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수업
'이제 나도 나이 들었구나.'라는 것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육체적으로는 알코올 분해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30대까지는 새벽까지 술을 마셔도 그 흔한 지각 한번 하지 않았다. 며칠씩 연달아 마시는 것도 가능했다. 신체 리듬, 컨디션 같은 것은 아무 상관없었다. 무조건 go였다! 하지만 앞자리가 3에서 4로 바뀌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컨디션 안 좋은 날은 술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술자리에 참석해도 12시만 넘으면 쏟아지는 졸음을 주제 할 수 없었다.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기 일수였다. 또 하루 마시면 며칠은 쉬어야 했다. 몸이 옛날 같지 않다는 말을 달고 살게 되었다.
아내는 육아와 집안일에, 나는 회사 일에 바빠 둘이 이야기를 하거나 함께 TV를 보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보통 10~11시에 퇴근하면 아내도 그제야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겨우 한 숨을 돌렸다. 내가 야식으로 사간 떡볶이와 맥주 한 캔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며 지나간 예능 프로 (주로 무한도전과 삼시세끼)를 돌려 보는 것이 유익한 낙이었다. 그날그날의 특이사항들 (아이들 유치원, 학교 이야기, 친구 이야기 등)을 이야기하다 보면 보통 1시쯤 잠이 들었다. 우리 부부의 이런 유일한 낙을 빼앗아 가는 것이 있었다. 잠이었다. 아내도, 나도 가끔 아이들 (특히 큐)을 재우기 위해 함께 침대에 들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아이들을 재우다 함께 잠이 들면 아침까지 자게 되었다. 남는 사람이 중간에 깨워주기로 하지만 한번 잠들면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아내는 깨워달라고 하면서도 깨우면 화를 낸다) 그렇게 혼자 남은 사람은 배 터지게 떡볶이며 순대에 맥주 한 캔까지 모두 마셔야 했다. 다음 날 아침 허무함은 말로 표현이 안된다. 내 인생에서 소중한 몇 시간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젊었을 때는 12시 이전에 잠든 적이 없었는데, 잠이 원수였고 드는 나이가 한(恨)이었다.
완벽한 아내는 잠버릇도 거의 없다. 살짝 잠꼬대(로 대화)를 하는 정도다. 그전에는 절대로 코를 골지 않았다. 이것도 나이 든 때문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요즘 들어 아내도 코를 골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코를 골다 자기가 그 소리에 놀라 깨기도 했다.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처음 알았다) 물론 나도 몸무게가 좀 늘었을 때나 피곤한 날, 술을 많이 마신 날에는 코를 골았다. 하지만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반복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요즘 들어 코를 (심하게) 골기 시작한 것이다. 강철체력인 아내도 '나도 나이 들었나 보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늘 나이보다 어려 보이지 않냐는 질문을 하는 아내도 나이 듦을 절실히 느끼는 모양이다.
육체적으로 나이 든다는 것은 확실히 좀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나이 든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린 시절에는 교과서에 나온 <신록예찬>이라는 수필을 이해하지 못했다. 논리적으로 글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글 속에 흐르는 정서, 작가의 감정에 동화되지 못했다.
"이 짧은 동안의 신록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참으로 비할 데가 없다. 초록이 비록 소박하고 겸허한 빛이라도 할지라도, 이러한 때의 초록은 그의 아름다움에 있어, 어떤 색채에도 뒤서지 아니할 것이다."
"사실 이즈음의 신록에는, 우리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낸다."
이양하 작가 <신록예찬> 중에서
이제는 <신록예찬>을 쓴 작가만큼은 아니어도 신록을 보고 있으면 아름다움, 푸르름, 생명력, 눈부심 등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작가가 왜 그토록 절절하게 신록의 아름다움을 동경했는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신록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것이 나이 듦의 기준이 되었다. 여행을 가는 차 안에서 휴대폰만 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 신록의 아름다움을 느껴보라고 하면 준, 큐 형제는 똑같은 나무, 똑같은 산만 보이는데 무엇을 느끼냐고 불평을 하곤 했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대답이었다. 강요한다고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아내가 식물을 좋아해서 집 안에 화분이 제법 있다. 나도 식물의 효능(공기를 맑게 해 준다거나 머리를 상쾌하게 해 준다는)에 공감해 화분 들이는 것에 이견이 없었다. 어느 주말 아내의 지시로 화분에 물을 주는데(상명하복 체계가 확실하다) 처음으로 이름도 잘 모르는 나무며 풀들이 아름답게 보였다. 몇 해나 그 자리에 있던 것들이었는데 불현듯 찾아온 아름다움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들과 대화하며 잎사귀 하나하나를 닦아 주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애지중지하는 난초 잎사귀를 정성스럽게 닦아주는 영화나 드라마 장면이 떠올랐다. 아이코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평범한 나무, 평범한 하늘, 평범한 구름, 평범한 바다가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다. 비경(祕境)을 쫒지 않아도 도처에 아름다움이 널려 있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보다 초여름 찾아온 푸른빛의 잎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나이 듦이 그리 서글프지만은 않다. 미(美)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심미안(審美眼)이 눈을 떴으니 나이 들어 좋은 일이 적어도 하나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