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3일, 컴퓨터 게임보다 더 신나는 현실 세상
한 달 내내 열심히 기말고사를 준비했던 큰 아이가 시험을 무사히(?) 마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컴퓨터 게임이었다. 평소에 게임을 즐기지 않는 큰 아이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으레 3~4일 정도는 게임에 푹 빠져 지낸다. 친구들과 가상공간에 왁자지껄 모여 그렇게 신날 수 없다. '저렇게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였나?' 싶을 정도다. 공부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리라고 아내도 나도 적극 협조한다. PC방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기 위해 다양한 컵라면과 각종 음료수 및 과자를 준비해 두는 건 기본이다. 깨톡에 '주문' 알람이 뜨면 눈썹이 휘날리도록 신속하게 대령한다. 이 정도면 최고급 PC방이 부럽지 않을 터였다. 게다가 입장료도 받지 않는 걸!
주중에 제 할 일을 잘 해낸 대가로 둘째 아이도 주말이면 컴퓨터 게임을 한다. 금요일 하굣길에 깨톡으로 아이들과 몇 시에 어디서 만날 건지 치밀하게 작전까지 짜둔다. 한 페이지에 20 문항 정도 있는 수학 연산 문제를 가만히 두면 30~40분 동안 붙잡고 씨름한다. "그럼 네 게임 시간만 줄어들어. 게임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까!" 하고 으름장을 놓으면 10분 만에 뚝딱이다. 게임 실력이 거의 프로게이머 수준인 아이는 게임할 때 얼마나 집중하는지 좋아하는 밥도 거른다. "오늘 저녁 메뉴는 뭐예요?"를 입에 달고 사는 아이가 주말 저녁 메뉴는 궁금해하지 않는 이유를 딴 데서 찾을 필요가 없다. 적당한(이 적당함의 기준으로 가끔 아이들과 충돌할 때가 있지만…) 게임은 아이들 삶에 비타민 같은 활력소가 되어 줄 터였다. 거기에 사회화(친구들과 게임 세계에서 하나가 되는 경험)라는 훌륭한 명목까지 갖추었으니, 싫으나 좋으나 게임은 아이들 삶에 깊숙이 뿌리 박혀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게임하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몰라 종종 우두커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될 때가 있다. 일종의 무기력증, 아노미 상태다. 게임하는 것 말고는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른다. 어디 우리 아이들만 그럴까? 어릴 때는 형제가 사이좋게 별의별 놀이를 다하더니 서로를 '사물' 취급하는 요즘은 함께 놀지도, 혼자 놀지도 못한다. 공부하지 않는 시간에는 주로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검색하거나 유튜브를 보는데, 이 두 가지 모두 금지하거나 일정 시간 이상을 허락하지 않으므로(Thanks, Family Link!) 결국 아이들은 마땅히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 물론 "책 좀 읽어라!" 등 떠밀기도 하지만, 잠깐 시늉만 할 뿐 별 효과는 없다. 억지로 하는 독서는 그저 텍스트를 읽을 뿐,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경험했다. 비타민 같고, 사회화에 일조하는 (반면 선정적이고 자극적이기도 한) 컴퓨터 게임 후유증이 결코 만만치 않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아내가 분통을 터뜨린다. "요즘 애들은 노는 방법을 너무 몰라! 밖에 나가서 운동이라도 좀 해!" 문득 궁금했다. 인류의 조상, 그 많던 호모 루덴스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아이들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근본적으로 교육 시스템의 문제에서 비롯되었으니까. 그렇다고 시스템 문제로 치환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경쟁만을 부추기는 입시 제도, 우리 아이가 제도권에서 착실한 대기업 샐러리맨(또는 전문직)으로 자리 잡길 원하는 부모의 마음을 건드리고 싶지도 않다. 그건 신의 영역이니까. 그러니 기왕 시작한 글, 논리 전개상 사소한 해법, 그러나 효과는 꽤 훌륭한, 하나를 제시하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할까 한다. 사실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공터를 부활시키면 컴퓨터 게임에 접속하지 않아도 사회화를 경험할 수 있다. 게다가 육체의 건강과 함께 공부머리를 기르는데도 일조할 수 있다. 몸을 많이 움직일수록 두뇌 활동도 활발해진다는 사실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다. 공터의 부활은 곧 놀이의 부활을 의미한다. 기억하는가?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놀던 그 시절을. 우리는 건강했고 결과적으로 지혜로웠다. (어엿한 성인이 되었으므로)
