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 게임'이 현실에서?

8월 3일, 슈퍼 파워가 없는 우리의 선택은?

by 조이홍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는 타노스의 '핑거 스냅' 한 방으로 인류(정확히는 전 우주의 생명체) 절반이 사라졌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종족 등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평(?)하며 불가역적인 대멸절이 즉시 효력을 발휘했다. 정의롭고 힘세지만 다소 눈치 없는 천둥의 신 토르의 도끼가 타노스의 심장을 관통했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말처럼 목을 잘라야 했는데…. 남견진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상실감에 빠졌고, 블립의 트라우마를 평생 안고 살았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아마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5년 후,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는 걸 발견한 어벤져스 멤버들은 죽도록 고생해 과거의 여러 시간대에서 여섯 개의 스톤을 모으고 다시 한번 타노스와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결국 헐크의 '핑거 스냅'으로 절반의 인류는 되살아나고 몇몇 히어로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야기는 막을 내렸다. 언제나 그렇듯 영화 속 결말은 해피 엔딩이다.


영화에서나 가능한 '엔드 게임'이 현실에서도 벌어질 모양이다. 이런, 큰일이다. 언제 인피니티 스톤을 모으지? 아니, 아직 현실에서는 '시간 여행'도 불가능하잖아! 이 모든 걸 어찌어찌해냈다고 해도 중요한 문제가 남았다. 온몸이 방사능(감마선)으로 둘러싸인 근육질의 '녹색남'은 또 어디서 구하는가. 사면초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천문학적인 재산을 가진 괴짜가 몇 명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토니 스타크처럼 자신을 희생해가며 손가락을 튕겨 줄지는 미지수지만…)


현실판 인류 종말 게임에서 빌런은 '지구온난화'이다. 휴, 타노스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아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 위기도 타노스만큼 무자비하지 않은가! 어쩌면 더 악랄할지도 모른다. 부자 나라보다 개발도상국이나 가난한 나라에 더 가혹하다. 산업혁명 이후 최근까지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는 부동의 1위 미국, 중국, 러시아, 독일 순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영토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몇몇 섬나라들이나 기아로 수많은 국민이 생명을 위협받을지도 모르는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의 국가들은 대기 중에 단 1%의 이산화탄소도 보태지 않았다. 온갖 나쁜 짓은 형들이 했는데 아무 잘못도 없는 막내만 회초리를 맞는 셈이다. 이렇게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러고 보니 어벤져스 멤버 대부분이 미국인이라 자국 국민부터 구하기는 해야겠지. 농담처럼 말하지만 가혹한 현실에서 자비란 없다.


올해 4월 발표된 IPCC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 제1 실무그룹은 '지구온난화는 인간' 때문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기후 위기에 따른 사회, 경제적 영향 평가를 실시하는 제2 실무그룹은 지구 평균 기온 상승폭이 예상치보다 빨리 1.5℃에 도달하면 약 22억 인구가 5년마다 더 거센 폭염에 더 빈번하게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여름 유럽을 강타한 폭염으로 수 천명이 사망한 사실만 보아도 제2 실무그룹의 경고를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탄소배출 방지, 완화 노력 및 정책 분석을 담당하는 제3 실무그룹의 경고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30개월, 적어도 2025부터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감소하기 시작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기후 위기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할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된다고 경고했다. 인류에게 남은 시간이 고작 30개월이라는 이야기다. 30개월. 올해 태어난 아이가 만 4세가 되기도 전에 지구의 기후 시스템이 고장나 어떤 재앙을 불러올지 모른다는 말이다. 어떤 재앙일지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지 재앙이 올지, 안 올지 모른다는 말이 아니다. 중요한 건 재앙은 결코 혼자 오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참, 아무리 대재앙이 닥쳐도 지구는 멸망하지 않는다. 멸망은 인류를 포함한 생명체들이 한다. 그저 지구는 더 뜨거워지고 더 조용해질 뿐….


여전히 '기후 위기가 진짜야?'라고 묻는 사람들이나 '나만 아니면 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그들을 설득해 함께 행동하는 건 힘들 것 같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설득해도 실패했는데 고작 30개월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인류를 포함한 생명체, 그리고 온화한 지구의 미래가 걱정되는 사람들이 행동에 나설 차례다. IPCC 보고서에서 언급한 해결책은 '탈성장'이다. 풍요의 수레바퀴를 멈추고 덜 입고, 덜 먹고, 덜 소비해야 한다.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육식의 비중을 현저히 낮추고 자연식물식을 실천해야 한다. 사용하지 않는 전기는 꺼두고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며 개인 차원에서 탄소배출량을 최소화해야 한다. 아울러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물건을 사용하고, 과거에 집착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무능한 정치인보다 미래 세대를 위해 애쓰는 유능한 정치인을 지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내일 말고, 바로 오늘부터 시작해야 한다. 슈퍼 파워를 가진 히어로들이 없는 현실 세계에서는 깨어있는 자들이 어벤져스가 되어야 한다. 시간 여행을 떠나 절대무적의 빌런들과 싸우거나 과거의 나를 만나 시공간이 파괴되는 것보다 이런 소소한(?) 일들이 훨씬 쉽지 않겠는가! 게다가 이런 일들을 한다고 목숨을 위협받지도 않는다. 조금 귀찮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최근 케임브리지대 등 다국적 연구진으로 구성된 저자들이 '기후 엔드 게임 : 파국적 기후변화 시나리오 탐구'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진들은 기온 상승폭 3℃를 넘어가는 지구온난화 가능성과 그로 인한 총체적 영향에 대한 양적 차원의 분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IPCC가 이제 3℃ 특별 보고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IPCC에서 세기 말로 예상한 1.5℃ 상승이 한계에 다다른 시점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예상하지 않는다는 건 지혜로운 인류의 치명적인 어리석음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한창 열심히 쓰고 있는 <뜨거운 지구 연대기>의 세계관은 평균 기온이 3℃ 상승한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지금 우리 앞에 빨간 약과 흰 약이 나란히 놓여 있다. 빨간 약은 당장은 고달프지만 다음 세대에게 서늘한 녹색 지구를 전해줄 수 있는 현실로 우리를 안내한다. 반면 흰 약은 당장은 풍요롭고 행복하지만 다음 세대에게 뜨거운 붉은 지구를 전해줄 수 있는 현실로 우리를 인도한다. 슈퍼 파워는 없지만 우리도 선택은 할 수 있다. 자, 당신은 어떤 색의 약을 삼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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