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수업
골프를 배우지 못했다.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남자가 사회생활하려면 골프는 꼭 배워야 한다고 주위에서도 많이 이야기해 주었다. 고객들과의 관계 강화를 위해 함께 라운딩을 나가면 도움이 되는 부분은 있었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나이가 되어 골프를 하지 않으니 친구들과 함께 운동할 일이 거의 없었다. 30대만 해도 가끔이지만 만나서 농구도 하고, 탁구도 쳤는데 40대가 되니 딱히 할 운동이 없었다. 당구도 좋은 스포츠지만 소질이 별로 없었다. 20년 동안 물 100이다. 1년에 한 번 칠까 말까 하니 당구 실력이 좋아질 일이 없었다. 좋아하는 탁구는 칠 곳이 마땅치 않았다.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 덕분에 탁구는 최고의 스포츠였고, 탁구장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탁구장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정말 내 나이의 남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 거의 없다. 친구들과 만나면 술자리가 1차, 2차, 3차...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25년 지기 친구 두 명과 함께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런데 여행 스타일이 모두 달랐다. 나는 휴양을 원했다. 호텔 수영장이나 해변가에서 책 읽고, 맛있는 것 먹고, 낮잠 자고 그러다 지루하면 수영을 하는 것이 좋았다. 친구 A는 바다가 없어도 상관없다고 했다. 도심에서 아이쇼핑도 하고 근사한 카페에서 그곳의 시그니처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친구 B는 뜬금없이 바다낚시를 하고 싶다고 했다. B는 유일하게 골프를 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두 명이 골프를 할 줄 모르니 일찌감치 포기를 하고 낚시로 방향을 잡았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여행지를 찾기 위해 유명한 관광지를 두루 검색했다. 하지만 정작 베트남 다낭을 최종 선택하게 된 이유는 날씨 때문이었다. 여행을 가는 시기(5월 중순)에 대부분 동남아 국가들의 날씨가 우기였다. 우기가 아닌 지역을 찾다 보니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다른 곳을 도전할 법도 한데 빛보다 빠른 속도로 포기하고 그냥 다낭으로 결정했다. 얼마나 합리적인가. 나이가 들 수록 고집이 늘어간다고 하는데 다행히 우리 중에 그런 사람은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자기 의견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방법을 잃어버린 탓일지도 모르겠다.
다낭 날씨는 정말 끝내줬다. 5월 중순이었는데도 기온이 38도를 넘었다. 하루 일과는 호텔 조식으로 시작했다. 평소에 아침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지만 해외여행을 하면 호텔 조식 먹는 재미로 일찍 일어난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시아권 대부분 나라들의 호텔 조식은 비슷하다. 우리가 머문 리조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싹 구운 베이컨 (아침부터 삼겹살 먹는 느낌이다), 소시지, 그리고 오므라이스 또는 달걀 프라이가 나왔다. 베트남 전통음식인 반미와 쌀국수도 나왔다. 호텔 조식 마니아인 준, 큐 형제가 보면 참 좋아할 메뉴들이었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음식들을 아기자기하게 담아와 자기만의 레시피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옆에 있으면 잔소리부터 나오지만 안보이니까 아이들 생각부터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모처럼 챙겨야 할 아이들이 없으니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토록 원했던 수영장은 식당 바로 옆에 있었다. 아직 휴가 시즌이 아니어서 사람이 대체로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사람은 꽤 있었다. 가족 단위로 이른 휴가를 즐기고 있었는데 웃고 장난치는 아이들을 보니 또 나도 모르게 준, 큐 형제가 눈에 아른거렸다. 두 해 전부터 여름휴가를 베트남으로 왔는데 아이들도 베트남을 무척 좋아했다. 친구 B도 아이들과 다시 와야겠다고 했다. 이 놈의 부성애(父性愛)는 왜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불쑬불쑥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 다시 아이들 생각을 접고 가지고 간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었다. 마침 맞은편에 자리 잡은 한국 여자분 (아이와 함께 왔다.)도 같은 책을 읽고 있었다. 출간되자마자 베스트 샐러가 되었고, 또 책 이름도 여행의 이유이니 여행지에서 읽기 좋은 책이었다. 그래도 해외 휴양지에서 같은 책을 읽고 있으니 재미있는 우연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강한 아우라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은 시간이었다.
