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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과 위스키와 나

<세상에 나쁜 술은 없다> 로얄 살루트

by 조이홍

3년 전, 본격적으로 '글'이란 걸 쓰기 시작하면서 나 자신과 한 약속이 있었다. '술' 이야기는 절대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20년 직장 생활은 술과 함께 한 애증과 애욕의 세월이었다. 술 덕분에 누구보다 행복했고, 술 때문에 더러는 불행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 동안 마치 외줄 타기 하는 남사당패의 어름사니처럼 행복과 불행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뒤뚱거렸다. 고지식한 성격 혹은 우둔한 성정 탓에 머릿속에는 오직 술 생각밖에 없었다(이렇게 이야기하면 알코올 의존도가 높은 사람 같지만 그런 의미는 절대 아니다). 90년대 말 혜성처럼 등장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크래프트 게임할 때도 멀티를 못해 쉽게 패하곤 했는데 삶에서도 멀티는 어려웠다. 한 우물만 내리 판 건 어쩌면 다른 재능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런 형편이니 좋아서 쓰는 글에서 만큼은 술과 관련한 족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오랜 기간 봉인되었던 '쓰고 싶다'는 욕구는 일상에서 글쓰기 소재들을 마구잡이로 토해냈고, 그 이야기들을 다루기에도 서툰 글 솜씨는 거친 숨을 뱉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빠른 박자로 쪼개지는 비트에 귀신이 랩 할 상황이 벌어졌다. 글쓰기 전용 노트북에 '세상에 나쁜 술은 없다'라는 생뚱한 이름의 폴더가 떡 하니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이런 폴더를 만들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아마도 거나하게 취한 어느 늦은 밤, 슈퍼 에고(초자아)가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간을 틈타 만들어 두었나 보다. "세상에 나쁜 술은 없다고?"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술은 인간을 해코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이롭다는 연구도 속속 발표되지 않던가. 결국 술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마신 인간이 다른 인간을 해코지할 뿐. 술은 뛰어난 대장장이가 벼른 '칼'과도 같았다. 대령숙수의 손에 쥐어진 칼은 산해진미를 차려내는 유용한 식도가 되지만, 강도의 손에 쥐어진 그것은 생명을 빼앗는 위험한 흉기가 되었다. 비단 술과 칼만 그런 것은 아닐 터였다. 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았으니. 아무튼, 한때 열렬하게 사랑했던 대상을 일부러 외면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생각이 깊어졌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생각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누군가 '세상에 이런 물건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할 때, 다른 누군가는 그런 물건의 시제품을 이미 만들고 있는 법이다. 어쩌면 그 사람만 모를 뿐, 이미 한창 유행 중인지도 모른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는 법이다. 글쓰기도 이와 비슷하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대부분 이미 세상에 나왔고, 남이 쓴 글을 읽으면 "아,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이런 거였는데…." 후회하기 십상이다. 술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동네 도서관만 해도 인문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심지어 문학적으로 풀어낸 술 관련 책들이 차고 넘친다. '내가 쓰면 다를까?', '사람들이 술 이야기에 관심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술 이야기가 재미있을까?' 이런저런 고민만 하다 1년이 훌쩍 지났다. 물론 그 사이 쓰고 싶었던 글을 쓰긴 했지만, 정작 잘 안다고 자부했던 술 이야기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가장 자신 있는 이야기마저 풀어내지 못하면 글쓰기를 멈출까 봐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바람 끝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던 어느 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소식이 들려왔다. 70년 재위 기간 동안 영국은 물론 전 세계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아온 여왕이 스코틀랜드 발모럴 성에서 향년 96세로 영면에 들었다는 슬픈 소식이었다. 여왕의 죽음을 애도하다 문득 과거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기억에 딸려 마치 고구마 뿌리처럼 여러 이야기들이 줄줄이 뽑혀 나왔다. 그 이야기 안에 술이 있었다. 남들 다 아는 이야기 말고 나만 아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대한민국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이 감히 영국 여왕과 닿을 인연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그 술 덕분에 실오라기 같은 연(緣) 하나를 억지로 걸치고 있었더랬다. 물론 상대는 전혀 모를 테지만 말이다.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가족들은 긴 이름 대신 그녀를 릴리벳이라고 불렀다) 공주가 대영 제국의 여왕이 되는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위스키, 왕의 예포 '로얄 살루트(Royal Salute)' 이야기다.

