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필 공모전 낙선작
모처럼 늦잠 자려고 단단히 벼른 주말 아침, 웬일로 눈이 번쩍 뜨인다, 출근하는 날에는 억지로 뜨려고 해도 안 떠지더니 심보 고약한 청개구리가 따로 없다. 이른 아침부터 안개가 자욱하다 싶더니 시곗바늘이 8시를 가리키자 거짓말처럼 바깥 풍경이 총천연색으로 또렷해졌다. 어느 틈엔가 블라인드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가을 햇살이 거실 한편에 떡하니 똬리를 틀었다. 촉촉한 가을비가 내린다더니 오보였나 보다. 모닝커피 한잔 내리려다 멈칫했다. 아침 햇살이 좋은 데다 덤으로 시간도 벌었으니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일을 끝내야겠다 싶었다. 곤히 자고 있던 둘째 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고사리 같은 손이라도 이런 날에는 제법 도움이 되었다. 경기도 외곽의 한적한 시골에 자리 잡은 아파트라 입주민을 위해 텃밭을 제공했다. 고작 한 평, 손바닥만 한 텃밭이라도 이웃과 나눠 먹을 만큼 채소들을 길러냈다. 싱싱한 쌈 채소 한 다발과 갓 딴 오이 두 개를 위층과 아래층으로 아이 편에 들려 보내면 빈손으로 돌아오는 법이 없었다. 층간 소음이 주먹다짐이나 법적 분쟁으로 번진다는 뉴스는 우리에겐 먼 나라 이야기였다. 이웃사촌까지는 아니더라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눈을 맞추고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엄마 손을 꼭 잡은 다섯 살 아이가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비록 거실을 운동장 삼아 시도 때도 없이 뛰어다니지만 말이다. 아래층에선 우리 아이들이 그럴 터였다. 너무 뜨거워 데일 염려도, 너무 차가워 꽁꽁 손이 얼어버릴 염려도 없는 적당한 이웃 간의 거리가 마음에 들었다. 텃밭의 쓰임이 이 정도면 적당하다 싶었다. 초록으로 무성했던 여름 농사를 마치고 일주일간 휴지기를 가진 후, 올해 마지막 농사로 배추 몇 포기와 무 씨앗을 심었다. 바로 그 배추와 무를 수확하기로 했다.
쌈 채소나 오이, 방울토마토와 달리 배추와 무는 길러내기 어려운 채소였다. 10년이나 텃밭을 일궜지만, 가을 농사는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특히 올해는 무럭무럭 자라는 이웃 텃밭의 배추와 무에 비해 한 뼘 이상 덜 자란 녀석들에게 내심 실망하던 참이었다. 쉬는 동안 흙을 솎아주고 잔돌도 골라내고 겉흙에 계분도 충분히 뿌려주었더랬다. 이웃 텃밭과 비교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눈길이 쏠렸다. 그럴 때마다 뾰족한 마음이 잘못도 없는 여리여리한 배추와 무를 향했다. 무언가 잘못됐다면 농사에 서투른 내 탓일 터였다. 내다 팔 상품도 아니고 정 안되면 무는 채수 낼 때 쓰고 배추는 뽀얀 속살만 골라 이웃과 나눠 먹으리라 마음을 고쳐먹는 데 장장 한 달이나 걸렸다. 이미 절정을 넘긴 빛바랜 단풍이 가을바람에 우수수 떨어졌다. 잠이 덜 깬 아이를 재촉해 뒷산 자락에 있는 텃밭에 서둘러 올랐다.
