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수업
우리 아이들은 둘 다 휴대폰이 없다. 초등학교 6학년인 준의 친구들 대부분은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인 큐의 친구들도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상황이 비슷하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아이들에게 휴대폰을 사주지 않았다. 사주더라도 최대한 늦게 사줄 계획이었다. 잠정적으로는 고등학교 입학할 때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초등학교에서는 아니었다. 아직은 스마트폰보다 재미있는 것이 많아야 할 나이였다. 게다가 아내가 항상 등, 하교를 함께 하고, 수영장이나 미술학원 등 방과 후 활동도 직접 데려다 주기 때문에 (연락수단으로써) 휴대폰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었다.
공사다망(公私多忙)한 준은 학교에서도 하는 일이 많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 친구들과 연락할 일이 점점 많아졌다. 주로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대화했는데 준만 엄마 휴대폰을 사용했다. 종종 둘 다 불편한 상황이 생겼지만 휴대폰을 사주지 않겠다는 결심을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그전에도 현장체험학습을 갈 때나 수업시간에 휴대폰이 필요한 경우가 있어 종종 아내의 휴대폰을 빌려 사용했기 때문에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2학기가 되어 준이 전교회장단 선거에 나갔다. 전교 부회장에 입후보했다. 1학기 때 학생회장에 나갔다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어 전략을 바꿔 부회장으로 나갔다. 선거 직전이 생일이라 선물로 휴대폰을 사달라는 준의 간절한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다. 휴대폰이 아니면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준의 반항(?)에 생일선물로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그게 좀 마음에 걸렸던 터라 부회장에 당선이 되면 휴대폰을 사주마 약속을 했다. (물론 아내도 동의했다) 쟁쟁한 후보들이 많이 나와 조금 어렵지 않겠냐는 아내의 말을 듣고 다소 과감한 베팅을 했다. 또 전교 부회장이 되면 지금보다 더 연락을 주고받을 일이 많을 테니 이제는 필요할 시기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조금 있었다. 준은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다. (요즘 초등학교 선거는 사람을 보고 뽑지 않는 것 같다. 공약과 실천 가능성을 본다. 그래서 학교에서 실시하는 공개토론도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나은 점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준이 덜컥 부회장에 당선이 되었다.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정말 전교 부회장이 된 것이다. 그간 교내 영재반 시험을 볼 때, 인근 대학교 영재반 시험을 볼 때도 합격하면 휴대폰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합격은 했지만 온갖 핑계를 대어 휴대폰을 사주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공수표를 남발할 수 없었다.
휴대폰이 처음 생긴 날 오랜만에 해맑게 웃는 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비록 큐와의 관계로 가끔 엄마, 아빠의 마음을 몹시 상하게 하지만 맏이로서 제법 듬직해진 준은 언제나 바른 아이였다. 해야 할 일은 언제나 스스로 알아서 했다. 학교 생활도 잘했다. 학기 초에 준의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오는 날이면 아내의 기분은 구름 위를 걷는 것 마냥 둥둥 떠 있었다. 준에 대한 칭찬이 끊이지 않을뿐더러 어떻게 집에서 교육하는지 오히려 선생님들이 아내에게 질문하기 때문이다. 그런 준이라면 조금 일찍 휴대폰이 생기더라도 잘 사용할 것 같았다. 적어도 선을 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게다가 IT 강국답게 내 휴대폰에서 준의 휴대폰을 제어할 수 있었다. 위치추적뿐만 아니라 사용시간, 앱 다운로드까지 보호자가 관리할 수 있었다. 준도 하루 종일 휴대폰을 사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휴대폰 사용시간에 대한 협상'은 쉽게 합의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내와 준이 팽팽하게 맞섰다. 아내는 하루 20분, 준은 하루 1시간을 주장했다. 학생회장단 일로 친구들과 연락할 일이 많다는 이유였다.(내가 봐도 20분은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협상 끝에 최종적으로 하루 30분, 밤 10시부터 사용제한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수업에 필요한 경우나 학생회 일이 많은 경우 추가 시간을 더 주는 조건이었다. (담임 선생님께도 사전에 양해를 구했고, 사용시간을 정해 놓는 것은 좋은 방법이라고 하셨다)
휴대폰이 생기면 친구들처럼 게임이나 하고 싶은 것이 많을 텐데 준은 게임 하나 다운로드하지 않았다. 딱 하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앱을 다운로드하기는 했다. 그 앱을 다운로드하기 위해 10분이나 장황하게 설명했다. 어차피 30분 사용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그 안에서 듣고 싶은 음악을 듣는 것은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주어진 30분 대부분을 학생회 관련 일들을 처리하는 데 사용해 음악을 듣는 것도 주말이 되어야 가능했다. 물론 내가 준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준은 아내와 내가 걱정하는 것처럼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루는 휴대폰을 집에 두고 학교에 갔는데 별로 불편한 것이 없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스마트폰이 생기고 삶이 얼마나 편안해졌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손안에 작은 기기 하나면 대부분의 일들이 처리된다. 벽돌폰 하나만 들고 다니더라도 주위의 시선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세상은 참 빨리도 변하고 있다. 하지만 (나도 경험한 바 많지만) 퇴근 후 SNS를 통한 업무 지시, 전달 등으로 일과 생활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사생활 침해 논란 등 크고 작은 문제점들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은 마냥 신기한 도깨비방망이 같지만 이 방망이가 혹을 떼어 줄지, 하나를 더 붙여줄지는 전적으로 그 방망이를 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아직은......
준이 휴대폰이 생기면 항상 형과 '세트'라고 우기는 큐도 휴대폰을 사달라고 조를까 봐 내심 걱정했는데 큐는 딱히 휴대폰에 대한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형의 휴대폰 쓰임새를 보아하니 (게임만 할 줄 알았는데) 좋은 면보다는 그렇지 않은 면이 많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 같다. 큐가 진정한 승자다.
<표지 사진은 준이 제주에서 자신의 카메라로 찍은 차장 밖 제주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