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6일, 사실이 아니라 스토리를 전달하라!
기후 변화(또는 위기)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된 것은 우연히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를 읽은 후부터였다. 이전에도 간간이 관련한 텔레비전 뉴스와 신문 기사를 접했지만, 아직은 먼 미래나 다른 나라 일이라고 치부했다. 특별보고서를 읽고 나니 '이거 좀 심각한데' 싶었다. 적어도 내가 사는 동안에는 일어나지 않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내 나이쯤 될 때면 일어나리라 확실시되는 '위험한' 상황들이 몹시 걱정되었다(이것도 이제 옛말이 되었다. 가속이 붙어 하와이안 풍 고희연을 치를지도 모르겠다). 관련 책을 찾아 읽고 IPCC 보고서가 나올 때마다 관심을 가졌다. 기후 변화와 관련한 정보를 많이 얻으면 얻을수록 문제는 눈앞에 닥친 현실이 되었고, 사람들이 왜 기후 변화에 이토록 '뜨뜻미지근'하게 반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인류의 생존이 걸린 문제인데?
일단 기후 변화가 심각한 위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전문가든 나 같은 일반인이든) 입장에서, 기후 변화는 명백한 '사실'이다. 이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뿐 누구나 이 사실에 눈 뜨면 충분히 공감하리라 믿는다. 그래서 사실을 전파하기에 급급하다. 나 역시 브런치에 얼마나 많은 기후 변화 관련 글과 책 소개를 올렸던가! 여기에 '지식의 저주'라는 의사소통 문제가 등장한다. 지식의 저주란 사람이 무엇을 잘 알게 되면 그것을 모르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상상하기 어렵게 된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한 유명한 실험이 하나 있다.
1990년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학생 엘리자베스 뉴턴은 '두드리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라는 연구를 진행했다. 뉴턴의 가설은 남들도 세상을 우리와 똑같이 바라보며 세상 속 사건을 우리와 똑같은 의미로 해석하리라는 것이었다. 뉴턴은 실험 참가자를 '두드리는 사람'과 '듣는 사람' 두 그룹으로 나누고, 두드리는 사람은 '생일 축하합니다'처럼 간단한 곡의 박자에 맞춰 탁자를 두드리고, 듣는 사람은 무슨 곡인지 맞히는 게임을 했다(어렸을 때 한 번쯤 친구와 해봤을 장난, 그거 맞다). 그리고 두드리는 사람에게 듣는 사람이 얼마나 정답을 맞힐지 예측해 보라고 했다. 누구나 아는 쉬운 노래이므로 두드리는 사람들은 50퍼센트 정답률을 예측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총 120회 실험 중에 정답을 맞힌 건 세 번뿐이었다. 2.5퍼센트라는 충격적인 정답률! 왜 두드리는 사람은 절반이나 맞힐 거로 예상했고, 실제 듣는 사람은 낮은 정답률을 보였을까? 두드리는 사람은 머릿속으로 해당 노래를 연주했지만, 듣는 사람은 상대방 머릿속의 연주를 들을 수 없으니 전적으로 소리에 의존해야 했다. 두드리는 사람이 음이 이어지고 있다고 상상하는 구간이 듣는 사람에게는 두드림이 없는 구간이 되는 것이다. 화자가 알고 있는 사실(또는 지식)을 청자에게 전달할 경우 이와 같은 의사소통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매우 높다.
그렇다면 기후 변화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전달받은 사람들이 뜨뜻미지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일부에서는 기후 변화가 조작되었다거나 지나치게 부풀려 있다고 거부 반응까지 보인다. 도대체 뇌가 어떻게 작동하길래. 일단 호모 사피엔스의 뇌는 변화가 지극히 적었던 시대에 진화를 끝냈다. 유발 하라리 표현대로 인지 혁명과 농업 혁명을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뇌가 거의 완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남들과 소통하고 잘 지내는 능력을 촉진시켰다. 집단의 안정이 곧 자신의 생존과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 사회가 너무 빠른 속도로 변화, 발전한다는 데 있다. 뇌의 진화 속도와 현실의 변화 속도에 엄청난 불일치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 뇌는 경험을 통해 뭔가를 배우고 나면 그 의미를 불변의 사실로 저장해 자신의 일부로 삼는다. 일단 무언가를 믿으면 자기 정체성의 일부가 되고, 이를 반박하면 나와 내가 속한 집단을 한꺼번에 공격하는 셈이 된다. 우리 뇌가 그런 사실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건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하다.
우리 뇌는 신체에 대한 물리적 위협과 신념 체계에 대한 반박을 똑같은 것으로 인식한다. 생존을 지향하는 뇌는 개체가 안전하도록 필사적으로 변화를 거부한다. 변화에는 항상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기후 변화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라도,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지 않는 한 사람들을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사람들이 게을러서도, 무지해서도 아니다. 우리 뇌가 안전한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했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기후 변화가 정말 미래 인류를 위협하고 아직 시간이 있는 현재의 우리가 행동을 바꿔 위험을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지구 환경에 부담을 덜 주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이야기'에서 찾고자 한다. 우리 뇌는 기존 신념에 반하는 '사실'은 밀어내지만, '스토리'는 공감한다. 왜 스토리는 공감하냐고?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뇌는 진화의 과정에서 '집단의 안전이 생존의 지름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집단의 화합을 위해서 이웃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능력을 극대화했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그리고 자주 TV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하는가. 따라서 기후 변화와 관련해 사실을 나열하는 건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내가 기후 변화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이라고 느낄 수 있는 스토리를 들려주어야 한다.
<A602 뜨거운 지구 연대기_가제> 픽스 업 소설의 다섯 번째 단편을 이제 막 끝냈다. 원고지 약 500매 분량이다. 총 10편의 단편과 10편의 초단편으로 구상 중이다. 다섯 번째 단편 소설 작업이 잘 진행되지 않아 며칠간 한 자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40도를 웃도는 영국 날씨 뉴스를 보았다. IPCC에서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빨리 지구가 더워지고 있는 듯하다. 졸고지만 서둘러야겠다 싶었다. 나머지 15편은 언제 쓰나 싶지만 박차를 가할 참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소재가 널렸다. 참 아이러니하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 글은 리사 크론 <스토리만이 살길>을 일부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