castle-6920853_1920.jpg <스코틀랜드 애버딘셔 지역에 위치한 영국 국왕의 여름 별장 발모랄 성, 출처 : Pixabay>

위스키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라도 로얄 살루트라는 이름이 생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행여 이름을 몰라도 패키지(병)를 보면 '아, 그거!' 하며 무릎을 탁 칠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회장님들이 즐겨 마시는 파란색 도자기에 든 술이 바로 로얄 살루트니 말이다. 부지런히 빈 병을 모아 방송국 작가나 소품 관계자에게 보낸 보람이 있었다. 또 이 제품이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을 기념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진 위스키라는 일화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너무 유명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일 테지만,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아버지 조지 6세가 1952년 2월 6일 서거하자 스물다섯 살의 릴리벳은 곧장 영국 의회로부터 왕위를 인정받는다. 다만 대관식은 조지 6세 장례식과 애도 기간이 끝난 뒤에 치르기로 했다. 아버지에 이어 할머니 메리 왕비마저 그녀 곁을 떠났지만, 할머니 유언에 따라 새 여왕의 대관식은 차질 없이 진행되어 1953년 6월 2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러졌다. 이때 스코틀랜드의 대표적 증류주 기업 중 하나인 시바스 브라더스(Chivas Brothers)社는 영국 해군이 국왕 주관 행사에서 왕실과 군주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21발의 축포를 쏘는 데서 영감을 얻어 최소 21년 이상 숙성한 최상의 위스키 원액만을 엄선해 여왕 즉위식 당일 병에 담았다. 패키지는 영국 전통을 따라 왕실 문장이 새겨진 우아한 초록빛 도자기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첫 번째 로얄 살루트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헌정하고, 나머지 제품들은 전 세계로 보내 대영제국에 새로운 여왕이 등극했음을 알렸다. 1920~30년대에 만들어 숙성시킨 최상의 원액과 고급스러운 패키지, 게다가 진짜 로얄(영국 왕실) 이미지까지 더해졌으니 이 위스키의 위상이 어땠을지 짐작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로얄 살루트의 인기가 하늘 높이 치솟자 시바스 브라더스社는 왕실 문장을 19세기 전통 문양으로 바꾸고, 21년 이상 숙성한 원액을 세심하게 블렌딩한 정식 제품을 출시한다. 패키지는 수작업으로 만든 갈색 도자기 병에 디자인은 16세기 에든버러 성을 지키는데 공헌한 ‘몬즈 메그’라는 거대한 대포의 포신을 형상화했다. 오늘날에는 영국 군주의 왕관을 장식하는 루비, 에메랄드, 사파이어의 색깔을 상징하는 적색, 청색, 녹색 도자기 3가지 버전으로 출시되는데 1960년에 청색, 1985년에 적색이 소개되었다. 가끔 세 가지 색깔 때문에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패키지 색깔만 다를 뿐 안에 담긴 위스키 원액은 동일한데 각각에 담긴 술맛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점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특정 색깔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O색보다 O색이 훨씬 부드러워." 하며 위스키 맛이 다르다고 철썩 같이 믿는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갈릴레이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그 심정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cannon-1002071_1920.jpg <에든버러 성의 몬즈 메그, 출처 : Pixabay>