오후 4시가 되면 게으른 베짱이 놀이를 끝내고 외출 준비를 했다. 5시에 마사지 예약을 해 두었기 때문이다. 다낭 여행에서 공통으로 원한 것이 있다면 1일 1 마사지였다. 저녁식사를 제외하면 우리의 유일한 대외활동이었다. 철부지 시절에는 유흥 꽤나 즐겼지만 이제는 용기도, 기력도 없는 우리에게 마사지는 그동안 일하느라 혹사시켰던 내 몸에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발 마사지, 전신 마사지, 아로마 마사지 등 종류를 바꿔가면서 매일 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를 받을 때는 아이들 생각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 없이 아이들 둘과 씨름하고 있을 아내가 떠올랐다. 요즘 집안일에 수영대회 준비까지 하느라 온 몸이 아프지 않은 데가 없다는 아내도 마사지를 받으면 엄청 좋아할 텐데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진짜!)
베트남 전통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다낭에서 제일 Hot 한 곳을 들렀다. OO마트. 한국인 관광객이라면 모두 찾는다는 바로 그곳이다. 환전소, 한국식당, 그리고 대형마트까지 있으니 편리했다. 우리도 한 보따리 장을 봤다. 술, 라면, 안주, 과일 그리고 달리(Darlie) 치약을 종류별로 샀다. 달리 치약의 종류가 이렇게 많았는지 이곳에 와서 처음 알게 되었다. 리조트로 돌아온 우리는 각자의 휴대폰에 있는 애장 하는 음악을 들으며 조촐한 술자리를 갖었다. 90년대 가요, 홍콩영화 OST, 응팔 OST 등등 추억이 담긴 노래가 대부분이었다. 최신곡은 없었다. 다들 아저씨였다. 술은 맥주 한 두 캔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는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25년이면 삶의 반 이상을 같이 지내온 친구들이니 공유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옛날이야기는 왜 그리 재미있는지,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사실 처음 하는 이야기도 아닌데 할 때마다 새롭고 재미있다. 오랜 친구가 좋은 이유다.
이번 다낭 여행 중에 특별히 관광지를 둘러볼 계획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 A가 바나 힐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나도 B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계획에 없던 바나 힐에 가게 되었다. 공항에서 우리를 픽업해준 업체가 관광도 대행해 급하게 카톡을 보냈는데 다행히 예약이 되었다. 게다가 운이 좋게도 단체 요금으로 우리만 단독 차량과 가이드를 동반하게 되었다. 비용에는 입장료 (케이블카 포함), 한식 저녁, 그리고 콩다방 코코넛 커피 한 잔이 포함되어 있었다. 거기에 10불만 추가하면 마사지까지 받을 수 있었다. 가격 대비 나쁘지 않은 구성이었다. 하지만 기분 좋은 출발과는 다르게 상황은 곧 엉망이 되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때만 해도 쨍쨍했던 날씨가 정작 바나 힐에 도착하니 엄청난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천둥번개를 동반해 바나 힐이 정전이 되는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놀이 시설이 있던 바나 힐에 정전은 치명적이었다. 또 지하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우리는 입구 근처에 있었지만 안쪽은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야외를 걸어 다니기에는 불가능했다. 실내는 보이지 않고 실외로는 나갈 수 없는 난처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20여분 만에 정전은 해결되었지만 건물 내부로는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아 같은 곳을 빙빙 돌았다.(아저씨들이 길눈도 어두웠다.) 어쩔 수 없이 비를 쫄딱 맞고 밖으로 걸어 다녀야 했다. 그러니 바나 힐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을 리가 없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것도 나중에 더 나이가 들어 재미있는 이야기 소재가 될 것 같기는 하다.)
특별히 다낭에 가지 않아도 상관없었을 다낭 여행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다. 물론 모처럼 가족과 떨어져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과 오랜 친구들과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장소에 가면 가족이 먼저 생각났다. 다음에 같이 와봐야지 꼭 생각하게 된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노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 잃어버린 것은 왠지 좀 서글프다. 40대의 남자는 그래서 좀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