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도로 위 운전,
네 죄를 사하여 주겠노라.

by 조이홍

운전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운전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후좌우 어느 쪽도 방심할 수 없으니 잠시라도 한눈팔았다가는 큰일 납니다. 물론 음악을 듣거나 라디오를 들을 수는 있습니다. 20대 후반에는 지방에서 근무할 때라 퇴근할 때(자정 넘어 퇴근하니 가능했지만) 차창을 활짝 열고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스트레스가 남아 있을 리 없었습니다. 스트레스가 뭐야 싶었죠. 요즘 그랬다가는 신고당하거나 SNS에 민폐남이라고 도배되겠죠. 그러니 운전하며 얌전히 라디오(음악) 듣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습니다.


대중교통수단, 특히 버스를 좋아하는 건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열에 대여섯은 꾸벅꾸벅 졸기 십상이지만, 그래도 회사 다니면서 한 달에 대여섯 권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건 다 버스 덕분이었습니다. 다들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독야청청 책을 읽는 묘한 쾌감도 일었습니다. 잘난 척까지는 아니지만 '난 남들과 달라' 속으로 혼자 뿌듯했습니다. '읽기 강박'까지는 아니더라도 버스에 있을 때 뭔가를 읽지 않으면 그렇게 시간이 아까울 수 없습니다. 브런치를 포기하지 못하는 건 절반은 '읽기' 위함입니다. 사실 웬만한 대도시 도로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서울은 말할 것도 없지요. 도로(차도)란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땅 위에 만들어 놓은 길'이라지만 어디 그런가요. 굼벵이 다니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지요. 느릿느릿 속이 터질 지경입니다.


그 꽉 막힌 도로 위를 운전하고 다닐 일이 생겼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휴대폰에 저장해 듣기도 하고 팥캐스트로 시사 뉴스를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때문인지 한 시간이 최대치입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너무 아깝습니다. 책도 읽지 못하니 정말 미처버릴 지경이었지요.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을 쓰자, 아니 글을 말하자라는 표현이 정확하겠지요. 근래 쓰고 있는 단편이 아이디어 고갈로 막혀 2주째 한 글자를 쓰지 못했습니다. 그 소설을 써보자 싶었습니다. 지금 주인공이 처해 있는 상황이 이러저러한데 다음 사건을 위해 어떤 복선을 깔아놓을지, 극적 전개를 위해 어떤 요소들을 더하고 어떤 요소들을 뺄지 혼자서 미친 사람처럼 떠들었습니다. 어, 그런데 주저리주저리 떠들다 보니 정말 막힌 부분이 시원하게 뚫렸습니다. 왜 진작 이렇게 하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혼자서 신났습니다. 순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나란 인간, 왜 이렇게 적응을 잘하는 걸까. 아니 원래 인간이란 종이 환경에 잘 적응해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지만요. 요즘은 적응을 넘어 지배하려고 하니 문제지요. 아무튼 스스로 깜짝 놀랐습니다. 더 이상 운전을 싫어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녹음을 해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녹음한 걸 들으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러니 이제 바빠서 글 못쓰겠다는 핑계는 대지 못할 것 같습니다. 누가 물어본 건 아니지만 혼자 그렇게 면죄부를 주었거든요.


성공하는 사람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실패하는 사람은 핑곗거리를 찾는다. 뭐 이런 교훈적인 말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요즘 들어 종종 핑곗거리를 찾는 저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적어도 글쓰기에서는 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제 글을 기다리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꾸준히 쓰겠습니다. 혹시 오늘 여러분은 안 되는 이유를 찾느라 애썼나요? 핑계 말고 되는 방법, 할 수 있다는 태도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그럼 정말 아주 조금, 티스푼 하나쯤 채운 '자신감'이 생긴답니다. 그거면 글쓰기에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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