70년 동안 군주의 삶을 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역대 영국 국왕 중 재임 기간이 가장 길었다. 2002년 재위 50주년(골든 주빌리), 2012년 재위 60주년(다이아몬드 주빌리), 2022년 재위 70주년(플래티넘 주빌리)을 맞았다. 19993년 여왕 재위 40주년(루비 주빌리)을 맞아 로얄 살루트 40년(크리스털 디캔터)을 선보였던 시바스 브라더스社는 이때 다가올 골든 주빌리를 맞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야심 찬 계획을 세운다. 시바스 브라더스社의 마스터 블랜더 '콜린 스콧(Collin Scott)'의 지휘로 로얄 살루트의 심장이자 하이랜드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스트라스아일라(Strathisla) 증류소' 내에 장기 숙성을 위한 특별한 저장고 'Royal Salute Vault'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깊이와 품격이 더해지는 최소 50년 이상된 위스키 원액들로 특별한 제품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매해 오크통에서 2%씩 증발하는 '천사의 몫(Angel's Share)'을 고려하면 50년 숙성한 원액은 최초 오크통에 담았을 때의 양과 비교해 30% 내외밖에 남지 않는다. 결코 경제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은 숙성 과정을 통해 얻어낸 정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이것이 바로 전 세계적으로 225병만 한정 판매한 '로얄 살루트 50년'이다. 여왕 대관식에 맞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21년처럼 50년도 즉위 50주년을 기념해 2003년 첫선을 보였다. 짙푸른 도자기 위에 런던 사우스 워크의 금세공협회 장인들이 순금과 순은으로 세공한 두 마리의 왕실 사자가 양옆을 지키는 모양이 장식돼 있고 순금과 순은으로 만들어진 마개로 품격을 더했다. 또한 각 병마다 고유번호를 새겨 소장 가치를 높였다. 한 병 가격이 무려 1,200만 원이었는데, 공식적인 자료는 아니지만, 빈 병 값만 500만 원에 달한다고 하니 패키지에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Royal salute 50_1.jpg

2003년 당시 로얄 살루트 브랜드 매니저로 로얄 살루트 50주년 국내 출시를 주관했다. 사실 말이 주관이지 허드렛일을 도맡았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세계적 규모의 이벤트라 영국 본사 및 아시아 본사(싱가포르)와 수시로 연락을 취하는 한편 국내 출시회도 함께 준비해야 했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큼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1953년 대관식 때와는 다르게 로얄 살루트 50년의 첫 번째 제품(No,1)은 여왕께 헌정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영국 왕실과 위스키 산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였지만, 아마도 2003년 당시에는 복잡한 사연이 있었던 듯싶다. 대신 No,1 제품은 1953년 5월 29일 영국이 초청해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뉴질랜드 산악인 에드문트 힐러리 경에게 헌정되었다. 공교롭게도 여왕이 즉위한 해에다 등정 날짜도 대관식과 엇비슷하다. 국내에 들어온 20병 중 No.77 제품을 산악인 엄홍길 씨께 헌정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때론 죽음과 맞닥뜨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한국인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등정한 엄홍길 씨 역시 '최고의 명예와 성공에게 바치는 최고의 찬사'를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허락할 때만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그의 말이 요즘도 가끔 생각난다. 게다가 더욱 감동스러운 건 엄홍길 씨가 헌정받은 No,77 제품을 좋은 일에 써달라며 쾌척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기증된 제품은 롯데백화점을 통해 자선 경매에 부쳐졌고 최고 낙찰가(1,100만 원)와 자체 기부금을 합쳐 아름다운 가게에 전달되었다.