물론 요즘에는 대부분 아파트에 놀이터가 있다. 놀이터는 공터와 태생부터 다르다. 놀이터는 유아 및 초등 저학년이 주로 이용하는 공간이므로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생은 그곳에 절대 가지 않는다. 물론 늦은 밤, 다른 이유로 놀이터를 찾는 중고등학생이 왕왕 있긴 하지만 말이다. 놀이터는 어떤 놀이 기구로 구성되느냐에 따라 노는 방법에 한계가 따른다. 공터(때로는 골목길이 그 기능을 대신하기도 한다)는 무(無)의 공간이다. 아무것도 없으므로 모든 것을 스스로 채워야 한다. 그 공간을 딱지로 채우든, 바닥에 그린 그림(땅따먹기)으로 채우든, 돌멩이(비석)로 채우든, 인간 말(말뚝박기)로 채우든 모든 것이 호모 루덴스들의 몫이다. 놀이터에 있는 놀이 기구는 혼자 이용해야 하는 경우도 많지만, 공터와 골목에서는 결코 혼자 놀 수 없다. 최소한 둘 이상의 플레이어가 존재해야 하고, 대부분의 놀이는 우리 편과 상대편이 필요하다. 전략을 세우고 역할을 나누며 공동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 상대편과 마찰이 생기면 분쟁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법도 자연스레 익히게 된다. 이토록 확실한 사회화의 장(場)을 요즘은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들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아니, 공원이 얼마나 많은데? 동네마다 한두 개는 기본인데. 뭘 좀 알고 말하시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사실 공원과 공터는 크게 다르지 않다(그러나 알고 보면 공원과 공터의 차이는 지구와 화성의 거리만큼 멀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마음에 새겨진 공원의 모습은 어떤가? 근사한 화단이 있고, 바닥에는 충격흡수제나 보도블록이 깔려 있고 반려동물과 산책할 수 있는 휴식 공간이 아닌가? 그런 장소에서 아이들이 위험하게(?) 뛰어놀면 눈살부터 찌푸리지 않았던가?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어머니들은 무지 싫어하겠지만, 공터는 흙먼지 풀풀 날리는 공간이면 좋겠다. 아이들이 소리도 좀 지르고 부산스러운 공간이면 좋겠다. 한쪽에서는 고무줄놀이를 하고, 한쪽에서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딱지치기나 구슬치기를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면 좋겠다. 오징어 게임도 좋다. 이 놀이만큼 단합심을 길러주는 게임을 나는 알지 못한다.
동네마다 도서관이 있고, 예쁜 공원이 있고, 경로당이 있고, 반려동물 공원이 있는 것처럼 공터도 하나씩 있으면 좋겠다. 너무 후미진 곳 말고, 위험한 곳 말고, 기왕이면 열려 있는 장소면 좋겠다. 어스름 저녁이면 집집마다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풍기고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지면 "철수야 밥 먹어!" 하고 아이를 부르는 아버지들의 정겨운 목소리가 들리면 좋겠다(부모의 성역할 편견에서 벗어날 때도 되었다). 물론 그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아이들에게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많이도 필요 없다. 가장 덜 중요한 학원 하나 줄이고 한 시간만 허락하자. 딱 한 시간만 마음껏 뛰어놀게 하자. 기왕 말이 나왔으니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께도 부탁 하나 하련다.(물론 대부분 오너가 결정하는 것일 테지만) 학점이 좋은 인재만 채용하지 말고, 잘 노는 인재도 좀 선발하자. 20년 이상 사회생활해보니 결국 잘 노는 사람이 일도 더 잘하더라.
곧 여름 방학이다. 아이들에게 '여름 방학 독서 목록' 뿐만 아니라 '신나는 놀이 목록'도 만들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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