쿄로 옮겨져 야스쿠니 신사가 된 셈이다. 조슈번(현 야마구치현)은 일본 우익 사상의 핵심지역으로, 현대 일본의 정치·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조슈벌의 사상적 아버지인 '요시다 쇼인'의 고향이다.
역설적이게도 일본 천황은 1978년 이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는다. 1978년은 도쿄재판에서 사형을 받은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되어 있다는 게 발표된 해이다.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자들을 신으로 모신 야스쿠니 신사에 천황이 가지 않는 기묘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것이 현재 일본 정국에서 야스쿠니 신사가 처해져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치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이곳을 참배한다. 아베 전 총리가 집권 기간 내내 일본 평화 헌법 개정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숨은 의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일본 우익 정치를 대표하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테러에 의해 사망했다. 내우외환이 많은 요즘, 이번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