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결심

by 조이홍

날 때부터 타고난 '결심러'였다. 누군가는 '습관성 결심증'이라고도 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어릴 때부터 '결심'하기를 밥 먹듯 했다. '내일부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지', '다음 주부터 열심히 공부해야지', '방학 땐 계획표 세워서 착실하게 살아야지' 등등 생의 주기별로 지침이 되는 이정표들을 꾸준히도 세웠더랬다. 고백건대 그 결심들을 똑 소리 나게 실천했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계획을 세우는 것과 실천하는 것 사이의 거리는 지구와 화성 사이 거리만큼 멀었다. 지금까지 세운 계획의 절반, 아니 10%만 실천했더라도 한국의 '일론 머스크'가 되어 있을지도 몰랐다. 솔직히 계획을 세우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일종의 '안심 보험'이었다고나 할까. 무언가를 결심하면 적어도 그날, D-day 전까지는 조금 게을러도, 빈둥거려도 마음이 비단길을 걷는 듯 편안했다. 어차피 난 내일부터, 다음 주부터, 방학 때부터 다시 태어날 사람이니 그때까지만이라도 좀 '막' 살아도 괜찮지 싶었던 것이다. '막 산다'고는 해도 뒷골목에서 껌 좀 씹던 불량배들의 일탈이라기보다는 그저 금단의 땅이던 만화방이나 오락실에 발 딛는 것뿐이었지만, 금지된 유혹만큼 동심을 흔드는 것도 없었으니 금기를 마음껏 즐겼다.


이런 허울뿐인 결심러라도, 마음먹은 일을 즉각 실천에 옮길 때가 있었다. '헤어질 결심'이었다. 다른 결심이 +(플러스)를 지향한다면 헤어질 결심은 -(마이너스)를 향했다. 생에 첫 헤어질 결심은 중학교 1학년 입학 직전, 마지막 국민학교 겨울 방학 때였다. 대상은 국민가수 이선희. 'J에게'라는 명곡으로 1984년 제5회 MBC 강변가요제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이선희 누나는 어린 나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머리에 떠올리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첫사랑이었다. 그때부터 꼬박 4년 동안 한 사람만을 바라보았다. 당시에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연예인 사진을 50~200원에 팔았더랬다. 공병을 주워 팔거나, 준비물 살 돈을 부풀려(어머니 죄송합니다. 불효자는 웁니다) 비자금을 조성해 보이는 족족 누나 사진을 사모았다. 몇 년 지나자 사진 앨범으로 3권이나 되었다. 사진첩을 넘기면 밥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그러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게 되었고 문득, 정말 아무런 계기도 없이, 중학생이 연예인 사진이나 쳐다보고 있어서 되겠어,라는 생각이 뒤통수를 냅다 휘갈겼다. Only one,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결심을 했다. 비록 상대는 내 존재조차 모르고, 나에게 '나쁜' 행동을 한 적도 없는데 일방적으로 이별통보했다. 앨범에 있던 사진을 한 장 한 장 꺼내 모은 뒤 불살라 버렸다. 돌아올 다리를 불사르고 적진으로 향하는 장수의 마음이었다. 장롱 깊은 곳에 넣어둔다면 금방 다시 꺼내 볼 게 분명했다. 헤어질 결심으로 뼈를 깎는 성장통을 겪었지만, 덕분에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다. 아픔만큼 성숙했다.


누나의 불탄 사진이 재가 되어 사라지기도 전에 시나브로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다. 1987년 가요계의 신데렐라로 화려하게 데뷔한 이지연 누나였다. '그때는 어렸나 봐요', '난 아직 사랑을 몰라', '바람아 멈추어다오' 등등 불멸의 히트곡을 남긴 청순한 누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이번에는 직접 만나 사인도 받고 악수까지 나눴다. 클리셰지만 누나와 맞잡은 손을 일주일 동안 씻지 않았다. 사진을 모아 둔 앨범이 4권이나 되었다(어머니, 죄송합니다. 중학생 참고서 사실 그리 비싸지 않았답니다!). 그러나 3년 후, 필연적으로 고등학생이 되어야만 했던 질풍노도의 소년은 두 번째 헤어질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이번에도 돌아올 다리를 불태웠다. 시련의 아픔도 익숙해지는지 처음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그 후로도 헤어질 결심을 여러 번 실천에 옮겼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스타크래프트'와의 이별이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유행이 한참 지난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아내와 결혼할 즈음에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평일에는 회사일에 쫓겨 못하더라도 주말에는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아내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허니문 기간'이라 참는 눈치였다. 한바탕 신나게 우주 전쟁을 벌이던 때 아내가 첫째 아이를 가졌다. 철저한 계획과 준비에 따른 결과였다. 곧 애아빠 될 사람이 컴퓨터 앞에 쪼그리고 앉아 게임이나 하면 되겠어?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데 혼자서 끙끙 앓다 결국 습관성 헤어질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컴퓨터에서 게임을 삭제하고 행여 참지 못하고 다시 설치하지 않을까 CD도 쓰레기통에 처넣고 말았다. 남편에서 아버지로 신분 이동하는 데 게임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결심한 그날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깝다는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이 좋은 걸 왜 그동안 안 한 거야 싶었다. 잠자리에 들어 천장을 바라보는데 SCV가 그렇게 미네랄을 캐고 다녔다. 잠 못 이루는 밤 비가 내렸다.


오늘의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결심이었다. 생애 주기별 결심, 특히 헤어질 결심 덕분에 오늘의 내가 나답게 있으리라 믿는다. 물론 지금도 스마트폰 갤러리에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이 저장되어 있고(하늘 같은 사모님, 미안합니다! 그래도 당신 사진이 가장 많잖아욧!), 둘째 아이와 가끔 PC방에 들러 스타크래프트를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분명 그때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다. 헤어지길 참 잘했다.


아이들에게 애착 인형이 하나씩 있다. 특히 첫째 아이는 '세바스찬'이라고 이름 붙여준 토끼 인형을 무려 네 마리나 가지고 있을 정도로 특별한 관계였다. 닳고 닳은 인형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여전히 침대 한편에 가지런히 모셔두었다. 얼마 전까지만 그랬다. 첫째 아이가 세바스찬과 헤어질 결심을 했다. 그래, 이제 그럴 나이도 되었지 싶었는데 그 빈자리를 재빨리 아이돌 그룹이 꿰찼다. 늦게 배운 도둑이…. 아니다, 겪어봐야 안다. 직접 해보고 넘어져 보고 아파봐야 안다. 생에 주기에 가장 필요한 건 헤어질 결심이란 걸 말이다. 고맘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걸.


<이미지 출처 : 영화 '헤어질 결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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