아이 손을 잡고 텃밭에 도착한 순간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두 주전까지만 해도 한 평 텃밭에 다소 빈약할지언정 보기 좋게 자라던 배추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무려 여섯 포기나 심었는데 겨우 한 포기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녀석이 다녀간 게 분명했다. 고라니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몇 주 동안 텃밭이 시끌시끌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고라니들이 아파트 텃밭을 다시 습격했다. 아마도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먹을거리가 부족한 모양이었다. 이미 몇 해 전에 아파트와 동네 뒷산을 구분하는 경계에 심어 놓은 울타리 위아래로 철조망을 덧씌웠다. 살을 찢는 날카로움도 굶주린 고라니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올수록 고라니들은 더 자주 텃밭을 습격했다. 이웃 텃밭들은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한 대비책으로 자체 울타리를 두르거나 소형 비닐하우스를 설치했다. 고즈넉한 텃밭 풍경이 마음에 들었는데, 갈수록 삭막해졌다. 우리 텃밭만큼은 있는 그대로 두겠다고 다짐했는데 마침내 피해자가 되었다. 남은 배추 밑동을 찬찬히 살펴보니 고라니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야무지게도 먹어 치웠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마지막 남은 배추가 가장 통통하니 실했다. 우리 텃밭을 습격한 고라니는 염치를 좀 아는 녀석인가 싶었다. 놀란 토끼 눈을 한 둘째 아이가 "어떡해, 아빠?"를 연신 외쳤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주위를 둘러보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녹색 철망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고집스러워 보였다. 기왕 이렇게 된 것, 마지막 남은 배추와 무청들도 고라니에게 양보하기로 결심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의 영역을 침범할 텐데 주린 배로 돌아가는 게 마음 쓰였다. 고라니들이 아파트 단지까지 내려와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먹을거리를 찾아 길거리를 헤매다 ‘로드킬’을 당하는 건 너무 비참했다. 마침 얼마 전 인터넷에서 우리나라에는 개체수가 많아 고라니를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유해조수'로 지정했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멸종위기종에 속한다는 기사를 읽은 참이었다. 이대로 방치하면 언젠가 고라니도 사라지게 될지도 몰랐다. 게다가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난 이유도 고라니 탓은 아니었다. 인간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숲이 사라지고 보금자리를 잃은 동물들도 하나둘 사라졌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무너진 것이 한몫했을 터였다. 결국 책임은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마지막 배추를 집에 가져갈 염치가 없었다.
아이 주먹만 한 무 여남은 개를 챙기고 무청은 고스란히 남겨두었다. 속이 꽉 찬 배추와 파릇한 무청이 추운 겨울 허기진 고라니 가족의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되기를 바라며. 주말에는 늦잠 자게 내버려 두라며 떼쓰다 억지로 끌려온 아이가 웬일로 아빠 좀 멋지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제 알았냐며 머리를 쓰다듬는데 배가 고프다고 얼른 집에 가잔다. 고라니 걱정하느라 정작 내 아이 주린 배를 눈치채지 못했다. 한창 자랄 때라 돌아서면 배고프다고 징징대는 아이인 걸 깜빡했다. 비로소 올해 농사가 막을 내렸다. 이제 한 평 텃밭도 기나긴 겨울잠에 들 터였다. 당분간 이곳에 들르지 않으리라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시렸다. 친한 친구와 헤어지는 기분이랄까. 올 한 해도 온갖 푸성귀들을 길러내느라 고생했다고, 고마웠다고 인사하고 발길을 돌렸다. 길고 긴 겨울이 와도 한 평 텃밭이 그리 적막하지는 않을 테니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웠다. 아주 가끔 고라니 가족이 놀러 올 테니 말이다. 고라니 가족만큼의 체온이 더해지면 한 평 텃밭의 겨울도 제법 따뜻해지지 않을까 물색없이 바랐다. 이번 겨울에 한 평 텃밭의 온도가 얼마나 될 것 같냐고 아이한테 물었더니 이상한 소리 그만하라며 아빠 등을 떠밀었다. 늦가을, 아침 햇살이 유난히 따스했다.
매번 낙선작을 소개합니다. 언젠가 당선작을 소개하는 날도 있겠지요. 제 글에 뭐가 문제인지 '전문가 진단'도 좀 받아봐야겠네요. 그렇게 별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