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는 것 말고는...

인생 수업

by 조이홍

고등학교 때 전교조 출신 선생님이 계셨다. 유난히 어두워 보이고 말이 없으셨는데 한 번도 아이들을 혼내지 않으셨다. 하루는 수업 내용과 관계없는 갑작스러운 질문을 하셨다. 절대 바뀌지 않는 명제(命題)를 하나만 말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를 포함해 반 친구들이 이것저것 대답을 했지만 선생님이 원하는 정답은 나오지 않았다. 답이 나오지 않자 속삭이듯 건네신 말씀은 '인간은 죽는다'라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내심 재미있는 답을 기대했는데 갑자기 너무 진지한 답이 나오자 야유를 쏟아냈다. 선생님은 뭔가 더 말씀을 하시려다 그만두고 다시 수업을 진행하셨다. 나는 수업 내용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영어단어 mortal에는 '인간'과 '죽음'의 뜻이 같이 담겨 있다. 한 단어에도 여러 가지 뜻이 담긴 영어를 보면 가끔 참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뜻들이 기막히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mortal도 마찬가지이다. 인간과 죽음이 필연적 관계라는 것을 망각하지 않도록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 같다.


불행하게도 나라는 존재를 처음 인지한 세상과의 첫 접속도 바로 그 죽음을 통해서였다. 다섯 살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였지만 이상하게 그것만은 정확히 이해되었다. 젠장! 그날 이후 죽음은 어린 나를 무척이나 괴롭혔다. 죽는다는 생각만 줄곧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죽음은 어린 나에게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쉽게 떨쳐내기 힘들었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생각이 떠오를 때면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가슴이라고 해야 할까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내 몸 어딘가에 물리적인 통증이 함께 왔다. 진짜 아팠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주위에는 나와 같은 운명을 가진 존재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무나 바람에 대고 고민을 털어놓을 만큼은 순수하지 못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역설적이게도 죽음과 멀어졌다. 담담해졌다고 해야 할까, 상처 위에 새 살이 돋고 굳은살이 배겼다. 더는 아프지 않았다. 게다가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을 하고 우리를 닮은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에는 거의 잊게 되었다.


그렇게 잠시 죽음을 멀리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처럼 둘째 큐와 자려고 작은 침대에 함께 누웠다. 그런데 갑자기 큐가 울면서 아빠는 죽는지, 자기도 죽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때 큐의 나이 다섯 살이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너무 당황해 아무 대답도 못하고 꼭 안아주기만 했다. 큐는 한 동안 흐느끼며 울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큐가 나처럼 다섯 살에 죽음을 생각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내 DNA 속에 있던 질문이 그대로 큐에게 전해진 것일까,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나, 질문은 무수히 많은데 답은 하나도 없는 밤이었다. 더 안타까운 일은 내일도, 앞으로도 당분간은 큐가 이해할 만한 대답을 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유한하기에 삶이 더 찬란해야 함을 다섯 살 큐에게 잘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나도 여전히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투성이 풋내기였다. 그저 안아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이곳저곳을 텅 빈 배낭을 메고 긴 지팡이를 들고 걸어 다니는 그 좀머씨 이야기다. 책의 결말이 잘 생각나지 않지만 그 시절 나는 좀머씨가 죽음을 피해 도망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연처럼 찾아온 인생이지만 결국 좀머씨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무작장 걷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죽음을 피하지도 못했다. 3학년이 된 큐는 여전히 같은 질문을 품고 살고 있는 것 같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죽음은 모두가 아는 비밀인 것을...... 큐가 세상과 자신에 대해 질문이 더 많아지는 나이가 되면 둘이 함께 여행을 다녀올까 한다. 큐가 만족할 만한 답을 해 줄수는 없지만 삶을 담담하게 살아나가는 사람들을,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을 되볼아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다.


<표지 그림은 아내의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