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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Nov 10. 2022

2010년 남아공월드컵,
지옥과 천국을 오가다

강남에 등장한 두 명의 캡틴박

펜실베이니아대 인류학과 교수인 패트릭 E. 맥거번은 역사와 자연과학을 결합해 옛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마셨는지에 관해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자신이 쓴 <고대의 와인>이라는 책 말미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왜 전 세계 문화권에서 와인 사랑이 식지 않고 수천 년간 계속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질문에 그는 '알코올은 보편적인 마취성 약물이고, 그중 와인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단순한 유기화합물(에탄올)이 고도로 농축된 물질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와인과 맥주는 누가 먼저인가를 두고 여전히 설전이 오가지만, 문명 발상지를 중심으로 비슷한 시기에 알코올음료를 발견, 또는 만들어 마셨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알코올이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했다. 고통을 줄이고 감염을 막고 질병을 치료했다. 증류주가 초기에 치료제로 사용되고, 맥주가 오염된 런던 식수를 대신해 아이들도 마시는 음료였다는 사실이 단적인 예이다. 심리적, 사회적 이점 역시 분명한데, 일상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사회적 교류를 원활하게 하며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알코올의 가장 극적인 효과는 향정신성 작용으로, 우리 뇌가 알코올의 자극을 받아 그것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고대나 현대를 막론하고 신(神)이나 조상과 접촉하는 의식을 치를 때 알코올음료(술)가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동물과 달리 '추상적 세계'를 인식하고 서로 협력하게 되는 단초가 알코올음료였다는 가설이 마냥 허황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물론 '적당량'을 마셔야 한다는 전제가 따라붙지만, 알코올음료는 초기 인류부터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왔다. 때로는 친구나 연인으로서 또 때로는 스승으로서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고독의 위협으로부터 인간을 지켜주었다.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토대야말로 오늘도 애주가들이 일상을 마무리하기에 앞서 술 한잔을 들이켜는 이유가 아닐까. 인간이 오용하거나 남용하지 않는 한 술은 결코 나쁘지 않다. 


여기에 더해 애주가들의 눈이 번쩍 뜨일만한 뉴스가 또 있다. 패트릭 E. 맥거번의 또 다른 책 <술의 세계사>에 따르면 강력한 무선전파를 이용해 은하계를 탐구하는 천문학자들이 알코올이 지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은하수 중심부에 있는 구름 궁수자리 B2N은 지구에서 대략 2만 6000광년 떨어져 있는데, 이곳에 수십 억 킬로미터에 걸쳐 메탄올, 에탄올, 비닐 에탄올로 구성된 엄청난 크기의 알코올 구름이 펼쳐져 있다. 이 구름을 떠다 술을 만들려면 어지간히 장수해서는 부족할 테지만, 기민한 과학자들은 화학적으로 잘 반응하는 이중결합 구조인 비닐 에탄올에 주목했다. 한 개의 비닐 에탄올 분자는 또 다른 분자와 연결되고 점차 복잡해지면서 생명체의 재료가 되는 유기 화합물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지구에 어떻게 생명체가 출현했는지 또 다른 가설을 제시하며, 한편으로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가능성도 담고 있다. 우주를 가로지르는 얼음으로 뒤덮인 혜성의 머리 부분에 붙어 있던 탄소 중합체가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지구를 포함한 행성에 일종의 유기체 수프를 퍼뜨리고, 거기에서부터 원시 생명체가 출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침 지구는 날씨를 포함해 모든 조건이 딱 맞아떨어져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는 인류의 조상이나 원숭이가 알코올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근원에 알코올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상만으로도 애주가의 한 사람으로 왠지 가슴 한 구석이 후끈 달아오른다. 태초에 알코올이 있었다니….


알코올이 가슴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으니 이번에는 알코올이 심장을 얼릴 뻔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마침 월드컵이 열흘 남짓 앞으로 다가왔으니, 마음이 편치 않은 몇몇 뉴스에도 불구하고, 지구촌 축제에 편승해 볼까 한다. 90년대 이후에 태어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한 2002년 월드컵을 잊지 못할 것이다.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전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어 한 목소리로 응원했던 경험은 우리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전례 없던 월드컵 4강 진출도 대단했지만, 모두 한 마음으로 응원했던 경험은 황홀하기까지 했다. 그토록 많은 인파가 모여도 사고 한번 일어나지 않았고, 응원이 끝나면 자발적으로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했으니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위대한지 새삼 깨닫는 계기도 되었다. 2002년 월드컵이 짜릿한 추억을 선사했다면 2010년 월드컵은 지금 생각해도 목덜미가 서늘한 최악의 기억을 선물했다. 직장 생활하면서 다양한 부침(浮沈)을 경험했지만, 단언컨대 이때가 정말 최악이었다. 강남대로에 등장한 두 명의 '캡틴박' 때문이었다. 


