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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책의 뜻밖의 순기능?

"이등병이냐? 당당하게!"

by 조이홍

"앞으로 화장실에서 스마트폰 사용 금지, 도대체 화장실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해!"


군 생활할 때 찌린내 진동하는 막사 밖 재래식 화장실은 막 자대 배치받은 이등병에게 유일한 안식처였습니다. 생활관 안에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으니 웬만한(?) 긴급 사태가 아니고서는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선임은 없었으니까요. 입맛을 당기는 구수한 냄새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참을만했습니다. 변소 안에서 간식(주로 건빵과 생라면)도 먹고 5분 정도 꾸벅꾸벅 졸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치유가 되던지요. 자유를 누릴 수 없었던 이등병 생활을 용케 견딜 수 있었던 건 8할이 재래식 화장실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니 '화장실의 쓰임'이 반드시 '용변'에 있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진심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었습니다. 도대체 화장실에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누구냐고요? 바로 아이들 이야기입니다.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둘째 아이가 좀 심했습니다. 스마트폰이 생기기 전에는 주로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읽는 공간으로 화장실을 애용했습니다. 30분은 기본이죠. 책은 어디서든 얼마든지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데 유난히 화장실을 좋아했습니다. 급한 용무(?)가 없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화장실도 두 개였으니까요. 그런데 가끔 그런 날이 있습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경주마처럼 일제히 화장실로 질주하는 날 말입니다. 단 1초도 참지 못할 것 같은데, 화장실 안에서 유유자적 만화책을 읽고 있으면 평소 '솔'음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반 올라간 '시'음이 됩니다. 이웃들은 날카로운 쇳소리를 들었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대형 사고가 터질 뻔 한 바로 그날 '화장실 10분 이상 사용 금지' 행정 명령을 발동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책 읽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생기자 책들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습니다. 유튜브, 숏폼 등을 시청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연예계와 스포츠계 최신 뉴스를 진공청소기처럼 쫙 빨아들였습니다. 가끔 거친 말이 오가는, 요즘 아이들이 열광하는, 만화에 빠져 한 시간이나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용변을 보는 사이 잠깐 머리를 식히는 용도가 아니라는 게 분명했습니다. 화장실 내 스마트폰 사용 금지를 강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솔직히 저 자신에게 필요한 처방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책'을 준비했습니다. 온 가족이 자연스레 같은 책을 읽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첫 번째 책이 이금희 아나운서의 <우리, 편하게 말해요>였습니다. 마음을 다해 듣고 할 말은 놓치지 않는 말하기 수업이라는 부제에 걸맞은 좋은 책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읽어도 좋겠다 싶어 첫 책으로 화장실에 두었지요. 스마트폰을 화장실에 가져갈 수 없으니 아이들도 읽는 시늉 했습니다. 얼마 후,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이들이 경청과 마음을 담아 말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화장실 이용 시간이 엄청나게 짧아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 화장실이 본래의 목적으로만 쓰이게 된 것입니다. 이걸 화장실책의 긍정적인 효과로 보아야 할까요, 부작용으로 보아야 할까요?


마침 오늘 아침 읽은 대목이 눈에 밟혔습니다. 가슴이 뜨끔하더군요. 책을 늘 곁에 두려고 노력해도 수양이 부족했나 봅니다. 그 내용을 살짝 소개해 봅니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밑으로 다 빠져버리잖아요?"

"네? 갑자기 콩나물은 왜요?"

"물이 밑으로 빠지니까 눈에는 안 보이지만, 며칠 후에 보면 콩나물이 쑥 자라 있지요. 공부도 그런 법이에요. 해도 해도 아무 소용없는 것 같아도 자기도 모르는 새 실력이 쑥 늘어나니까요."

이금희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방송에 나온 사연입니다. '잊을 수 없는 한 마디'라는 주제였답니다. 초등학교도 못 나온 할머니가 예순을 훌쩍 넘겨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농사일하랴, 집안일하랴 공부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지요. 돌아서면 까먹고 돌아서면 까먹었지요. 그때 할아버지가 넌지시 건넨 말입니다. 좋은 대화란 이런 것이다 보여준 사연이었습니다.

우리 편하게 말해요.png

이 글의 교훈은 대화란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아마 할아버지가 "누가 공부하라고 시켰소? 스스로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으니 열심히 좀 하시오!"라고 말했다면 집안 분위기가 시베리아 한복판으로 변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할머니는 힘들 때마다 할아버지가 말한 콩나물시루를 떠올렸답니다. 물론 공부도 중, 고등 과정을 마치고 대입 수능을 준비할 정도로 잘했답니다.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화장실에서 스마트폰 사용 금지"라는 다소 강압적인 표현 대신 어떤 말이 아이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을까요? 아직 적당한 실마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뜬금없이 떠오른 아이디어는 이 정도입니다. "이등병이냐? 당당하게!" (물론 25년 전 이등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즘 신세대 장병들은 이렇지 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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