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수업
어린 시절에 우리나라는 '단일민족국가'라고 배웠다. 그런데 내 성(姓)은 중국에서 온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단군의 후예가 아니었다. 그럼 우리나라는 단일민족국가가 아닌데...... 어린 시절의 나는 이 비밀을 친구들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순수한 면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민족이라는 것이 근대에 들어와 형성된 개념이고, 또 단일민족이라는 것이 한 핏줄이라는 협의의 뜻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훨씬 후였다. 요즘에도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 3학년인 큐의 사회 교과서에 '다문화 가정'이 실려 있는 것을 보았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말이 실감되었다.
우리 조상님은 당나라 태종 때 8학사의 하나로 고구려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후에 신라로 이주했고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개국공신까지 되었다. 대학 시절에 한자를 조금 공부해서 항상 보자기에 싸여 있던 족보 읽기에 도전해 본 적이 있었다. 고려 개국이 어쩌고 하는 말은 이해를 했는데 나머지는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인명과 지명이 많아 옥편을 찾아봐도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요즘은 위키 백과에 우리 조상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잘 나와 있다. 어쨌든 내 DNA 속에 아주 조금이지만 중국 지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잦은 음주와 폭식으로 몸이 끝없이 불어나던 시절이 있었다. 아내는 나를 옥동자라고 불렀다. (옥동자라는 말만큼 상반된 이미지를 갖는 단어가 있을까 싶다. 예전에는 맑고 깨끗한 용모를 가진 아이라는 뜻이었는데 요즘은...... 물론 아내가 전자의 의미로 부른 것은 절대 아니다) 살이 찌자 직장 동료들이 '살찐 중국 부호' 느낌이라고 말하곤 했다. '살찐'이라는 말은 들리지 않고, '부호'라는 말만 들렸나 보다. 별로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 DNA 속 아주 미비했던 중국 지분이 세(勢)를 늘려가고 있었던 것이. 그때는 미처 몰랐다.
한류가 막 시작되어 중국인 관광객이 국내에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관광지 어디를 가도 쉽게 중국인을 볼 수 있었다. 하루는 지방 출장 갈 일이 있어 KTX를 타려고 서울역에 갔다. 표를 구매하고, 시간이 좀 남아 3층에 있는 피규어 매장에 갔다. 규모가 상당히 크고 희귀한 피규어도 많아 서울역에 가면 항상 들르는 곳이었다. 나는 건담, 드래곤볼 그리고 원피스 피규어 몇 개를 구입했다. (한일관계가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계산을 하기 위해 계산대 앞에 섰는데 젊은 직원이 계산기로 가격을 합산했다. 보통은 포스로 찍어서 계산하는데 고장이 났나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직원이 계산기에 찍힌 가격을 내게 보여주었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어디서 많이 본 상황이었다. 동남아 여행을 가면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 관광객과 가격 흥정할 때 쓰는 방법이었다. 나는 카드를 내밀면서 한국사람이에요라고 했고, 직원은 중국 관광객인 줄 알았다고 죄송하다고 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어딜 봐서, 응???
그런데 이런 상황은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났다.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 성산 일출봉 앞 별다방 직원도 영어로 주문을 받았다. 엄청나게 많은 중국 관광객이 성산에 왔던 날이었다. 음식점에서 옷가게에서 중국 관광객이 중국어로 무언가를 물어보는 경우도 많았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개그맨 이수근처럼 중국어 흉내를 제법 냈다. 중국어 특유의 억양과 성조를 흉내 내면 우리말도 중국어처럼 들려 개인기로 밀고 있었다. 아내한테 한창 개인기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한 젊은 부부과 우리 옆을 지나가면서 "거 봐 중국인 맞잖아" 하는 거였다. 아내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었다. 내가 어딜 봐서, 응???
그렇게 나도 모르게 중국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파리로 출장을 다녀올 기회가 두 번 있었다. 첫 번째 출장 때에는 머무르는 내내 회의만 하다가 왔다. 마지막 날 한 시간 정도 짬이 나서 가족 선물을 사러 샹젤리제 거리로 나갔다. 대부분의 상점들이 8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가는 상점마다, 또는 길거리에서 중국인들이 중국어로 무언가를 물어보았다. 한 중국인 남성이 뭔가를 물어보려고 했는데 먼저 코리언, 코리언이라고 대답해 버렸다. 파리까지 와서 빈 손으로 갈 수 없다는 조급한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짜증도 좀 났다.
두 번째 출장 때에는 회사에 보고를 하고 휴가를 내어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파리까지 왔으니 다른 곳은 몰라도 루브르 박물관에는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사실 루브르 박물관은 꼬박 하루를 투자해도 다 보지 못할 만큼 많은 전시물이 있는 곳이었다. 그런 곳을 반나절 만에 다 둘러보아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정말 뛰어다니면서 작품들을 보았다. TV나 미술책에서만 보던 작품들을 직접 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예술적인 감성이 별로 없어 작품의 깊이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비록 가장 궁금했던 모나리자 앞에는 많은 사람 때문에 가까이 가서 보지 못했지만 멀리서나마 볼 수 있으니 그걸로도 좋았다. 그렇게 모나리자를 보고 시간에 쫓겨 다른 전시관으로 이동하는데 어떤 중국인 여성분이 영어로 "Are you Chiness?"라고 물어보았다. 순간 Yes라고 해야 할지, No라고 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녀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그냥 아름다운 정도가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분명히 우리 집에 있을 텐데 여기에 그에 못지않은 사람이 서 있는 것이었다. 짧은 순간 나는 내 DNA 속 중국 지분을 생각했다. Yes라고 해도 거짓말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여성은 중국어로 물어보지 않고 영어로 물어보았다. 유창하지는 않지만 영어로라면 대화는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No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이성과 감성의 싸움에서 이성이 승리한 것이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딘가로 뛰어갔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때만큼은 내가 중국인이 아닌 것이 그렇게 실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살을 뺀 요즘은 중국인이냐는 질문을 예전처럼 많이 받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받아도 예전처럼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사실 중국인이라는 질문 자체가 기분 나쁠 것은 없었다. 그 질문을 받을 때의 내 상황에 따라 감정의 결과가 달라졌던 것이다. 작년에 베트남으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도 두세 번 그런 일이 있었지만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었다. 이제 누군가가 중국인이냐고 물어본다면 '세계인'이라고 대답하는 센스도 좀 발휘해 볼까 한다. 참, 미리미리 중국어도 공부를 좀 해둬야지.
<표지 사진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촬영한 밀로의 '비너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