Strathisla 증류소.jpg <스트라스아일라 증류소>

750ml 사이즈 로얄 살루트 50년의 한 병 가격이 1,200만 원이므로 위스키 샷 글라스(30ml)에 가득 따르면 한 잔 가격이 얼마나 할까? 단순 계산하면 48만 원이 나온다. 웬만한 위스키 한 병 값보다 비싸다. 한 잔 가격이 이 정도니 남산 자락에 있는 한 호텔에서 소수의 고객만 초청해 출시회를 진행할 때는 단 1초도 한눈팔 겨를이 없었다. 위스키 신제품 출시 행사의 꽃은 제품 언베일링(깜짝 소개)과 해당 제품을 맛보는 것이므로 고가라는 점은 둘째치고 더 구하려야 구할 수 없는 한정판 위스키를 시음할 순간이 다가오자 어찌나 긴장되던지 정말 애간장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사전에 호텔 지배인께 숙련된 호텔리어가 잔을 서빙할 수 있도록 부탁해 둔 것이 신의 한 수였다. 튤립 형태의 샷 글라스에 위스키를 직접 따랐는데 얼마나 손이 벌벌 떨리던지 구경 나온 호텔 직원분들이 긴장하지 말라고 격려해 주기도 했다. 은빛 트레이에 올려진 위스키 잔들은 햇빛을 잔뜩 머금은 것처럼 황금빛으로 불탔다. 담당자라도 맛을 음미할 기회가 없었는데, 술을 따르며 맡은 향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했다. 어찌나 달콤한 과일 향과 풍부한 가을꽃 향이 나던지 나도 모르게 군침을 꿀꺽 삼켰다. 모두가 노력한 덕분에 출시회는 무사히 끝났고, 로얄 살루트 50년과 함께 한 4개월의 대장정도 막을 내렸다. 마케터로서 궁극의 제품을 출시한 엄청난 경험이었지만, 개인적으로도 영국 왕실에 대해 공부하게 된 좋은 기회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내면 좋을 테지만, 씁쓸한 일화가 하나 더 남았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한 기초자치단체장 일가의 비리와 관련해 경찰서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로얄 살루트 50년과 관련된 사건이었다. 나중에 뉴스를 통해 정확한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의 집에서 로얄 살루트 50년(외에도 고가의 위스키와 현금 다발)이 발견되었다. 주류 유통 구조상 제조사(수입사)는 주류도매상과 거래할 뿐 소비자에게 제품을 공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누가 어디에서 해당 제품을 구입했는지 브랜드 담당자라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참고로 그의 집에서 발견된 제품은 No,73이었다. 영국 여왕의 재위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한 위스키가 이권과 인사 청택을 위한 뇌물로 사용되었다니 왠지 마음이 헛헛했다. 결국 재판부는 그의 혐의를 인정해 유죄를 선고하고 로얄 살루트 50년은 몰수를 명령했다. 올해 열아홉 살 생일을 맞은 No,73은 적막한 국고 어딘가에서 홀로 쓸쓸한 생일을 맞이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나쁜 술은 없다. 나쁜 술을 만드는 것도, 술을 나쁘게 이용하는 것도 모두 우리 인간이다. 마지막 반전은 No.73을 뇌물로 상납한 부동산업체 대표가 자신이 진짜 위스키는 마시고, 가짜 위스키를 빈 병에 담아 선물했다고 검찰 조사 과정에서 밝혔다는 사실이다. 진실은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로얄 살루트와 시바스 리갈의 고향인 스트라스아일라 증류소는 아일라 강의 강둑에 있는 중세 교역 도시 키스(Keith)에 있다. 조지 테일러와 알렉산더 밀튼이 1786년 밀톤 성 근처에 설립했던 밀톤 증류소를 전신으로 하는 이 증류소는 하이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증류소이다. 아름다운 쌍둥이 파고다와 자갈로 장식된 안들, 수차와 고풍스러운 화강암 건물이 유명하다. 2005년 이곳을 방문했는데 다른 현대식 증류소에 비해 규모는 다소 작았지만 스코틀랜드 전통 증류소의 정취를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이곳에서는 12세기 도미니크회 수도사들의 수원이었던 브룸힐 샘의 물을 사용해 위스키를 만든다. 위스키 재료의 3요소인 물, 보리, 효모 가운데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스카치위스키를 세계적인 '상품'으로 만든 배경에는 스코틀랜드의 맑고 깨끗한 물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복잡한 장치(보일 볼)가 달린 소형 증류기는 더 풍부하고 복잡한 원액을 생산해낸다. 이렇게 생산된 원액은 아메리칸 오크 익스 버번과 유로피언 익스 셰리 캐스크에 담겨 전통적인 더니지 저장고에서 숙성한다. 스트라스아일라 증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1878년 빅토리아 양식으로 지어진 작은 성이 하나 있다, 이곳은 시바스 브라더스社가 특별한 고객을 접대하는 일종의 게스트하우스인 린(Linn) 하우스다. 이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푹신한 침대와 빅토리아풍 욕조, 그리고 온갖 희귀한, 심지어 판매되지 않는, 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위스키 라이브러리'가 있다. 물론 모두 공짜다.


<이미지 출처 : Pernod Ricard Korea 홈페이지, Scotchwhisk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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