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과의 첫 라이딩

인생 수업

by 조이홍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았다. TV 볼 시간도 부족하거니와 드라마를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한번 보기 시작하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끝까지 봐야 한다. 그래서 더 안 보게 되기도 한다. 3년 전 요맘때 <도깨비>라는 드라마가 빅 히트를 했다. 물론 도깨비라는 드라마의 존재를 알지 못했으니 보았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주 난리가 난 도깨비를 계속 모를 수는 없었다. 명절 때 고향 집에 가도 누나들, 조카들이 도깨비 이야기만 해댔기 때문이다. (대부분 공유나 이동욱이 얼마나 멋진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뒤늦게 알게 되었고 IPTV로 이틀 만에 정주행을 했다. 그 후로도 가끔 다시 보기를 했다. 아마 전(全) 편을 다섯 번 정도는 보았을 것 같다.


도깨비에서 왕이 죽기 전에 김신(공유)에게 어린 동생을 당부하면서 남긴 말이 꽤 오래도록 귓가를 맴돌았다.


"돌보지 않음으로 돌보았다 전해달라"


대사가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대강 이런 뉘앙스였다. 처음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던 지나가던 대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몇 차례 다시 보기를 하면서 계속 그 대사가 귀에 걸렸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우리 아버지가 나를 딱 그런 식으로 키웠다. 다른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아버지는 나에 대해 칭찬도, 꾸짖음도 하지 않는 분이셨다. 공부가 얼마나 힘든지, 친구들과는 문제가 없는지, 요즘 고민이 무엇인지 등등 자상한 아버지들이 아들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살갑게 느낄 만한 질문들을 한 번도 하시지 않았다. 나에게 딱히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런 아버지가 항상 못마땅했다. 그렇다고 아버지에게 관심받기 위해 일탈을 저지를 만큼 용기도 없던 나는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두 아이의 아빠가 된 나는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하고, 자주 안아 주고, 자주 뽀뽀해 준다. 학교에서 친구들과는 잘 지내는지, 재미있는 일은 없었는지 항상 물어본다. 아이들이 매일 또는 한 주간 해야 할 숙제를 메모해 주고, 주간 학습을 출력해 중요한 일정이나 준비물에는 형광펜으로 칠해 주기도 했다.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돌봄으로 돌보았음을 너무 표시 나게 했다. 조언들이 어느새 잔소리가 되어 버렸다. 나도 모르게 잔소리만 늘어놓는 꼰대 아빠가 되어 버렸다.


잔소리는 잔소리를 낳았다. 아이들의 생활 전반에 잔소리 망을 펼쳐 놓고 어디 하나 걸리기만 해 봐라 하는 식이었다. 내가 세워 놓은 기준에 어긋나면 여지없이 잔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이미 말이 입 밖을 탈출하고 있었고, 머리에서도 그만해라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입은 멈추지 않았다.


잔소리도 중독이 되었다. 끊을 수 없었다.


"돌보지 않음으로 돌보았다"라는 말이 귀에 걸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나는 너무 많이 갔다. 내가 아버지에게 느낀 감정들을, 우리 아이들이 나에게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너무 아이들에게 바짝 다가갔다. 아이들에게도 그들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그 공간이 너무 넓어 혼자라는 외로움을 느꼈고, 준과 큐는 그 공간이 너무 비좁아 숨조차 편하게 쉬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조금 더 현명해야 했다.


6학년이 된 준과 첫 거리 라이딩을 했다. 그동안 집 밖에서 한 라이딩은 탄천이 전부였기 때문에 준도 나도 조금 불안했다. 집에서 용인에 있는 OO랜드까지 왕복 두 시간 거리였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는 차가 많은 일반도로를 라이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자전거를 잘 타던 아내도 큰 트럭이 몇 대 지나가자 중도에 포기한 코스였다. 준을 앞장서게 하고 나는 조금 거리를 두고 뒤에서 라이딩을 했다. 도로가 좁아 큰 트럭이나 버스가 오면 잠시 멈추라고 했다. 그 이외의 경우에는 뒤는 신경 쓰지 말고 앞만 보고 달리라고 했다. 준은 그래도 가끔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잘 오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딱 이만큼의 거리가 좋은 것 같았다. 오직 자기의 의지와 힘만으로 쉼 없이 페달링을 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라이딩에서 누군가 내 뒤를 보호해 주고 걱정해 주고 있음을 알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였다. 위험할 것 같으면 멈추면 된다. 어떻게 해야 페달링을 잘할지, 호흡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말하지 않아도 라이딩을 하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 조언은 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준과의 첫 라이딩은 무사히 끝이 났다. 아내도 중간에서 포기한 코스를 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준은 엄청 기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10분을 조금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준을 보니 다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졌다. 무관심이 아닌, 과도한 참견이 아닌 그 중간지점 어딘가를 찾아내야 했다.


우선은 좋은 아빠에 대한 집착부터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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