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강화>를 읽고 문장을 쓰지 못했다

7월 9일, 이태준의 수필론을 읽고

by 조이홍

글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봤을 '글 쓰기 교본' 이태준의 <문장 강화>가 집에 두 권이나 있다. 한 동안 글 쓰기 관련 책을 열심히 사모았더랬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작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읽을 순간이 찾아올 거야 다짐하면서. 게으른 천성 탓일 터이지만, 아무튼 미래를 준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사 모았더니 대략 스무 권 남짓 되었다. 그러다 보니 <문장 강화>처럼 두 권을 들여놓는 가벼운 실수도 있었다.


<문장 강화>는 1939년 2월 이태준이 주관하던 '문장'지 창간호부터 연재되다가 9회로 그치고, 이듬해 문장사에서 단행본으로 출판한 책이다. 반백 년이 흐른 1998년 신판(개정판은 2005년)이 나왔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나?'라는 주제로 '좋은 글'이란 이런 것이다 보여주는 글 쓰기 실전 책이다. 문장이나 문체도 '유행'이 있을 텐데, 80년 가까이 된 책이 여전히 글 쓰는 사람들에게 읽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소개된 예문들이 너무 옛날 작품들이라 잘 와닿지 않는다고 느꼈기에 궁금증은 더욱 컸다. 어쩌면 문장력(?)을 쌓아주는 실용적 목적에 비추어 아직 이만한 책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지도 모르겠다. 몇 번의 시도에도 아직 이 책을 절반도 읽지 못했으니 나는 아직 글 쓰기 소양이 턱없이 부족한가 보다. 아니면 자세가 불량한 지도….


<문장 강화>에 수필을 설명하는 문장이 나온다. 그 문장을 읽으며 가장 쓰기 쉬우면서도 가장 쓰기 어려운 것이 수필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저자의 수필론을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가슴 한 구석이 따끔따끔하다. <문장 강화>를 읽었는데 글 쓰기가 더 어려워졌다. OMG! OTL!


수필이란 하고 싶은 대로 자기를 표현하는 글이다. 논조를 밝히고 형식을 차릴 것도 없이 그냥 쓰고 싶어서 쓰는 글로, 한 감상, 한 소회, 한 의견이 문득 솟아오를 때, 설명으로든 묘사로든, 가장 솔직하게 표현하는 글이다. (중략) 글쓴이의 됨됨이가 첫마디부터 드러나는 글이 수필이다. 그 사람의 자연관, 인생관, 습성, 취미, 지식, 이상 이런 모든 '그 사람의 것'이 직접 재료가 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수필은 자기의 심적 알몸이다. 그러니까 수필을 쓰려면 먼저 '자기의 풍부'가 있어야 하고, '자기의 미(美)'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고 싶은 대로, 형식 차릴 것도 없이 그냥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인데 '자기의 풍부'에 '자기의 미'까지 겸비해야 하는 것이 수필이란다. 휴, 어쩌라고! 이건 내 자식은 국영수는 기본이고 암기과목도 올 백점에 독서도 꾸준히 하고 틈틈이 사회봉사에도 참여하는 '엄친아(딸)'가 되어야 하는 우리 시대 어머니·아버지의 욕망을 닮았다. 이 문장을 읽으니 글 한 줄도 쉬이 써 내려가지 못하겠더라. 재료가 싱싱하지 않으니 좋은 글이 나올 리가 있겠는가 뭐 이런 넋두리가 절로 나왔다. 요전 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엄청나게 멋진 문장을 써 내려갔는데 아침에 깨어나니 한 문장도 생각나지 않았다. 꿈속에서도 '이건 꿈이야, 빨리 일어나서 이 문장을 옮겨야 해!'라고 다짐했건만 허사였다. 거짓말처럼 한 단어도 생각나지 않았다. 너무 속상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High Window>에서 내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놓은 문장을 발견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가 시를 하나 썼고 그 시는 아주 훌륭했지만
나는 그것을 잃어버렸고 다시는 기억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날 아침 꼭 그랬다. 모두가 깜짝 놀랄 위대한 문장이 아직 세상에 발표되지 못한 건 꿈에서 본 문장을 기억하는 능력이 전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면 좀 위로가 될까? 이렇게라도 위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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