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수업
어린 시절 나에게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good boy snydrome)가 있었다. 물론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하지 말라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의 주요 원인은 내면의 욕구나 좋고 싫음의 목소리를 듣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데 (by 위키백과) 내 경우에는 부모님, 특히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칠만한 어떤 행동도 하고 싶지 않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 잠깐이지만 뭔가를 훔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했던 적이 있었다. 도벽이었다.
학교 앞 문방구나 동네 구멍가게에서 장난감이나 사탕 같은 것을 훔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그럴 만큼 배짱이 있는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번번이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봤는데 막상 가게에 들어가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이 떨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사람이 죄짓고는 못 산다고 주인아저씨가 나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딱 한번 성공을 했다. 아버지의 지갑에서 몰래 천 원을 훔친 것이다. 아버지는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30분쯤 운동을 하셨다.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운 건 아니었다. 마침 방 안에 아무도 없었고 순식간에 그 일이 일어났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억지로 진정시키고 아버지 지갑에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낸 것이다. 당시 아버지 지갑에는 빳빳한 천 원권 지폐가 열 장 있었다. 그 긴박한 순간에 돈을 셀 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름 완벽한 범죄를 위해서 지폐 몇 장이 있는지 확인을 했다. 어린 나는 열 장 정도 있으니 한 장 정도 없어져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덜컥 일을 저질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예닐곱 장 정도면 한 장 빠져도 모를 수 있지만 완벽한 숫자 10에서 한 장이 빠지는 것은 금방 눈치챌 수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만 원권을 일부러 천 원권으로 바꾼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어린 나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작 천 원이 생겼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당시 국민학생에게 천 원이면 못할 것이 없는 큰 금액이었다. 세상도 살 수 있을 만큼 큰돈이었다. 그래서 더욱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훔치고 싶다는 욕망은 있었지만 쓰고 싶다는 욕구는 없었나 보다. 물론 죄책감도 한몫을 했다. 다시 아버지 지갑 안에 넣어 놓을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만 흘러갔다.
불안에 떨며 며칠을 보냈다. 확신하건대 아버지도 천 원짜리 한 장이 없어졌다는 것을 이미 눈치채셨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는 것이 더 불안했다. 오락실 사건으로 이미 종아리 찜질을 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불안감은 점점 사라졌고 일상의 나로 돌아오게 되었다. 지갑 사건 이후로 더 이상 누구의 물건에도 손을 대지 않게 되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무언가를 훔치고 싶던 내 욕망을 날려버린 것은 체벌도, 호된 꾸짖음도 아니었다. 잘못한 사실을 알고도 눈감아준 아버지의 배려 덕분이었다. 이것이 아버지의 큰 그림이었는지 여쭤보지 않았으니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문득 김어준 총수가 나꼼수에서 자주 했던 말이 생각난다. 진정한 힘은 아는 것을 말하지 않고 그것을 덮어줄 때 생긴다는 바로 그 말. 물론 나꼼수에서는 아주 나쁜 예로 쓰였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겠다. 요즘 한창 질주하고 있는 준, 큐 형제에게도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 중이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가슴이 좀 찡했던 것이 있다. 아버지 지갑에 겨우 만 원 밖에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말단 경찰 생활을 30여 년 하시면서 아버지는 항상 검소하고 아끼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분이셨다. 박봉에 6남매를 키우시느라 당신을 위한 투자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하셨을 것이다. 나이를 먹고 가족을 이루고 살다 보니 그때 아버지의 얇은 지갑이 생각났다. (그 얇은 지갑에 손을 대다니...) 우리 아버지들 세대는 아마도 열에 아홉은 이런 비슷한 삶을 사셨을 것이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표현하지 않으셨듯이, 희생이라고 생각지도 않으셨으리라.
매일 집에 안부 전화를 드린다. 어머니와 통화를 많이 한다. 주로 전화를 어머니가 받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버지가 받으셔도 몇 마디 안 하고 어머니를 바꿔달라고 한다. 이제는 아버지와도 대화가 가능한 나이가 된 것 같다. 오늘은 아버지와 긴 대화를 나눠봐야겠다.
<표지 그림은 아내의 미완성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