2010년 당시 임페리얼이라는 로컬 위스키 제품을 담당하면서 대대적인 월드컵 앰부쉬 마케팅을 진행했다. 2009년부터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주장 박지성을 브랜드 앰버서더로 기용해 'We Never Go Alone'이라는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2010년 월드컵을 맞아 더욱 공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소비자 행사를 통해 '박지성 응원 원정단'을 선발, 남아공에 보내고 박지성 선수가 직접 선택한 위스키 원액으로 만든 '임페리얼 15 박지성 리미티드 에디션'도 출시하는 등 대규모 캠페인을 진행했다. 위스키는 TV 광고가 허용되지 않아 신문, 잡지, 온라인, 옥외 광고에 엄청난 비용을 투입하기도 했다. 한정판 반응은 뜨거웠고 광고와 원정단도 입소문을 타 브랜드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모든 일이 너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복귀하는데 익숙한 얼굴이 선명하게 인쇄된 버스광고가 눈앞을 휙 스쳐 지나갔다. 임페리얼도 버스광고를 진행하던 때라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다시 확인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심장이 얼어붙었다. "왜, 캡틴박이 경쟁사 광고에 등장하지?" 2010년은 로컬 위스키 양대 산맥인 임페리얼과 윈저가 1위 자리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할 때라 총성 없는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그런 민감한 시기에 임페리얼 브랜드 엠버서더인 박지성 선수의 얼굴이 경쟁사 광고에 등장했으니 회사가 발칵 뒤집힐 게 뻔했다. 어쩌면 소비자에게는 관심 밖의 일일지도 모르지만, 담당자 입장에서는 정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자칫하면 수십 억의 광고비가 허투루 쓰일지도 몰랐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마음을 추스르고 사태의 전말부터 파악하는 게 시급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광고 대행사 AE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쟁 관계에 있는 두 브랜드에 동시에 모델로 등장하는 사례는 광고계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광고 대행사에서 파악한 사실은 이랬다. 당시 경쟁사였던 디아지오는 글로벌 본사 차원에서 박지성 선수가 소속되어 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공식 후원했다. 이 후원 계약에 따르면 디아지오는 지역에서 맨유 선수 세 명의 초상권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당시 경쟁 브랜드였던 임페리얼에서 박지성 선수를 모델로 활용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진행하니 이에 대한 카운터 어택으로 한국에서 맨유 선수 3명의 초상권을 급하게 사용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는 정당한 권리였고 월드컵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면 경쟁사 역시 놓치면 안 되는 기회임은 분명했지만, 당시로서는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왜 하필 맨유란 말인가, 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파악한 정보를 중역회의에 보고했더니 우려와는 달리 계획한 대로 차질 없이 진행하자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계약 파기'를 걱정했는데 혼자만의 기우였다. 오히려 한국 대표팀이 해외 원정에서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하면서 2002년의 열기가 되살아나 박지성 선수와 계약을 연장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해피 엔딩이지만, 2010년 당시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지옥문 앞을 오갔다. 식음을 전폐했음은 말할 것도 없고….

<임페리얼 15 박지성 리미티드 에디션과 패키지>

사실 임페리얼이 월드컵을 목전에 두고 갑자기 축구에 관심을 가진 건 아니었다. 임페리얼의 주 소비층이 30~40대 직장인이었기에 2006년부터 한 언론사를 통해 꾸준히 '직장인 축구대회'를 후원했다. 박지성 리미티드 에디션을 만들 때도 영국까지 날아가 캡틴박이 직접 위스키 원액을 선별하게 했다. 월드컵 기간 동안에는 대표팀 경기 결과(승패)에 따라 서로 다른 버전으로 광고 이미지도 준비했다. 박지성 선수도 바쁜 시간을 쪼개 한정판 출시 행사에 얼굴을 비춰주었다. 1년 동안 꾸준히 준비한 프로젝트였고 영업 측면에서나 마케팅 측면 공히 좋은 성과를 거뒀다. 게다가 그해 연말에는 페르노리카 그룹 내에서 진행하는 'Best Practice'로 선정되었고, 전 세계에 성공 사례로 소개되기까지 했다. 기본에 충실했더니 위기가 곧 기회가 된 셈이었다. 비록 그해 둘째가 태어나 예정되었던 남아공 원정단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월드컵이 끝나고 박지성 선수 집에 초대되는 행운까지 누렸으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역시 영웅 서사에는 위기가 있어야 결말이 돋보이는 법. 이번 월드컵도 16강 진출이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죽음의 조'라 불리는 E조가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일본 어떡해!). 여러모로 슬프고 힘든 시기를 이겨나가고 있는 국민들에게 대표팀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국민들도 열심히 응원할 테니 말이다. "Korea Team Fighting, We Never Go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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